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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훈의삶과철학] 소크라테스와 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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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2-18 22:54:13 수정 : 2021-02-18 22:5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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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에(말파리, 쇠파리)는 말이나 소에 달라붙어 피를 빨아먹고 사는 벌레이다. 그런데 이 벌레를 자처한 사람이 있다. 바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이다. 소크라테스는 ‘소크라테스의 변명’에서 자신이 신이 아테네에 보낸 등에와 같다고 말했다. 말은 크고 살이 찌면 움직임이 둔하다. 등에는 그런 말이 눈을 뜨게 하고 활기 있게 움직이게 한다. 소크라테스의 대화 상대방 중 한 명인 메논은 그를 전기가오리에 비유하기도 한다. 추한 외모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를 만나면 말문을 잃게 만들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등에나 전기가오리 비유를 통해 우리에게 항상 깨어 있어야 하고 철학은 깨어 있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하고 싶어 한다. 침묵을 지키면서 조용히 살 것이 아니라 항상 자신의 삶을 검토하면서 살라는 것이다. 예수가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와 함께 단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단 말이냐?”라고 말한 것이나,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시민이 깨어 있어야 한다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실제로 등에처럼 살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말 입장에서는 등에는 굉장히 귀찮은 존재이다. 한숨 자거나 쉬려고 해도 계속 성가시게 하니 아주 미운 벌레일 것이다. (‘등에’를 ‘박차’로 번역하기도 하는데, 귀찮은 정도로 보면 등에가 더 적절한 번역인 것 같다.) 등에 탓에 자지 못하는 말은 꼬리로 등에를 쫓거나 죽인다. 실제로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권력층이 아테네 청년들을 타락시키고 아테네 사람들이 믿는 신을 믿지 않는다는 죄목으로 법정에 서고 사형을 당했고, 예수도 비슷한 이유로 사형을 당했다. 자신이 믿어 의심치 않거나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지식에 계속 딴지를 건다면, 심하게는 죽임을 당할 수도 있는 것이다. 검토된 삶이나 깨어 있는 시민이라는 말이 멋있어 보이는 말이긴 하지만, 따라 살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그런 노력은 해야 적어도 둔한 말처럼 살지는 않을 것이다.

최훈 강원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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