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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명 ‘XX신’… 전자소송 악용에 법원 '속앓이'

입력 : 2021-03-10 20:09:19 수정 : 2021-03-10 22: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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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 10년… 오·남용 늘어 법원 행정력 낭비 지적

방문 없이 온라인으로 쉽게 소송
1명이 작년 1만여건 반복 상고도

법원, ‘재판 받을 권리’ 침해 우려
등록 말소 등 적극 조치 어려워
법조계 “사용정지·과태료 등 필요”

‘XX신’.

지난 4일 서울중앙지법이 각하 판결을 낸 한 민사소송에 적혀 있던 피고명이다. 소송을 제기한 원고는 청구 취지에도 ‘OOO이라는 병X 새X’라며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적었다. 해당 원고는 이 외에도 비슷한 내용의 소송을 반복해서 제기했다. 법원에 가지 않아도 되는 전자소송제도를 악용해 벌인 일이다.

국민의 재판청구권을 확대하기 위해 2011년 도입된 전자소송제도가 일부 민원인에 의해 오·남용되고 있다. 법원 입장에선 이 같은 악성 소송이 제기되더라도 소장을 받아줄 수밖에 없어 속앓이만 하는 실정이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민원인 A씨는 지난해부터 서울중앙지법에 약 30건 가까이 민사소송을 제기하며 피고명에 욕설을 기재했다. 소송 청구 취지에도 소송과 전혀 관계없는 욕설을 늘어놨다. ‘OO세무서 운영한다는 OOO 새X’ 등 의도를 이해할 수 없는 말이 대부분이다. 법원은 소권남용을 이유로 A씨의 청구를 각하했다.

A씨가 의미 없는 수십 건의 민사소송을 낼 수 있었던 건 전자소송제도를 십분 활용해서다. 법원은 2011년 국민의 재판청구권 강화를 위해 민사소송에 전자소송을 도입했다. 그 전에는 소송을 제기하려면 무조건 법원에 가야 했으나, 전자소송제도가 도입되면서 온라인 개인 인증만으로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문제는 A씨처럼 전자소송을 악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또 다른 민원인 B씨는 지난해 대법원에 1만건 이상을 상고했다. 특정 사안에 대해 재심 청구를 하는 등의 방법으로 법원을 괴롭힌 것이다. B씨의 청구는 어김없이 각하로 이어졌다. 법원이 사건 접수부터 처리까지 직접 처리하는 만큼 전자소송 오·남용 사례가 늘어나면 법원의 행정력은 낭비될 수밖에 없다. 법원 관계자는 “유명한 민원인이 법원마다 1~2명씩 있다”고 했다.

현행법상 법원행정처장은 특정인이 전자소송을 오·남용한다고 판단되면 해당 인원의 전자소송 사용을 정지시키거나 사용자 등록을 말소할 수 있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조치하기 쉽지 않다는 게 법원 입장이다. ‘모든 국민은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어서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재판청구권이라는 국민 헌법상 권리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 보니 사용자 등록 말소 등의 조치를 적극적으로 하기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며 “(위 사례들은) 전자소송의 편의성을 악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법조인들은 전자소송의 신뢰 훼손을 막고 제도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법원이 적극적으로 사용자 등록 말소 조치를 해야 한다고 본다. 서울지방변호사회장을 지낸 김한규 변호사는 “전자소송 사용자 등록을 말소해도 법원에 직접 방문해서 소장을 접수할 수 있기 때문에 개인의 재판청구권은 살아있다”며 “일부 부적절한 사안에 대해서는 사용자 등록을 말소해도 된다”고 말했다.

전자소송 청구권을 박탈하는 게 과하다면 과태료를 부과하는 방안도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전자소송제도의 신뢰가 깨질 수 있는 부분은 막아야 한다”며 “전자소송 청구권을 박탈하는 것보다 과태료를 물리는 방법이 (나을 수) 있다”고 했다.

 

이희진 기자 he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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