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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기상이변 참사에도 대비 소홀… 방심이 부른 인재 [연중기획-지구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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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3-04 10:00:00 수정 : 2021-03-05 13:4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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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텍사스 한파’가 주는 교훈

한겨울도 온화… 설비 투자 소극적
폭염에 맞춰 각종 시설 실외 설치
단열 등 안 갖춰 영하에 속수무책
전기·난방·수도 공급 끊겨 대혼란

한반도 기온 상승, 세계 평균의 2배
韓, 재해로 이어져도 사후처리 집중
기후변화 피해 최소화하기 위해선
도시개발 정책에도 리스크 반영을
미국 텍사스주에 이례적인 한파가 덮친 지난달 18일 고속도로 표지판에 고드름이 달려있다. 킬린=APF연합뉴스

식량을 배급 받으려고 푸드뱅크 앞에 길게 늘어선 줄, 텅 빈 마트 진열대, 수돗물 공급이 끊겨 며칠 째 씻지도 못한 사람들….

 

2월 중순 혹한이 휩쓴 미국 텍사스주의 모습은 흡사 국가부도에 직면한 제3국을 연상케 했다. 북극발 한파가 내려오면서 전기와 난방이 끊기고 수돗물 공급도 중단되면서 벌어진 일이다. 그런데 정말 추위 그 자체가 문제였을까. 텍사스보다 북쪽에 있는 아이오와주나 미네소타주는 수은주가 영하 30도까지 내려갔어도 텍사스만큼의 피해를 보진 않았다.

 

추위보다 더 문제였던 건 추위를 대하는 자세, 즉 혹한에 대비가 돼 있느냐였다. 이는 세계 평균보다 두 배 빠른 속도로 기온 상승이 진행 중인 한반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텍사스의 경고 “이변에 대비하라”

 

기후변화는 우리가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날씨와 기후의 개념을 허물어뜨린다. 비정상적으로 늘어난 온실가스가 지구의 자동조절 시스템을 교란시킨 만큼 온도와 강수량, 여타 자연현상은 우리 경험치를 넘어 극한의 모습을 띠게 된다.

 

이번 텍사스 한파도 그렇다. 북극 한기를 막아주는 제트기류가 약해지면서 한파가 멕시코 부근까지 밀고 내려왔다.

미국 텍사스주에 이례적인 한파가 덮친 지난달 17일 텍사스 북부 도시 포트워스 도로에는 눈이 쌓여있다. 포트워스=EPA연합뉴스

보통 텍사스는 한겨울에도 온도가 5도 미만으로 잘 떨어지지 않는 따뜻한 지역이다. 여름철 폭염은 익숙하지만 추위는 낯설다. 발전소와 각종 인프라도 그렇다.

 

텍사스의 화력발전소는 보일러, 터빈 같은 설비가 실외에 설치된 경우가 많다. 실내에 있으면 혹서기에 열이 과도하게 축적될 수 있어서다. 노출된 설비가 혹한을 버티려면 ‘옷’을 입어야 한다. 단열과 바람막이, 설비 내부 온도센서의 동결방지 장치 등이 옷에 해당한다. 그러나 텍사스 발전소는 대부분 이런 장비를 갖추지 않았고,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지자 대책 없이 얼어붙었다.

 

특히 천연가스가 문제였다. 텍사스 전력 생산의 51%는 천연가스가 담당한다. 그런데 천연가스를 생산할 때 쓰는 압축기도 전기가 필요하다. 가스압축기를 써도 되지만 전기압축기가 더 작고 덜 시끄러워서 선호도가 높다. 다시 말해 전기를 만들려면 천연가스가 필요한데, 천연가스를 가져오는 데에도 전기가 필요하다. 전기와 천연가스가 서로 재료인 동시에 산출물이 되는 상호 의존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한쪽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전기와 가스 둘 다 공급이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텍사스 피해도 그래서 더 커졌다.

 

그런데 정확히 10년 전에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2011년 2월 텍사스와 애리조나 등에 강추위와 폭설이 덮치는 바람에 곳곳에서 전력이 끊겼다. 그해 여름 미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FERC)와 북미전기신뢰협의회(NERC)는 정전 원인 분석과 재발 방지 대책을 담은 보고서를 발간한다. 350쪽에 달하는 이 보고서에는 한파에 무방비 상태인 발전소, 전기와 천연가스의 상호 의존성, 극한 기상에 대비할 필요성 등이 상세히 언급됐다.

 

하지만 이듬해부터 다시 찾아온 ‘정상적으로 포근한 겨울’과 함께 보고서의 이런 조언은 묻히고 만다. 돈 때문이다. 보고서는 단열과 보온력을 높이는 시설을 설치하는데 발전기 한 대당 5만달러(약 5600만원)에서 50만달러까지 들 것으로 추정했다. 발전소들은 언제 찾아올지 모를 한파 때문에 막대한 비용을 들일 수는 없다고 봤다.

 

제시 잰킨슨 미 프린스턴대 교수는 뉴욕타임스 기고에서 “기후변화는 극단적인 기상현상을 더 자주 일으키고, 우리 시스템의 한계를 시험할 것”이라며 “변화하는 기후는 과거가 더 이상 미래의 길잡이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국가 전체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비하는 데 훨씬 더 능숙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 북부지역 발전소(위 사진)는 보일러, 터빈 등이 실내에 설치된 반면, 남부(아래)에서는 주요 설비가 야외에 노출돼 있다. FERC·NERC 보고서

◆부동산 대책에도 ‘달라질 기후’ 반영해야

 

텍사스 사태는 기후위기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면 순식간에 도시 기능과 일상이 무너질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기후변화 대책은 크게 ‘감축’과 ‘적응’으로 구분된다. 기후변화의 원인인 온실가스를 줄이는 것이 감축에 해당하고, 이미 달라졌고 더욱 급변할 기후에 대비하는 것을 적응이라고 한다. 최근 국제적으로 탈탄소, RE100(재생에너지로만 생산활동) 같은 감축 전략은 속도를 내기 시작했지만 적응은 아직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사회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데 성공하더라도 적응 전략은 여전히 필요하다. 온실가스는 길면 수백년 동안 대기에 머무르는 탓에 이미 배출된 온실가스로 인한 기후변화를 멈추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건물 단열 기준을 강화하고 도로·전기·상하수도 같은 기반시설이 혹한과 혹서, 폭우와 극한 가뭄에 버티도록 하는 것, 달라진 기후 여건 속에 사람과 동식물 피해를 최소화하는 전략 등이 적응에 속한다.

 

기후변화 대응 후발주자인 한국은 그간 감축에서 낙제점을 받았지만, 적응 정책은 더 보잘 것 없었다.

 

한상운 한국환경정책연구원(KEI) 선임연구위원은 “기후위기가 재해로 나타난다고 했을 때 지금까지 우리는 사후처리에 초점을 뒀다. 무너진 게 있으면 다시 쌓고, 피해를 보상하고 이런 게 기존의 대응이었다”며 “적응 대책은 장기 계획이 필요한데, 국가·지방자치단체장은 임기 내 성과를 낼 수 있는 사업에 집중하다보니 제대로 된 전략이 없었다”고 했다.

 

허술한 적응 정책은 법만 봐도 알 수 있다. 기후변화에 관한 최상위법이라 할 수 있는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에서 적응이란 단어는 딱 네 번 등장한다. ‘정부는 … 적응대책을 수립·시행하여야 한다, 적응대책에 필요한 기술·재정적 지원을 할 수 있다’고 언급된 정도다.

 

기후위기 시대에는 국토 및 도시 개발 계획에도 적응이 녹아들어야 한다. 가령 인천 송도나 부산에 주거단지와 산업시설을 지을 땐 해수면 상승 전망을 반영한다든가 하는 식이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 적응 업무는 KEI 내부에 설치된 국가기후변화적응센터가 맡고 있어 부처별 사업 조정 같은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

 

현재 국회에는 2050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4개 법안이 발의돼 있다. 이 중에는 적응을 별도의 장으로 다루는 등 진일보한 것도 있다. 다만, 컨트롤타워 격인 환경부에 그만 한 힘이 실릴지는 알 수 없다.

 

한 선임연구위원은 “부동산 정책이나 국토 개발 계획에도 기후변화 리스크를 반영하는 ‘적응정책의 주류화’가 이뤄져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선 이행력을 강화하는 방안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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