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차 보다 1.2배 큰 중고차 시장
연 매출 250만대… 매출 규모 10조원대
6000여 업체 ‘생계형 업종’ 재지정 신청
미끼 매물·성능 조작·강매 등 불만 커
소비자 81% “시장 불투명… 개선돼야”
정부, 업계 피해 최소화 묘수 고민
대기업 “소비자 신뢰 제고 위해 진출 허용”
소상공인 “독과점 확대… 일자리 잃어” 반발
정부, 대기업 허용 가닥… 상생 방안 관건
“선진국 비해 시장 낙후… 인증제 등 필요”

유튜브에서 ‘허위매물’, ‘중고차’ 등을 검색하면 수많은 검색 결과가 나온다. 이 가운데 시청자들의 눈길을 끄는 영상은 주로 유튜버가 중고차 구매를 위해 시세보다 저렴한 중고차 매물을 올린 판매자에게 연락하면 광고했던 해당 매물이 방금 팔렸다며 대신 다른 매물을 보여주며 높은 가격으로 사기를 치려는 내용이다. 사고나 고장 이력을 숨긴 차량을 비싼 가격에 판매하는 식의 영업방식도 있다. 이때 차에 대해 잘 아는 유튜버 혹은 덩치가 큰 유튜버가 이를 지적하며 경찰을 부르거나 하는 식으로 영상은 마무리된다.
이런 동영상의 조회수는 수만에서 많게는 수백만에 이른다. 국내 중고차 시장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을 보여주는 예다. 물론 해당 영상들은 “대부분의 중고차 매매상사는 관련 규정을 준수하고 있으며, 일부 딜러들이 저지르는 일탈을 고발한 것”이라고 덧붙인다. 완성차 업체들은 국내 신차 시장(연간 170만대)보다 더 큰 중고차 시장(연간 250만대)의 이 같은 일탈을 막기 위해 완성차 업체의 중고차 시장 진출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반면 기존 중고차 시장은 자정 노력으로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고 있으며 대기업이 진출하면 오히려 소비자들이 피해를 볼 것이라고 반박한다. 최근 생계형 업종 지정 여부를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는 중고차 시장의 완성차 진출 문제를 살펴본다.
◆신차 시장보다 1.2배 큰 중고차 시장
22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정부의 동반성장위원회는 2013년 중고차판매업을 3년 시효의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한 이후 한 차례 연장했다. 당초 2019년 2월 말 이는 종료될 예정이었지만 중고차 업계는 ‘생계형 적합업종’ 재지정을 신청했다. 이에 그해 11월 동반성장위는 생계형 적합업종 ‘부적합’ 결론을 내렸고,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해 5월까지 심의위원회를 열고 결론을 내려야 했지만 1년이 다되도록 진전 없는 공회전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달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주관으로 ‘중고차상생협력위원회’를 출범해 타협안을 찾으려 했지만 기존 매매업계가 하루 전날 불참을 통보하며 또 무산됐다. 중기부 관계자는 “소상공인 보호도 중요한 만큼 완성차 업계와 중고차 업계의 상생안 마련을 위해 계속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

자동차등록 통계에 따르면 국내 중고차 시장 규모는 연간 250만대 수준으로 매출 규모만 10조원에 달한다. 지난해 중고차 거래 대수는 총 258만7253대로, 이 가운데 개인거래를 제외한 매매는 113만대8920대에 이른다. 업계에서는 개인거래 중 상당수도 실제는 매매업자의 알선거래를 개인거래로 위장한 것이라고 추정한다. 국내 연간 신차 판매량이 100만대 후반대에 머무는 점을 감안하면 신차 대비 중고차 시장은 1.2배에 이른다.
외국과 비교하면 국내 중고차 시장은 아직 성장 여력이 크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신차 대비 중고차 비중은 미국 2.4배, 독일 2배 등이다. 완성차 업체 측 주장은 미국은 카맥스·아메리카스카마트 등 전문 중고차 회사들이 단일가격과 인증제도를 기반으로 소비자 신뢰를 구축하고 있고, 카바나·브룸 등 온라인 기반 중고차 기업들도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고 설명한다.
현재 국내 중고차 시장은 소상공인에 해당하는 6000여개 매매업체가 주로 소비자와의 접점이다. 전문 중고차 기업으로는 케이카, AJ셀카, 오토플러스 등이 최근 자체 인증 서비스 등을 바탕으로 시장을 키우고 있다. 이들의 거래장터 격인 경매장에는 대기업도 진출해 있다. 현대글로비스, 롯데경매장, AJ경매장 등이다. 이 밖에 온라인과 모바일을 바탕으로 하는 엔카, 헤이딜러가 있고, 금융회사에 기반을 두고 인증중고차 사업을 하는 현대캐피탈, KB차차차 등도 있다. 최근에는 포털과 소셜커머스도 중고차 시장에 참여하고 있다.

◆5만여 종사자 입장 지켜달라 호소하는 중고차 업계
완성차 업체의 시장 진출에 대해 기존 중고차 업계는 6000여 소상공인과 5만명에 이르는 종사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또한 중고차 가격과 판매량 조절로 인해 독과점이 이뤄져 결국 소비자들의 부담을 증가시킬 것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에 중고차의 상품화 과정인 정비·수리를 담당하는 소규모 자영업자들도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고 덧붙인다. 지방의 한 자동차매매사업조합장은 지난해 국회에서 열린 ‘대기업의 중고자동차 매매시장 진출 관련 공청회’에서 이 같은 우려를 표명했다. 이어 “미국 등 외국에서는 완성차 제작사가 직접 차를 판매하지도 않는다”며 “이미 완성차는 국내에서 특혜를 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기업형 중고차 업체인 케이카에서도 비슷한 지적을 했다. 케이카는 “완성차 업체의 시장 진출시 중고차시장, 전후방 산업 전반에 독점적 지위를 확장할 수 있다”며 “자동차 산업 관련 플랫폼을 독점해 다른 참여자들은 그에 예속하는 결과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완성차 업체의 중고차매매업 직접 진입을 제한하고 기존 매매업체, 중고차 전문기업, 다양한 형태의 신규 진입 업체들의 상호 경쟁, 협력, 공생을 통해 현재 중고차 생태계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적합한 방안”이라고 덧붙였다.

◆소비자는 투명하고 합리적인 시장 원해
업계의 이익 논리와 별개로 소비자들은 어떤 대안을 원하고 있을까. 이해관계인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이지만 시사점은 찾을 수 있다. 지난해 11월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전국 만19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중고차시장에 대한 소비자인식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0.5%는 중고차시장이 불투명·혼탁·낙후됐다고 인식했다. 주요 원인으로는 가격 산정 불신(31.3%), 허위·미끼 매물(31.1%), 주행거리 조작 및 사고이력에 따른 피해(25.3%), 애프터서비스에 대한 불안(6.2%) 등을 지적했다. 다른 조사에서도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 여부와는 무관하게 현행 중고차 시장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내용은 많다.

현재 국내 주요 수입차 업체들은 모두 인증중고차 시장에 진출해 있다. 이 덕분에 중고차의 가격이라고 하는 감가율이 국산차보다 낮다는 것이 완성차 측의 또 다른 시장 진출 논리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 자료를 보면 국내에서 2017년식 제네시스 G80의 평균 감가율은 30.7%에 달하는 반면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의 감가율은 25.5%다. 현대차 싼타페의 감가율은 32.4%인데 BMW의 X3는 25.6%, 벤츠 GLC는 20.6%다. 반면 현대차가 중고차 시장에 진출해 있는 미국에서는 현대차의 아반떼(수출명 엘란트라)의 감가율은 34.8%, 폴크스바겐 제타도 같은 34.8%다. 현대차 투싼(37.%)과 폴크스바겐 티구안(47.4%)을 비교하면 오히려 현대차의 감가율이 낮다.
완성차 업체 측은 이 같은 결과를 바탕으로 자신들이 중고차 시장에 진출해 자정 노력을 벌이겠다는 입장이다. 국내 한 완성차 업체 관계자는 “현재 수입차들은 모두 인증중고차를 통해 차량 가격을 방어해 자신들의 가치를 유지하고 있다”며 “완성차가 진출해도 ‘5년, 10만㎞’ 등 제한된 차량에 대해 판매할 것이며 투명하고 객관적인 가격 및 차량 정보 시스템을 구축해 메기효과를 통해 기존의 불법 관행이 사라지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기업 진출에 무게 두는 정부… 기존 업계 반발 잠재울 묘수 고민 중
정부와 정치권은 대기업의 시장 진출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다만 올해와 내년 연이어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많은 수의 종사자가 있는 문제를 쉽게 결론 내지도 못하고 있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달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완성차 업체의 중고차 시장 진출이 중고차 사업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변 장관은 “얼핏 보면 대기업 생산업체가 중고시장까지 진출해서 상생을 없애는 걸로 볼 수도 있겠지만, 만일 상생협력 한다면 오히려 중고차 사업 활성화에도 기여할 수 있을까”라며 “조건을 어떻게 마련하느냐에 달렸다”고 말했다.
박영선 전 중소기업벤처부 장관도 재직 당시인 지난 1월 언론 인터뷰에서 완성차 업체와 기존 중고차 시장의 상생 방안에 대해 “완성차의 중고차 사업 진출 범위를 인증 절차를 거친 중고차로 한정하는 방안과 매집 차량 중 인증 대상 차량 이외에는 기존 사업자에게 우선 공급하는 방안 등이 있다”며 “소상공인들은 독과점 사태를 가장 우려하고 있는데 독과점을 방지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홍성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중고차 시장이 사회·경제적 측면에서 장려돼야 하는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중고차 시장의 부정적 이미지 때문에 선진국 대비 중고차 시장이 낙후됐다는 평을 받는다”며 “완성차 브랜드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비롯해 중고차 공인 인증기관을 설립해 인증과 보증, 적정 시세가 보장돼 중고차 시장 규모를 키우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병욱 기자 brightw@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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