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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초의 동·서양 교류 촉발한 ‘팍스 몽골리카’

입력 : 2021-02-09 02:00:00 수정 : 2021-02-08 20:5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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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인들이 쓴 여행기 통해서 본 ‘몽골 평화시대 동서문명의 교류’
동양에 대한 서양인들의 인식 변화
당대의 지식과 정보의 양상 보여줘
맨더빌의 14세기 여행기 구체적 분석
기독교 세계 성찰 가장 두드러진 특징
15세기 중반 제작된 프라 마우로 지도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 자료 참조
극동지역에 대한 지상낙원 묘사 대체
칭기스 카안의 정복활동으로 탄생한 몽골제국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동서양의 실질적인 교류를 촉발했다. 서양인들이 쓴 여행기는 이를 잘 보여주는 증거다.

‘팍스 몽골리카’(Pax Mongolica)

테무진이 몽골 초원을 평정하고 ‘칭기스 카안’으로 추대된 1206년부터 원제국이 멸망하는 1368년에 이르는 이른바 몽골의 평화시대. 유라시아 대륙 대부분을 아우르는 거대한 정치체제 몽골제국의 등장은 인류사에서 처음으로 실질적인 동·서양 교류를 촉발했다. 이런 양상은 서양인들이 쓴 동양 여행기에 구체적으로 남아 있다. 동서문명 대면, 소통의 구체적 사물인 여행기를 통해 서양에서 “전설과 상상의 세계”에 가까웠던 동양은 이즈음 “비로소 좀 더 현실적인 세계”로 바뀌는 양상을 보였다.

근간 ‘몽골 평화시대 동서문명의 교류’(남종국 등 지음, 이화여대출판문화원)는 여행기를 분석해 동양에 대한 서양의 인식변화, 당대 지식과 정보의 구체적인 양상을 보여준다.

◆‘판타지’에서 ‘현실적인 실체’로의 변화

‘눈이 어깨에 있는 초식인들, 외눈박인 거인, 왕에게 경의를 표하려 해변으로 밀려와 잡히는 온갖 물고기떼….’

오랫동안 동양에 대한 서양의 묘사는 이처럼 기담과 괴담으로 가득찬 판타지에 가까웠다. 몽골제국의 등장 이후 직접 동양을 보고, 체험한 뒤 출간된 여행기에서 이런 묘사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동양에 대한 애초의 고정관념이 거의 지식의 지위를 부여받음에 따라” 여행기의 저자들 또한 독자들의 기대에 부합하는 내용을 채워 넣어야 했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아는 마르코 폴로, 구육 칸의 즉위식에 참석한 플라노 드 카르피니, 뭉케 칸을 알현한 기욤 드 뤼브루크 등의 여행기에서 이제 동양을 “냉정하게 관찰하고 ‘우리’와 비교하여 기술해야 할 엄연한 ‘실체’”로 묘사하는 변화가 감지된다. 책은 저자를 ‘맨더빌 경’이라고 밝힌 14세기 후반의 여행기를 구체적으로 들여다본다. 맨더빌의 여행기는 폴로의 작품을 능가하는 인기를 얻었다.

맨더빌은 이질적인 관습과 문화에 대해 관용적 태도와 상대주의적 관점을 잃지 않는 경향을 보였다. 인도양의 섬, 티베트의 식인, 장례 풍습에 대해 치밀하게 묘사하면서 “‘저들’의 풍습이 따지고 보면 그리스도의 성체를 나눠 먹는 ‘우리’의 의식과 흡사하다”고 한 것을 사례로 들 수 있다.

책은 맨더빌 여행기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으로 “동양이라는 거울을 통해 저자 자신이 몸담고 있는 기독교 세계를 성찰하고자 했다는 점”을 꼽았다. “기독교도보다 신실하고 정결하고 선량하게 살아가는 브라그만 섬 사람들”, “기독교도와 거의 같은 신조를 따르는 이슬람교도”, “하느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십자가를 공경하는 대칸의 나라” 등을 서술한 것이다. 책은 “(맨더빌 여행기에서) 동양과의 만남은 종교적·문화적 다양성이 펼쳐지는 외부세계의 스크린에 자기 자신, 즉 기독교 세계를 투영함으로써 자기성찰과 자기비판에 이르는 하나의 통로였다”고 설명했다.

◆마르코 폴로의 여행기에 기댄 세계지도의 제작

15세기 중반 베네치아에서 제작된 프라 마우로의 지도는 여행기를 통해 동양에 대한 서양의 지식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여주는 구체적인 사례다. 가로, 세로 각 2.3m 크기의 이 거대한 지도는 폴로의 ‘동방견문록’과 기타 자료들에 기대 중국과 관련된 지리정보들을 지도 한 켠의 작은 공간에 배치했다.

프라 마우로는 중국의 지명을 라틴어로 표시하고 중요한 장소들은 그림으로 묘사했다. 여러 지명들 사이의 공간은 일부 중요한 장소들에 대한 자세한 설명으로 채웠다 “대부분의 긴 설명적 문장들은 폴로로부터 가져온 내용을 편집, 정리한 형태로 사용한 것”이었다.

취엔저우(泉州)로 알려진 자이툰에 대해 지도는 “대칸은 이 자이툰의 항구에 그의 나라를 위해 복무하는 많은 수의 선박을 보유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자이툰은 폴로가 유럽으로 돌아갈 때 출항한 도시인데, 이 구절은 폴로 여행기의 긴 설명을 축양한 것이다. 베이징 근처 쿠빌라이 카안의 사냥터 등에 대한 설명에서 이런 경향을 확인할 수 있다.

폴로 여행기의 풍부한 정보를 간략화하는 과정에서 몇 가지 중요한 실수를 한 것도 확인된다. 중국과 인도의 주요 강을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점이 그렇다.

프라 마우로가 동양에 대한 지식을 폴로의 여행기에만 기댄 것은 아니다. 2세기 프톨레마이오스의 저술인 ‘지리학’에서 가져온 지명들도 함께 활용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새로운 중요 정보를 놓치지 않으려 함과 동시에 전통적인 정보를 무시하지 않으려 한 것”이다. 이런 면은 당시 동양에 대해 서양인들이 가진 지식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기는 하다. 하지만 프라 마우로의 지도는 “실제적인 정보를 할용해 극동지역에 대한 기독교적 지상낙원 묘사를 대체함으로써 인식변화를 가져왔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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