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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택배!" "사람한테 ‘택배’가 뭡니까”… 고성 오가는 고덕 아파트

입력 : 2021-04-15 06:00:00 수정 : 2021-04-15 14: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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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레 배송” vs “직접 찾아가라”… 단지 앞 박스 800개 쌓여
입주민 “안전 우선… 지상 진입금지”
“아이들 사고·시설 훼손 등 잦아
애초 지상엔 車 못다니게 설계”
“불편 감수 찾아가겠다” 주민도

택배노조 ‘주민 이기주의’ 성토
“손수레 세대배송 땐 시간 3배 ↑
업계·정부, 대안찾기 나서야”
노조·주민간 고성 오가기도
아수라장 된 아파트 택배노조가 서울 강동구 A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의 택배차량 통행금지 조치에 따라 개별배송을 중단하기로 한 14일 택배기사들이 택배 박스를 단지 앞에 내려놓으면서 박스가 무더기로 쌓여있다. 연합뉴스

“아니 그렇다고 이걸 여기에 내리면 어떡해….”

14일 낮 12시15분쯤 서울 지하철 5호선 상일동역 1번 출구 앞. A아파트 단지의 입구이기도 한 이곳에 화물차량이 정차했다. 택배기사 3명이 화물칸에 가득 실린 택배 상자를 인도에 차곡차곡 쌓기 시작하자 지나가던 이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바라봤다. 한 입주민이 인근에 있던 전국택배노동조합 위원장에게 “야! 택배!”라고 부르며 항의하자, 인근에 있던 택배노조 위원장이 “사람한테 ‘택배’가 뭡니까?”라고 받아치면서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경찰이 오고 나서야 양측 마찰은 일단락됐지만, 입주민은 “노조가 할 일이 없어서 이런 일을 한다”고 성토했다. 20여분에 걸친 작업 끝에 어느새 길에는 택배가 가득 쌓였다. 택배노조는 “오늘 이 아파트로 배송된 택배 800여개를 내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택배 상자들이 각 가구 문 앞이 아닌 길거리에 놓이게 된 것은 이 아파트 단지에 택배차량 진입이 금지됐기 때문이다. 5000가구 규모인 A아파트의 입주자 측은 안전사고와 시설물 훼손을 이유로 이달부터 택배차량이 단지 내 지상도로를 사용할 수 없도록 했다. 대신 기사들이 손수레를 이용해 택배를 각 가구에 배송하거나 지하주차장을 출입할 수 있는 저상차량을 이용하라고 통보한 상황이다.

택배기사들은 “손수레를 쓸 때 배송시간이 3배가량 증가하고, 저상차량은 몸을 숙인 채 작업해야 해 허리와 목 등의 근골격계 질환 발생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아파트 측에 대안을 요구했다. 하지만 거부당하자 이날부터 가구별 개별 배송을 중단하고 아파트 입구까지만 택배를 배송하기로 했다.

택배노조는 입구에 택배를 쌓고 자리를 지키면서 주민들이 택배를 찾으러 오면 배분하는 식으로 택배를 전달했다. 4시간 동안 4분의 1가량의 택배가 주인을 찾아갔지만, 늦은 오후까지 택배의 상당수는 길에 쌓여있었다.

14일 오후 서울 강동구 A아파트 앞에서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택배노동조합 관계자, 롯데택배·우체국택배 택배기사들이 택배 물품을 단지 앞에 내려놓고 있다. 연합뉴스

 

 

택배 노조의 ‘강수’에도 A아파트 주민들은 입장을 고수할 태세여서 갈등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주민 김모(38)씨는 “단지 안에 차도가 따로 없어서 모든 차는 지하 주차장으로 다닌다”며 “택배차량이 들어올 경우 아이들이 뛰어노는 거리를 지나다니게 된다. 안전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어린이 등 입주민의 안전을 위해 택배차량 지상 출입을 허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김씨는 “입구로 택배를 찾으러 가는 불편함을 감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입주민 조모(65)씨는 “이 아파트는 애초에 지상에 차가 없도록 설계됐다”며 “입구에서 손수레로 끌고 배송하는 절충안까지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택배노조 측이 배짱을 부리는 것 아니냐”고 비난했다.

하지만 택배기사들은 A아파트 측에서 사전 논의도 하지 않은 채 일방적인 통보를 했다고 반박했다. 택배노조는 이날 단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택배차량 제한은 노동자에게 더 힘든 노동과 비용을 강요하는 것”이라며 “입주자대표회의는 지금이라도 책임을 지고 대화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택배업체와 정부에게도 책임을 물었다. 노조는 “택배사가 A아파트의 택배 접수를 중단하고 관련 대책을 마련하는 등 책임을 지는 자세로 나서야 한다”며 “정부 역시 중재를 위한 노력에 즉각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종민·김병관 기자 jngm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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