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헝가리 극우 정권이 동성 커플의 자녀 입양을 사실상 금지했다. 헌법에서 ‘가족’의 개념을 재정의해 동성 커플은 부모가 될 수 없다고 못 박은 것이다. 성 소수자(LGBTQ) 권리를 헌법으로 제한한 이번 움직임에 인권단체와 성 소수자 단체의 항의가 잇따르고 있다.
dpa통신 등 외신들에 따르면 헝가리 의회는 15일(현지시간) 이런 내용을 담은 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 헌법은 결혼을 ‘남자와 여자의 결합’으로 규정하면서 ‘가족의 근본은 결혼 및 부모-자녀 간 관계이다. 모친은 여성이고, 부친은 남성이다’라고 명시했다. 출생 당시의 성적 정체성에 대한 아이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헌법적 가치와 헝가리의 기독교 문화에 부합하는 양육을 보장한다는 조항도 삽입됐다.
CNN방송에 따르면 헝가리에서는 일반적으로 결혼한 부부만 입양할 수 있으나, 독신자들을 위한 일부 예외 조항이 있어서 동성 커플이 아이를 입양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었다. 그러나 이번 헌법 개정으로 동성 커플의 입양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는 평가다.
이번 헌법 개정은 2010년부터 3연임하며 10년째 장기 집권 중인 극우 성향 빅토르 오르반 총리가 이끄는 집권 여당 ‘피데스’가 주도했다. 피데스는 의회 내 199석 가운데 117석을 점한 다수당이다.
헝가리 보수파 의원들은 “헌법은 국민의 의지를 표현하는 살아있는 틀이며, 우리가 원하는 삶의 형태를 담고 있다”며 “그러나 두 개의 성을 포함한 모든 전통적인 가치를 상대적인 것으로 만드는 사고방식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헌법 개정 이유를 밝혔다.
총리실은 “헌법 개정안은 헝가리 가족의 보호와 우리 아이들의 안전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며 환영했다.
헝가리는 유럽연합(EU) 회원국이지만, 오르반 총리는 성 소수자나 이민 등 분야에서 EU 지도자들이 ‘헝가리 민주주의를 해칠 것’이라고 경고한 법안들을 강행 처리해왔다. 지난 5월에는 성전환자들이 신분증명서상 성별을 변경하는 것을 불법화했고, 지난 10월 게이 캐릭터가 있는 아동 서적을 두고 논란이 일었을 때는 “동성애자들은 아이들에게 손대지 말라”며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헝가리는 동성 결혼 대신 ‘동성 결합’을 허용해 이성 부부와 동등한 권리를 인정하지만, 오르반 총리는 동성 결혼 합법화에 반대해왔다.
인권단체들은 규탄했다. 국제앰네스티 헝가리 지부는 “오늘은 헝가리 LGBTQ 공동체와 인권에 암흑의 날”이라며 “코로나19 대유행을 틈타 강행 처리된 차별적이고, 동성애·성전환 혐오적인 새 법으로 LGBTQ에 대한 공격이 추가됐다”고 했다.
성전환자 권익을 보호하는 ‘트랜스젠더 유럽’도 “헝가리의 적대적 환경 아래 있는 성전환자들의 건강과 안전이 매우 우려스럽다”며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헝가리의 성 소수자 문제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유태영 기자 anarchy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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