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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탈·분노·자책·공포 뒤섞인 표정 거울을 통해 내면의 나를 보는 듯

입력 : 2021-03-26 06:00:00 수정 : 2021-03-25 20:4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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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경 ‘살아지는 나, 사라지는 너’
김홍석 작가가 촬영한 이은경 개인전 ‘살아지는 나, 사라지는 너’의 전시 전경. 정윤진 제공

허탈, 분노, 자책과 공포로 언어를 잃은 사람의 얼굴들이 정면을 응시하며 얼어붙어 있다. 표현하기 힘든 미묘한 감정들이 뒤섞인 표정이다. 그림을 보는 우리는 이 얼굴이 말하는 바를 정확한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이미 마음으로 공감하고 있다. 야만의 시대를 견디며 살아가는 인간의 얼굴이 마치 내면의 거울을 보듯 내 모습처럼 다가온다.

서울시 종로구 북촌로에 위치한 갤러리 제이콥1212에서 이은경 작가의 ‘살아지는 나, 사라지는 너’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어두운 초록빛 벽을 바탕으로, 관람객을 응시하는 크고 작은 얼굴들은 실제 작가가 자화상을 그린 것이다. 묵직한 시선이 긴장감을 주기도 하고, 담담하면서도 결연한 표정 속에 왠지 모를 슬픔도 담겨있는 듯하다. 전시장 가운데에 글 쓰는 작가 희정, 천주희, 반야의 글을 담은 책자가 놓여 있어, 전시를 감상하는 색다른 안내서가 된다.

희정 작가는 이은경의 그림들을 두고 “타인의 모습에서 나를 보게 하고, 나를 지키기 위해 누군가를 지키게 하는 세상. 그 세계와 마주할 때마다 긴장에 몸이 굳고 눈가가 떨린다. 단단한 표정을 짓게 된다”는 감상과 함께 “나를 들여다보는 것은 대단한 일”, “용감하다”는 응원을 작가와 관람객 모두에게 전한다. 천주희 작가는 “그림을 본 다른 이들이 어느 시절 자신이 그냥 흘려보낼 수밖에 없었던 감정과 기억을 그림에서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곳에는 여전히 언어를 찾지 못한 감정이 있을 수 있고, 세상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홀로 시린 파편을 받아내는 이가 있을 수 있다. 그렇게 과거의 내가 혹은 누군가의 삶이, 불현듯 당신에게 흘러와 닿는다면, 잠시라도 그 곁에 머물러주기를. 그리고 어루만져주기를 바란다. 그렇게라도 조금씩 당신 삶에서 우는 법을 배우면 좋겠다”고 남겨 두었다. 이번 전시를 구상한 정윤진 독립큐레이터는 “타인의 슬픔에 온전한 공감이란 불가능한 것이지만, 누군가의 괴로움이나 곤경을 목격할 때 자신의 고통이 선명해지는 경험이 있다. 원치 않는 상황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보호하지 못했거나 약자를 돕지 못했다는 자책은 사람의 피부 아래에 숨어들었다가 죄책감이 되어 이따금 표정이 되거나 말이 되어 드러난다. 그림과 글 속에 담긴 타인의 얼굴에 자신을 비추어 무력함이라는 공포로부터 상대와 나를 구해내고, 나를 닮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살아나갈 이유가 되어주는 기회가 있길 바란다”라고 전했다. 다음달 4일까지.

 

김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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