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시시포스가 오른 ‘운명의 산’… 신화를 만나다 [박윤정의 칼리메라 그리스!]

, 박윤정의 칼리메라 그리스!

입력 : 2021-04-17 11:00:00 수정 : 2021-04-14 20:39:14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④ 코린트서 미케네 유적지로
코린트보다 800년 앞선 미케네, 신전 기둥 하나 남아있지 않지만 화려했던 문명 상상
트로이 전쟁서 승리한 아가멤논왕 무덤 지하벙커처럼 서늘
미케네유적. 서양 역사에서 크레타 문명 다음에 등장하는 미케네 문명의 중심지이다.

그리스 여행은 과거로의 시간 여행이다. 고대 유적의 흔적이 남아 있는 오래된 도시를 벗어나면 또 다른 과거의 낯선 도시로 들어선다. 그리스 서남쪽에 자리한 펠레폰네소스 반도. 코린트 유적이 낯선 관광객을 반긴다. 과거 시간에 갇혀 유적지를 둘러볼 여유도 없이 다음 여행지인 미케네 유적지를 찾아 나선다. 불과 30분 정도 이동했을 뿐인데 시간은 겹겹이 거슬러 간다.

미케네 문명은 미케네 지역을 중심으로 꽃피운 고대 그리스 문명이다. 고대 그리스는 서기전 1100년경부터 서기전 146년까지의 시대이다. 미노스 문명, 키클라데스 문명, 그리고 미케네 문명으로 특징지어지는 에게 문명(3650∼1100 BC)으로 그리스 청동기 시대가 끝나고 그리스 암흑기가 시작되던 때이다. 버스는 페레폰네소스 반도의 유적지를 따라 바쁘게 이동한다. 엘리소스 강 골짜기 꼭대기 근처에 있는 고대 유적지 네메아와 서남쪽 헤라클리온이라는 작은 마을, 서쪽으로 뉴네메아라는 마을을 지나쳐 가장 오래된 거주지 중 하나인 아르고스로 향한다. 신화의 영웅 나우플리오스에서 따온 유서 깊은 항구 도시 나플리오가 있다.

제우스와 니오베의 아들인 아르고스가 도시를 창건하였다는 전설을 듣고 또 다른 유적지를 따라 나선다. 원형극장이 잘 보존되어 있는 에피다우루스까지 고대 그리스의 최대 전성기를 상상해 본다. 지금은 쓸쓸히 남아있는 유적지이지만 고대 그리스의 문학과 신화가 탄생한 시기에 머물며 고대 그리스 청동기 시대 말기 시간 여행을 멈춰본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서사시가 운율을 따라 넓은 평원에 펼쳐지는 듯하다.

최근 종영한 TV 드라마 ‘시지프스’는 고대 그리스어 시시포스라고 하는 신화 속 인물이다. 드라마를 보지 않아 제목과 연관성은 알 수 없으나 단어가 낯설지 않은 이유는 알베르 카뮈의 에세이 ‘시지프 신화’ 때문이다. 바위를 끊임없이 밀어 올려야 하는 시시포스의 운명의 산, 아크로코린트는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우뚝 솟아 있다. 과거의 신화를 현재에 그리며 창밖 풍경을 즐긴다.

미케네 고대 도시 맞은 편에 있는 아가멤논의 묘.

아프로디테와 시시포스 이야기를 채 되새겨보기도 전에 미케네에 도착했다. 고대 도시로 여행을시작하기 전, 맞은편에 떨어져 있는 아가멤논의 묘에 들른다. 지도에는 아가멤논의 아버지 ‘아트레우스의 보고’로 표기되어 있다. 언덕을 조심스레 오르면, 진입로가 길게 뻗어 있고 지하벙커 같은 곳으로 들어간다. 원형으로 된 넓은 공간은 서늘한 공기로 둘러싸여 있다. 무덤은 뜨거운 열기의 외부와 달리 서늘하다. 뾰족하게 벽돌로 채워 넣은 천장이 인상적이다. 거대한 무덤을 둘러보고 미케네 고대 도시로 들어간다. 미케네는 코린트보다 800년이나 앞선 역사이다. 서양 역사를 이야기할 때, 크레타 문명 다음으로 미케네가 등장한다. 도시 형태는 코린트와 전혀 다르다. 평지 넓게 건물들이 배치된 코린트와 달리 언덕 위로 요새처럼 세워져 있다. 사자의 문이라는 오르막 입구를 지나면 새로운 세계가 시작된다는 것이 느껴진다. 오르는 길 좌측으로 언덕을 따라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한 아가멤논이 거쳐 했을 궁전이 있었을 것이고, 반대편 언덕 아래로는 확 트인 시야에 닿는 곳이 모두 제국의 땅이었을 것이다. 3500년 전 화려했을 도시를 상상해 본다. 그 흔한 신전 기둥 하나 남아 있지 않지만 공간을 너머 화려한 역사의 한 장면으로 안내한다.

아크로코린트, 시시포스가 바위를 밀어 올렸다는 산으로 코린트 유적 위로 우뚝 솟아 있다.

미케네에서 동남쪽 에게해를 향해 이동하면 에피다우루스라는 또 다른 고대 도시를 만난다. 기원전 4세기에 지어진 그리스 원형 극장이 지금까지 잘 보존되어 있다. 매년 5월부터 10월 사이, 아테네 에피다우루스 페스티벌이 이곳에서 열린다. 아테네와 함께 하는 그리스 대표 여름 축제이다. 축제 일정이 없어 조용한 그리스 극장 한쪽에서 그리스 비극 한 장면을 상상해본다. 아가멤논 시대보다 약 1000년 뒤에 세워진 극장이라 하니 아가멤논의 죽음에 대한 공연도 있지 않았을까? 극장도 흥미롭지만 도시 규모 역시 놀랍다. 의학의 신 아스클레피오스를 위한 신전과 관련된 병원 흔적, 각종 요양시설, 그리고 올림픽도 치를 수 있는 스타디온(스타디엄)까지 넓게 펼쳐져 있다. 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히포크라테스도 이곳으로 의학 공부를 위해 방문했다 하니 그리스에서 얼마나 중요한 곳이었을까 짐작해 본다. 인간의 병을 치료하자 저승의 신 하데스가 분노하여 죽음에 이르게 했고, 우여곡절 끝에 부활하여 불멸의 신이 되었다는 아스클레피오스! 그가 있었던 에피다우루스에서 이 시대에도 치유의 손길이 닿기 바라본다. 인간에게 가장 따듯한 손길로 어루만져 주길 바라며 하루를 보낸다.

박윤정 여행가·민트투어 대표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아일릿 이로하 '매력적인 미소'
  • 아일릿 민주 '귀여운 토끼상'
  • 임수향 '시크한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