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노태우 사면 건의한 김대중 따라했나
3일 긴급최고위원회의 열고 지도부 설득 나서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발 ‘이명박·박근혜 사면 건의’ 여진이 지속되고 있다. 구속 수감중인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이 아직 제대로 사과를 하지 않는 상황에서 불쑥 ‘사면’을 언급한 것에 대해 당 내 의원뿐 아니라 지지자들의 반발이 거세다. 이 대표는 지난 1일 공개된 뉴스통신 3사(연합뉴스·뉴시스·뉴스1) 인터뷰에서 모두 문재인 대통령에게 이·박 전 대통령 사면 건의할 생각이 있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각각 인터뷰를 진행했지만 이 대표는 모두 같은 내용을 말했다. 이는 이 대표의 작심발언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당 내 비판 여론이 거세다는 점이다. 우선 지도부 내에서도 반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자칫 대선 경선을 앞두고 ‘정치적 패착’이 될 것으로 걱정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2일 세계일보 통화에서 “일부 최고위원들이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힐 것으로 알고 있다”며 “당원들에게도 항의 문자가 빗발치고 있다“고 귀띔했다.
◆DJ키즈 이낙연…김대중처럼
김대중 전 대통령 권유로 정계 입문한 이 총리는 평소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을 꼽으라는 질문에 늘 “김대중 대통령”이라고 말하곤 했다. 이 대표는 당 운영도 김 전 대통령 스타일을 추구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전 의원의 간부화’를 토대로 의원들에게 책임감을 부여했는데 이 대표도 이를 따르고 있다. 이번 ‘사면론’도 김대중 전 대통령을 떠올리며 던진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은 김영삼정부 들어서 12·12 군사 반란 및 5·17 내란 혐의, 그리고 불법적인 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 등으로 법정 구속됐다. 하지만 다음 대선에 출마한 후보자들이 각각 전·노 사면을 밝히면서 사면이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로 흘렀다. 당시 외환위기 대위기 속에서 계층·세대·정파 간 화합과 단결을 도모하는 차원에서 후보들이 ‘사면’을 꺼냈다. 이런 흐름 하에, 김영삼와 대통령과 김대중 당선인은 대선 다음날인 1997년 12월 20일 만남을 갖고 전·노 사면을 결정했다. 형식적으로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주도하고 김대중 당선인이 동의하는 모양새였지만, 내용상으로는 두 인물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김영삼 전 대통령 입장에서도 전직 대통령의 과오가 크지만 계속 옥중에 두기는 다소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김대중정부 청와대에서 제1부속실장 출신의 민주당 김한정 의원은 페이스북에 “당연히 논란과 반대가 있을 것이지만 잘한 판단이라 생각한다“며 “김대중 대통령 생각이 났다”고 말했다. 그는 “통합은 정치의 임무”라며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이 정치갈등 완화와 국민 통합에 긍정적 계기로 작용하기를 기대한다”고 이 대표에게 힘을 실었다. 하지만 다른 민주당 의원은 통화에서 “사면권은 결국 현직 대통령의 권한인데 청와대와 교감을 한 것인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면서도 “결국 이 대표 본인과 청와대 모두가 부담을 안은 상황이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이명박·박근혜 자칫 코로나라도 걸리면 역풍
이런 가운데 최근 이 전 대통령이 수감 중인 동부구치소에서 대규모 집단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것이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이 전 대통령은 지난 21일 지병 관련 검진을 위해 서울대병원에 입원해서 코로나19 유행에서는 잠시 빗겨난 상황이다. 동부구치소 누적 확진자는 이날 기준 958명에 달해 위험하다. 특히 이 전 대통령은 고령에 지병까지 있어 코로나19 걸리면 자칫 생명까지 위중한 상태로 번질 염려도 있다. 여권관계자는 통화에서 “혹시나 감옥에 있는 두 전직 대통령이 코로나19라도 걸려서 옥사를 하게 되면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엄청난 역풍을 맞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며 “코로나19가 하루 이틀 사이 잡히는 것도 아니고 감옥 특성상 전파가 빠른 것 같은데 이를 의식해서라도 ‘사면’을 건의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낙연의 결자해지
사면론을 두 팔 벌려 환영하는 쪽은 야당이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분열을 조장하는 국정 운영에서 벗어나 새해부터는 통합에 힘을 싣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환영한다”고 밝혔다. 유승민 전 의원도 “여당 대표의 발언이 진심이길 바란다”며 “문 대통령의 조속한 사면 결정을 기대한다”고 촉구했다.
문제는 여당 내 반대를 어떻게 헤쳐나가느냐다. 이 대표는 당 내 반발기류를 뚫고 사면 건의 당위성을 밀고 나갈 것으로 알려졌다. 지지율이 문 대통령 열성 지지층과 호남에 갇힌 상태에서 뚫고 나갈 동력이 필요했는데 사면 카드로 보수층의 관심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3일 오후1시 긴급최고위원회의가 소집될 예정이다. 이 대표는 우선 지도부를 설득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통화에서 “대선 지지율도 떨어지는 추세인데 이 건으로 당 내에서도 외면받을 가능성이 커졌다”며 “만에 하나 이 대표가 건의하고 대통령이 거절하기라도 하면 이 대표 대권행보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최형창 기자 calli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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