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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 잃지 않는 삶에 대하여 [작가 이윤영의 오늘도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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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7-09 12:39:42 수정 : 2023-08-20 18: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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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참 근엄하신 분이셨고, 바쁜 분이셨다. 다섯이나 되는 자식에 어머니(나에게는 할머니)와 두 동생, 아내까지 그 많은 사람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막중한 임무를 갖고 태어난 사람처럼 (~처럼 이라고 표현했지만 현실이었다) 하루 24시간을 쪼개고 쪼개 열심히 사셨다. 이른 새벽이면 일터로 나가셨고, 늦은 밤이 되어야만 집으로 돌아오셨다. 

 

아버지의 아버지 즉 나의 할아버지는 평생 목수로 사셨다고 한다. 그 시대에는 누구나 그렇듯 가난했고, 할아버지는 손재주는 뛰어나신 분이었지만 경제력은 ‘제로’에 가까우셨던 분이셨던 것 같다. 목수였던 아버지의 피를 물려 받아서인지 아버지는 ‘뚝딱뚝딱’ 뭐든 잘 만드는 분이다. 지금도 나의 책방 한쪽 면을 그득 채운, 바닥부터 천장까지 빌트인이라고 해도 믿을만한 책장은 아버지가 손수 만든 20년도 넘는 것이다. 손재주 많은 사람은 입에 풀칠을 하지만 평생 손에서 일이 마를 날이 없어 고생한다는 말이 있다. 해야 할 일도 많고, 할 줄 아는 것도 많은 사람이  나의 아버지다. 아버지는 한시도 쉴 틈이 없으셨고, 그 탓에 먹는 시간마저 참 아끼셨다. 

 

그래서 점심식사로 국수를 자주 드셨다. 삼시세끼 집밥을 먹어야 하는 ‘간 큰’ 남자에게 먹기 쉽고 간편하게 바쁜 와중에도 배를 채울 수 있었고, 대가족에 직원들 식사까지 준비해야 하는 아내에게 그나마 덜 눈치가 보이는 그런 음식이 바로 국수였다. 

 

아버지의 이런 사랑 때문인지 엄마는 국수를 참 잘한다. 기본적인 잔치 국수, 비빔 국수는 물론이고 열무 국수, 동치미 국수, 어묵 국수, 칼국수 등 국수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국수’는 거의 집에서 맛보았던 것 같다. 나도 옆에서 어깨 너머로 배운 탓에 국수라면 특히 소면 삶기 기술은 조금 괜찮은 편이다.  

 

탱탱한 면발을 자랑하는 소면은 뜨거운 물에 삶아 찬물에 대차게 헹구어내는 여름철 별미로, 콩국수 앞에서 그 위용을 자랑한다. 

 

그날도 역시 온 식구가 둘러앉아 점심으로 콩국수를 먹던 날이었다. 바쁜 아버지는 콩국수를 얼른 드시고 다시 일을 하기 위해 나가야 하셨고, 식구 앞에는 한 그릇씩 콩국수가 주어졌다. 적당한 소금을 넣고 국물 한사발을 쭉 들이킨 아버지는 우리에게 이런 말을 하셨다. “애들아, 국수를 먹고 나서는 절대 뒤를 돌아봐서는 안 돼!”

 

‘이게 무슨 아닌 밤에 홍두깨 같은 소리인가’ 나는 한 입 가득 국수를 입에 물고 아버지의 말을 경청했다. 호기심 많은 둘째 언니가 앙칼진 목소리로 대꾸했다. “아빠, 그게 무슨 말이야? ‘전설의 고향’이야? 왜 뒤돌아보면 안 되는 데?”

 

“왜냐하면, 뒤돌아보면 금방 꺼지거든” 

 

이 말을 하시고 난 아버지는 국수를 드시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눈썹이 휘날리게 다시 당신의 일터가 달려가셨다. 

 

그날 우리는 ‘아빠가 저렇게 웃긴 사람이었나?’라며 킥킥대면서 웃기에 바빴다. 점심을 먹자마자 또다시 일터로 나가야 했던 아버지, 국수는 밀가루 음식이라 먹을 때는 배부르지만 금방 허기를 느껴 하신 말이라는 것을 아주 큰 어른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어쩌면 아버지는 ‘뒤로 돌아보지 않고’ 다시 일터로 나가야 하는 미안한 아비의 마음을 그렇게 표현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여전히 국수를 먹을 때면 이 이야기를 나눈다. 나처럼 다른 형제도 이 말이 꽤 기억에 남았나 보다. 국수를 먹고 난 뒤에는 절대 뒤돌아보지 말 것.

 

글=이윤영 ‘글쓰기가 만만해지는 하루 10분 메모글쓰기’ 작가

그림=강희준 그림책 ‘구방아, 목욕가자’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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