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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러날 때를 알아야 망하지 않는다”, 그림이 된 고전의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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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12-28 12:00:00 수정 : 2020-12-28 10:3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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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왕실에서 제작한 ‘예원합진’에 실린 ‘횡거철피’ 그림과 내용을 설명한 글. 중국의 대학자인 장횡거, 정호, 정이 세 사람의 만남을 담은 이 글과 그림은 “그칠 때를 알아야 한다”는 교훈을 전한다. 아트북스 제공

점잖은 모습의 세 선비가 탁자를 사이에 두고 앉았다. 탁자 위에 책을 두었고, 손짓을 하는 것으로 보아 어떤 주제를 놓고 토론을 하는 것 같다. 그들을 시중드는 것인지 동자가 한 켠에 서 있다. 아이는 호피(호랑이 가죽)를 들었다.  

 

‘횡거철피’(橫渠撤皮·장횡거가 호피를 거두다), 조선후기 왕실 자제를 교육하기 위해 제작된 학습서 ‘예원합진’(藝苑合珍)에 실린 그림이다.

 

선비들은 누구이며, 동자는 왜 호피를 들고 있는 걸까. 왕실 자제들은 어떤 교훈을 취했을까. 

 

옛그림의 감상은 이런 번거로운(?) 질문이 풀려야 온전해질 때가 종종 있다. 이 때 모티브가 된 사건, 일화의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그림으로 옮겨진 사건, 일화는 “선조들이 각별히 마음에 새겼던 메시지”를 담고 있어 특정한 도상(圖像)으로 압축되어 오랜 세월 반복적으로 그려졌다. 

근간 ‘고전과 경영’(고연희, 아트북스)은 예원합진에 실린 24점의 그림과 글의 의미를 풀어준다. 전문화원들이 그린 그림은 “고전 중의 고전에 가려 뽑은 글들”의 의미를 쉽게 전달하기 위한 것이다. 그림과 글의 만남을 통해 전해진 메시지는 오늘날에도 음미할 만한 가치를 품고 있다.  

 

◆“그칠 데를 알면 위태롭지 않다”

 

‘횡거철피’의 주인공 장횡거는 중국 북송의 대학자다. 그와 마주앉은 두 사람은 정호, 정이 형제. 조선의 사상적 기반이 된 주자학의 토대를 닦은 유학자로 평가를 받는 인물들이다. 그림은 이들 세 사람이 ‘주역’을 토론하는 모습을 포착했다. 정씨 형제와의 만남 다음날 장횡거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지난날 강의한 것은 도를 혼란하게 한 것이다. 두 정씨가…도를 밝게 알고 있어 내가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니더라. 그들을 스승으로 삼을 만하다.”

 

정씨 형제가 자신보다 낫다는 걸 깨끗하게 인정하고 흔쾌히 물러난 것이다. ‘스승의 자리’를 의미하는 물건인 호피를 동자가 들고 있는 것이 이런 결단을 상징한다. 유학자들이 암송했던 경전인 ‘대학’은 이를 “그칠 데를 안다”는 말로 강조했다. 책은 “내가 물러나면 일이 안 되리라는 기우로 스스로를 속이는 이도 있고,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도 그치지 않는 이도 적지 않다”며 “욕심이 많아 그치지 않으면 일도 망치고 망신을 당할 수 있다”고 그림의 의미를 해석했다. ‘노자’에서도 “족함을 알면 욕을 당하지 않고, 그칠 데를 알면 위태롭지 않다”고 가르쳤다. 

 

◆“직언과 경청은 어렵다” 

 

사내는 끌려나가고 있다. 얼마나 강하게 버텼는지 난간이 부러졌다. 그의 외침은 난간 파편을 들고서 이어지니 그 고집을 알 만하다. 그 옆에 다른 한 사내가 머리를 조아리고 무언가를 고하고 있다. 두 사내 모두 황제에게 직언을 하는 중이다. 

 

끌려나가는 사내는 주운, 머리를 조아린 사내는 신경기, 황제는 한나라 성제다. 주운은 성제가 총애하는 장우를 간신이라고 주장하며 목을 치라 주장한다. 화가 난 성제가 끌어내려 하자 난간을 붙잡고 늘어졌고, 실랑이 끝에 난간 일부가 부러졌다. 신경기는 주운을 죽여서는 안된다고 만류하고 있다. 

 

여기까지 설명하면 이 그림 ‘주운절함’(朱雲折檻·주운이 난간을 부러뜨리다)의 의미를 알아차리는 게 어렵지 않다. 바른 말을 해야 하고,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태도를 강조했다. 하지만 직언은 말처럼 쉽지 않다. 특히 최고권력자를 상대로 한 것이라면 때로 목슴을 건 모험이 되기도 했다. 조선에서 ‘삼강행실도’, ‘오륜행실도’ 등을 통해 ‘주운절함’이 반복적으로 그려진 건 직언의 어려움과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책은 “부하의 말을 제대로 듣는 상관, 자식의 말을 이해하는 부모, 제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스승이 되기란 쉽지 않다”며 우리 주변을, 자기 스스로를 돌아보길 권한다. 

 

◆“인생행로의 처신은 겸손이 바탕”

 

한고조 유방의 일급참모인 장량의 업적은 크다. 폭정의 주체인 진시황의 죽이려는 기개를 보였고, 항우의 암살계획에서 유방을 구했다. “장막 속에서 책략을 세워 수천리 밖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칭송을 받은 그다. 그런데 ‘장자방’이란 말로 대표되는 위대한 전략가 장량이 한 노인에게 짚신을 바치는 변변찮은 모습으로 종종 묘사된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교수리’(圯橋授履·흙다리 위에서 짚신을 드리다)가 그것이다. 

 

일찍이 장량은 황석노인에게서 ‘태공병법’이란 책을 얻어 큰 지혜를 갖게 된다. 두 사람의 첫만남을 그린 것이 이교수리다. 황석노인은 장량을 만나 신발을 일부러 다리 아래로 떨어뜨리며 “신발을 가져와 신겨달라”고 말한다. 장량은 “화가 치밀어 노인을 때려주고 싶었지만” 속으로 삭이고 황당한 요구를 들어준 것이 값진 인연의 시작이었다.    

 

장량의 태도는 겸손을 밑바탕으로 한다. 책은 ‘주역’을 통독하면 “인생행로의 여정에는 행운과 불운이 갈마들기 마련인데, 그 상황을 처신하는 방법은 자신의 부족함을 성찰하고 ‘겸’의 덕을 유지하며 조심하는 태도”라며 “이 때문에 천한의 장량이 공손하게 몸을 숙여 짚신을 받들어 올리는 이미지가 그려지고 또 그려졌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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