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 부쳐야 할 편지가 있는 것도
아닌데 우체국을 지나면 우표를
사고 싶다
동그란 소인이 내리쳐진 그리운 주소로
날아가
눈발처럼 그 손에 닿고 싶다
국화꽃이나 바이올렛
가끔은 채송화 피는 유리창 밖
투명한 목소리가 문장 끝 마침표로 바뀌는
시간쯤
빨간 우체통 속에서
설레며 그 밤을 맞고 싶다
아주 오래 우체국 앞에 서 있고 싶다
스치며 지나간 시간들 속에 놓친
누군가를 만날까 싶어서

우체국 앞을 지나면 공연히 마음이 설렙니다.
사춘기 때 그의 주소로 보냈던 편지가 생각납니다.
그의 집 마당엔 채송화, 바이올렛, 국화가 만발했었지요.
지척에 있는 그의 집을 두고 편지를 보냈던 그 시절.
그의 투명한 목소리가 문장 끝 마침표로 바뀌는 시간쯤
빨간 우체통 앞에서 설레며 밤을 맞았던 그 시절.
편지를 보낼까 말까 망설이다가 기어이 우체국 문을 밀며 들어서서
침을 발라 정성껏 붙이던 우표.
우표가 붙여진 나의 편지가 눈발처럼 그의 손에 닿고 싶었던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편지 대신 SNS가 대신하는 지금, 우체국 앞에 오래 서 있고 싶습니다.
혹시 스치며 지나간 시간들 속에 놓친 그를 만날까 싶어서,
박미산 시인, 그림=원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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