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다란 안테나를 얹은 채 높은 하늘을 유유히 비행하는 군용기가 있다.
지상 레이더로는 파악하기 어려운 것까지 탐지하는 첨단 무기다. 얼핏 보면 우스꽝스러운 외형을 지니고 있지만, 위력은 막강하다. 이 장비가 현대 공군의 핵심인 조기경보통제기(AEW&C)다.
냉전 이후 세계 각국에서 군비 축소 기조가 이어져 한때 수요가 주춤했지만, 넓은 영공을 효율적으로 지키고자 조기경보통제기를 추가 구매하거나 새롭게 도입하려는 사례가 늘고 있다.
단순히 공중 위협만 탐지하는 수준을 넘어서 지상과 해상을 감시하고, 전자정보를 모으는 등 다목적 전자정보 수집 체계로 진화하기도 한다.
무인시스템이 사람이 탑승하는 조기경보통제기를 대체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지만, 현재까지는 무인기 성능이 조기경보통제기를 대신할 수 있는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어 세계 각국은 조기경보통제기 확보를 추진중이다.
◆미국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 확보 나서
조기경보통제기 경험이 가장 풍부한 나라는 미국이다.
1970년대 개발된 E-3는 최대 650㎞ 거리에 있는 항공기를 포착할 정도로 성능이 우수하다. 걸프전쟁과 코소보 전쟁, 이라크와 아프간 전쟁 등 미국이 개입한 전쟁마다 모습을 드러냈고, 지금도 여전히 쓰이고 있다. 북한 동향을 감시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한반도에 전개한다.

하지만 E-3의 생산이 종료된 상태에서 미군이 E-3를 신형 기체로 대체하는 작업이 늦어지면서, 미국에 의존하지 않고 조기경보통제기를 새롭게 도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정보·전자 기술이 발달한 덕분에 크기가 작은 장비로도 뛰어난 성능을 발휘할 수 있게 되면서 중·소형 비행기도 조기경보통제기로 쓰이는 추세다.
세계 각국의 방위산업이 성장하면서 ‘자주국방’을 추구하는 기류가 강해지는 것도 이를 부추긴다.
중국과 국경 분쟁 중인 인도는 조기경보통제기 6대 추가 확보에 나섰다. 기존에 운용중인 기종이 있었지만, 중국과 파키스탄보다 뒤진다는 평가가 나오자 조기경보통제기 숫자를 늘리려는 것이다.
인도가 구상하는 형태는 자국 항공사인 에어 인디아에서 에어버스 A320 여객기 6대를 확보, 다기능위상배열(AESA) 레이더를 포함한 조기경보체계를 탑재하는 방식이다. 인도에서 자체 개발할 레이더는 360도 탐지가 가능하다.
에어버스 A330 2대를 개조하는 방안도 수년간 검토했으나, A320을 활용하면 더 많은 수량을 확보할 수 있으며 비용 절감 효과도 있다는 점을 감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에 만든 팰콘 시스템과 자국산 네트라 체계를 갖추고 있는 인도는 조기경보통제기 전력 증강을 위해 러시아산 항공기 2대에 팰콘 시스템을 탑재하려 했으나, 관련 비용이 15억 달러를 초과해 이뤄지지 못했다.

중국은 자국산 KJ-500 등 30대의 조기경보통제기를 갖고 있으며, 파키스탄은 중국산과 스웨덴 사브 2000 8∼10대를 운용중이다.
브라질은 자국 업체인 엠브라에르가 만든 E-99M을 도입하고 있다. 엠브라에르의 비즈니스 제트기에 스웨덴 사브 레이더를 장착, 2000년대 초에 전력화한 E-99의 레이더와 통신체계 성능을 높인 형태다.
브라질은 2020년대 초까지 개량 작업을 마친 후 영공 방어, 아마존 밀림 감시, 마약 밀수 단속 등에 투입할 예정이다.
아랍에미리트(UAE)는 스웨덴 사브의 글로벌아이 3대 도입을 결정하고 기체를 인도받고 있다.
미 해군 항공모함에 탑재할 용도로 개발됐던 E-2C 조기경보기는 미국, 일본, 대만, 프랑스 등에서 쓰이고 있다. 최근에는 최신형인 E-2D로 교체되고 있다.
E-2D는 최신 레이더를 사용해 스텔스기를 탐지할 수 있으며, SM-6 함대공미사일을 원거리에서 유도한다. 덕분에 수상함들은 수평선 밖에 있는 적기를 공격할 수 있다.
프랑스는 2020년대 후반까지 항모 샤를 드골에서 운용중인 E-2C를 대체할 예정이며, 일본은 지난해 E-2D 1호기를 인수했다.

◆한국도 추가 도입 추진…미국·유럽 기종 경합
한국도 2011~2012년 미국 보잉이 제작한 E-737 4대를 도입해 운용중이다.
항공기 윗부분에 긴 막대 모양의 레이더를 장착한 E-737은 보잉이 해외 판매용으로 제작한 기종이다. 360도 전방위로 최대 740㎞를 탐지하며, 유사시 특정 구역을 집중 감시하는 기능도 갖췄다.
북한 탄도미사일 발사 당시 궤적 추적에 투입돼 성능을 입증했으나, 한반도 주변 상공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조기경보통제기를 추가로 들여와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방위사업청은 지난 6월 제128회 방위사업추진위원회를 열어 조기경보통제기 해외 구매 계획을 담은 ‘항공통제기 2차 사업추진기본전략’'을 의결했다.
구체적인 도입 대수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2대일 가능성이 크다. 내년부터 2027년까지 진행되며, 총사업비는 1조5900억원이다.

후보 기종으로는 E-737과 글로벌아이가 거론된다. 최신 기종인 글로벌아이는 캐나다 봄바디어 글로벌 6000 비즈니스 제트기에 에리아이-ER 레이더를 장착한 기종이다.
대형 항공기는 650㎞ 거리에서 탐지할 수 있으며, 다양한 종류의 감시장비를 장착해 지상, 해상 목표물도 탐지가 가능하다. 기존 조기경보통제기보다 다목적 감시능력이 강화됐다는 평가다.
제트스키 크기의 목표물도 포착, 소형 선박에 의한 침투 시도 저지는 물론 잠수함 탐지에도 도움이 된다.
비즈니스 제트기 중에서도 항속거리가 긴 기종을 플랫폼으로 사용한다. 덕분에 11시간 이상 비행을 할 수 있어 한반도에서는 1회 비행으로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과 인근 해역을 폭넓게 정찰할 수 있다.
공중에서 탐지한 표적 정보를 위성통신으로 지상부대나 함정, 전투기에 제공할 수 있다.
E-737은 공군이 기존에 운용중인 기체이지만, 미군이 쓰지 않아 한미 간 상호운용성 효과가 크지 않다는 평가다.
2000년대 초 개발된 이후 눈에 띄는 수준의 성능개량이 이뤄지지 않았고, 생산도 2010년대 초반에 중단됐다. 생산 라인을 재가동하면 비용이 상승하는 문제가 생긴다. 고장이 잦아 운영유지비가 많이 든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이같은 문제는 E-3를 E-737로 대체하려는 영국에서도 논란거리다.

영국은 E-3 4대를 보유하고 있으나, 1대는 유지보수 전용이다. 나머지 중 1대는 운용을 중단했다. 실질적으로 쓸 수 있는 기체는 2대 뿐이다. 수명연장도 불가능하고, 유지도 쉽지 않다.
이에 따라 영국 공군은 E-737 5대를 20억 파운드(3조 원)를 들여 도입할 계획을 갖고 있다.
하지만 경제적 문제 등으로 영국 공군은 내년에 150억 파운드(22조 5000억 원)의 예산을 삭감해야 하는 처지다. E-737 5대를 도입하려는 기존 계획의 축소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치열하다.
영국 입장에서는 호주가 E-737을 쓰고 있어 정보공동체인 파이브 아이즈(미국, 영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와의 긴밀한 협력이 가능하다.
그러나 호주 공군은 2030년대 중반에 E-737을 퇴역시킬 예정이라 영국이 상호운용성을 발휘할 기간은 10년이 채 안된다.
한국이 E-737을 운용하면서 크고 작은 고장에 시달리고 있고, 성능개량 비용이 막대하다는 점은 영국에도 알려진 상태다. 비용 압박에 따른 작전 운용 저하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이를 다소나마 해소하려면 E-737 도입 규모를 줄일 수밖에 없다. 도입 수량을 축소하면 예산 절감 효과는 있으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내 군사작전이나 퀸 엘리자베스 항공모함 지원 등의 임무 수행이 불가능하다.
에어버스와 사브가 제안한 A330 여객기에 에리아이 레이더를 탑재한 것을 포함해 다른 기종들을 영국 정부가 거절한 것을 두고 “성능이나 비용 효율 등을 다르게 평가했다면 다른 결론이 나올 수 있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국도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조기경보통제기 추가 도입 사업을 추진한다. 감시정찰자산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항공기 대수와 비행 횟수를 유지하는 것이다. 일정 수준 이상의 정찰과 비행능력을 값싸게 제공할 수 있는 방안이 절실한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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