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시, 가습기살균 폐손상 알고도 은폐… 김앤장도 관여”

사참위 조사결과 발표
“폐렴 등 증상에 실험 중단 정황
법률자문 김앤장도 보고서 왜곡”
사참위, 진상규명 추가조사 요구
옥시 “깊은 사과… 해결책 논의”
김앤장 “보고서 바탕 변론” 해명
진상규명 제외 법안 국회 통과에
사참위 소위원장 항의, 사퇴 표명

피해자들 위한 묵념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관계자들이 9일 서울 중구 위원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옥시레킷벤키저와 김앤장의 가습기살균제참사 축소·은폐 의혹’ 조사결과 발표 기자회견에 앞서 묵념하고 있다. 연합뉴스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일으킨 옥시레킷벤키저(옥시) 측이 자체 실험에서 제품의 유독성을 확인했지만 이를 은폐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옥시 측의 법률 자문을 맡았던 김앤장 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들도 진상 규명을 지연하는 데 관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는 9일 이 같은 내용이 포함된 ‘옥시와 김앤장의 가습기살균제 참사 축소·은폐 의혹’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사참위는 “옥시와 김앤장 변호사들은 각종 흡입독성실험에서 가습기살균제의 독성과 폐 손상 결과를 확인하고도 옥시 제품에 독성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고 밝혔다.

사참위에 따르면 옥시 측은 2011년 질병관리본부가 가습기살균제와 폐 손상 사이의 연관성을 발표하자 본사 직원을 프로젝트 리더로 하는 가습기살균제 대응팀을 구성했다. 대응팀은 당시 옥시 대표이사와 본사 소속 변호사, 연구소 직원들로 구성됐는데, 사참위는 이들이 참사 관련 책임회피 활동을 했다고 보고 있다.

사참위는 2011~2014년 옥시가 의뢰한 흡입독성실험에서 가습기살균제 독성과 폐 손상 간 연관성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실험 결과에 ‘간질성 폐렴 증상 수반’, ‘폐의 초기 섬유화 증상 확인’, ‘모든 농도 노출에서 폐 손상 확인’, ‘폐에 급성국소염증·기관지 연관 림프조직 과다형성·화생 발견’ 등 내용이 담겼다는 것이다. 옥시는 서울대 산학협력단과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KCL) 등에서 관련 실험을 진행한 바 있다. 하지만 서울대 최종보고서에는 간질성 폐렴 데이터 등이 누락됐고, 연구소의 실험은 중단되는 등의 정황이 있었다는 것이 사참위 측 주장이다.

사참위는 또 옥시의 외부 법률자문을 맡은 김앤장이 서울대와 연구소 등이 진행한 실험 결과 보고회에 참석하고 최종보고서가 나오기 전 실험보고서를 수차례 검토했다고 주장했다. 사참위는 “옥시와 김앤장 변호사들은 실험 결과를 확인했음에도 데이터가 누락된 서울대 최종보고서를 근거로 ‘제품에 독성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고 밝혔다. 최예용 가습기살균제 사건 진상규명 소위원장은 “옥시와 김앤장이 참사 발생원인 규명에 혼란을 초래해 피해자에 대한 배상과 보상이 지연됐다”며 “이들에 대한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옥시 측은 “가습기살균제 제품으로 고통을 받으신 모든 피해자와 가족 분들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모든 책임 당사자가 협력해 해결책을 찾을 수 있도록 정부·업계와의 논의에 적극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김앤장은 “가습기살균제와 관련한 국내외 실험이나 보고서 작성에 관여한 바 없다”며 “전문가가 작성한 보고서에 근거해 변론 업무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한편 최 소위원장은 이날 국회가 사참위 업무에서 가습기살균제 참사 진상규명을 제외하는 법안을 상임위에서 통과시킨 데 대한 항의 뜻으로 사퇴를 표명했다. 앞서 국회 정무위 안건조정위는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대표 발의한 ‘사회적 참사 특별법’ 개정안을 수정 의결하면서 사참위 활동기간을 1년6개월 연장하는 데 합의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가습기살균제 참사 진상 규명은 사참위 업무에서 제외하고 피해자 구제와 제도개선, 종합보고서 작성 등에만 한정하도록 했다.

이종민·백소용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