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돈만 있으면 개도 멍첨지’라는 말이 있다. 돈으로 관직을 사는 사람들이 늘면서 아무나 벼슬을 하는 세태를 꼬집은 우리 속담이다. '첨지(僉知)’란 조선 시대 중추부의 정3품 고위직을 가리킨다.
멍첨지와 비슷한 뜻을 지닌 말이 '개고기 주사'이다. 일제시대인 1930년대에 가수 김해송은 '개고기 주사'라는 코믹송을 불러 인기를 끌었다. "다 떨어진 중절모자, 빵꾸난 당꼬바지. 꽁초를 먹더래도 내 멋이야. 댁더러 밥 달랬소. 아, 댁더러 옷 달랬소. 쓰디쓴 막걸리나마 권하여 보았건디. 이래 봬도 종로에서는 개고기 주사. 나 몰라, 개고기 주사를."
개고기주사는 원래 매관매직을 풍자한 말이었다. ‘중종실록’에 따르면 1534년 이팽수가 지금의 대통령 비서실 주사에 해당하는 '승정원 주서'에 올랐다. 9급 말단에서 정 7품으로 벼락 출세를 한 것이다. 출세의 비결은 개고기 뇌물이었다. 이팽수가 당대의 실력자인 김안로에게 맛좋은 개고기 요리를 바쳐 환심을 샀던 것이다. 사람들은 개고기를 의미하는 가장(家獐)을 넣어 그를 ‘가장주서(家獐注書)’라고 불렀다. 노랫말 속의 개고기 주사는 가장주서를 일컫는다.
매관매직은 조선 말기에 더욱 기승을 부리면서 나라의 쇠망을 앞당겼다. 조정에선 텅 빈 나라 곳간을 채우기 위해 직접 벼슬을 팔았다. 명성황후의 친족인 민영휘는 매달 5~6차례 이조와 병조의 인사 담당자들을 불러 벼슬을 많이 팔도록 독려했다. 관직에는 공식 가격이 책정됐다. 1866년의 시세로는 감사 2만~5만냥, 부사 2000~5000냥, 군수와 현령 1000~2000냥이었다고 한다. 조정과 권세가들이 경쟁적으로 관직을 팔다 보니 1년 사이에 군수가 5번이나 바뀌는 경우도 있었다. 관직을 산 관료들이 본전을 뽑으려고 백성들을 수탈하면서 백성의 삶은 갈수록 피폐해졌다. 나중에는 그것도 모자란 탓인지 관에서 먼저 관직을 내리고 벼슬 값을 후불로 받기 시작했다.
1910년 망국 후에 음독 자결한 우국지사 황현은 '매천야록'에서 당시의 실상을 이렇게 전한다. 충청도 어느 고을에 강씨 성을 가진 과부가 살고 있었다. 집은 부유했으나 자식이 없어 '복구'라는 개를 길렀다. 과부가 "복구야" 하고 불렀는데, 마침 지나가던 관리가 그 소리를 듣게 되었다. 복구를 남자로 착각한 관리는 '강복구'에게 토목공사 등을 감독하는 감역관 벼슬을 내리고 과부에게 벼슬 값을 요구했다. 사람들은 개에게 내린 감역 벼슬이라는 뜻으로 복구를 '구감역(狗監役)'으로 불렀다.
“나라를 망하게 한 것이 일본도 아니요, 이완용도 아니요, 그것은 나 자신이오. 내가 왜 이완용으로 하여금 조국을 팔기를 허용하였소. 망국의 책임자는 바로 나 자신이오.” 이역만리에서 조선의 패망 소식을 접한 도산 안창호 선생의 장탄식이다. 망국의 원인을 우리 내부에서 찾은 선각자의 대성(大聲)이 가슴을 울린다.
맹자는 매사 남 탓만 하는 사람들을 향해 이런 뇌성(雷聲)을 울렸다. "무릇 사람은 반드시 스스로 업신여긴 후에 남이 업신여기고, 나라도 반드시 스스로 공격한 뒤에 남이 공격한다." 요즘 땅 투기와 권력형 부패를 일삼는 공직자들이 도처에 즐비하다. 나라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토착왜구들이다. 그들이 바로 '이완용'이다.
배연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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