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비핵화 협상 사실상 원점
北, 지렛대 확보 위해 도발 가능성
보텀업 변화 대응… 韓 역할 고민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식이 한 달 남았다.
지난 대선에서 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아직 불복 의지를 꺾지 않고 있다. 하지만 공화당 지도부조차 바이든 승리를 축하하고 나선 만큼 ‘선거 부정이 없다면 절대 패할 리 없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몽니는 어떤 식으로든 정리될 것 같다.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면 트럼프 대통령이 4년간 쏟아낸 수많은 행정명령을 원상복구하는 데만 수년이 소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법적 효력이 있는 행정명령들을 거둬들이는 데 들어갈 물적·인적 비용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파리 기후변화협약,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세계보건기구(WHO), 이란 핵협상 등 트럼프 정부에서 탈퇴한 국제기구 및 협약 등의 재가입 여부를 취임 초 결정지을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당선인은 취임 100일 안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1억명에게 접종하겠다고 했다. 백신 접종 개시 후 제기된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내년 가을쯤에는 ‘집단면역’을 기대하고 있다. 아울러 지난 대선 기간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유일하게 뒤진 경제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기 위해 여러 복안을 준비 중이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봉쇄로 피해가 집중된 중소 상공인 등에 대한 대대적 지원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은 반(反)트럼프 진영의 합작품이라고 미 언론은 평가한다. 지지층의 이념적 스펙트럼은 물론 인종의 폭이 워낙 넓다 보니 새 행정부의 내각 구성이나 초기 운영 과정에서 혼란이 작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특히 흑인과 아시아계 등이 바이든 당선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며 내각 구성에서 좀 더 많은 ‘지분’을 요구해왔다고 미 언론은 전했다.
바이든 시대의 북·미 관계는 어떤 궤적을 그릴까.
트럼프 행정부의 지난 4년을 검토하고 되돌리는 데 앞으로 4년으로도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에서 ‘새 행정부 출범 초기부터 북한과 대화에 나서야 한다’는 우리 정부의 입장은 다소 공허할 수 있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도 비핵화 협상을 외면할 수만은 없는 만큼 북한과의 첫 대화가 어떤 식으로 시작될지가 최대 관심사로 떠오른다.
북한은 미국 정권교체기나 새 정부 출범 초기에 도발을 감행한 사례가 많다. 아울러 ‘톱다운’ 방식의 협상을 이끌던 트럼프 대통령의 퇴장으로 협상이 사실상 원점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북한 입장에선 협상 지렛대 확보가 시급할 수 있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과 더불어 북한이 도발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의 근거다. 북한 도발로 남북 및 북·미 간 긴장이 고조되고 이를 완화하기 위해 대화가 ‘강요’된다면 비핵화 시간표는 더 늦춰질 수밖에 없다.
북한이 당분간 바이든 행정부의 행보를 지켜볼 것이란 시각도 있다. 굳이 미국 새 행정부를 먼저 자극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에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얼마 동안은 관망하겠지만 결국 분위기 탐색을 위한 ‘행동’에 나설 것이란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나 핵실험 등 고강도 도발이 아니더라도 한·미 등 주변국 시선을 집중시킬 만한 ‘이벤트’를 시도할 수 있다는 얘기다.
바이든 행정부가 먼저 대화 재개를 시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하지만 실무협상을 우선시하는 바이든 측 입장에 북한이 얼마나 동조할지 미지수다. 아울러 대화 재개를 앞두고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는 의지는 미국 새 행정부도 마찬가지다. 트럼프 행정부가 사실상 묵인해 온 북한의 인권 문제를 꺼내들고, 중국·러시아의 비협조 탓에 느슨해진 대북 제재의 그물도 더 촘촘히 짤 공산이 크다.
우리 정부로서는 최악의 상황일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의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정상회담장으로 이끌어낸 것처럼 바이든 행정부의 첫 북·미 대화에서 한국의 역할을 고민할 시점이다. 대북 제재 등을 통해 지렛대 확보에 나설 것으로 보이는 바이든 행정부에 어떻게 대응할지, ‘보텀업’ 방식으로 진행될 바이든 행정부의 비핵화 협상 테이블에 북한을 어떻게 유인할지 묘수를 찾아야 한다.
정재영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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