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성 갖춘 객관적 자료 부재
그럴듯한 괴담·성공담만 판쳐
모두가 피해자가 되는 안타까움
기억이 가물가물하긴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 시절이었던 것 같다. 그때(도) 강남 아파트값이 잡히지 않자 한국은행 총재에게 ‘부동산 가격을 안정화시킬 묘책이 있는지’ 질문이 집중되었다. 이 질문에 대해 ‘교육부 장관에게 물어보는 것이 보다 현실적일 것’이라 했던 총재의 답변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한국사회에서 사교육 시장과 부동산 시장은 여러모로 닮은꼴을 보이고 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 부동산과 사교육은 온 국민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다는 점에서 꼭 닮았다. 코로나19 위기를 뚫고 12월 3일 치러진 수능시험 당일, 하루 종일 마음 졸였을 사람들 숫자는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았을 것이다. 더불어 수험생 가족이 성공적 대입을 위해 사교육에 투자한 시간과 비용 또한 그 규모를 헤아리기조차 어렵긴 마찬가지였을 것 같다.

부동산도 ‘이로부터 자유로운 이가 몇이나 되리요’에 해당하는 핵심 이슈임이 분명하다. 지금 청년세대는 내 집(주로 아파트) 마련의 꿈을 포기한 지 오래라 하고, 최근 30대는 ‘영끌(영혼을 끌어모아)’ 해서 아파트를 구입함으로써 아파트값 상승을 견인하는 데 일조했다는 비난 어린 평가를 받기도 했다. ‘샀다고 취득세 내고 팔았다고 양도세 내고 갖고 있다고 보유세 내고 물려주었다고 증여세 내는 나라는 대한민국뿐’이라는 불만도 터져나오고 있고, “보유세가 너무 올라 내 집에 살면서도 비싼 월세 내는 꼴”이라는 하소연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모든 국민의 뜨거운 관심사임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두말없이 인정해 주는 전통적 의미의 전문가가 없다는 사실도 닮은꼴이다. 대신 부동산 시장과 사교육 시장에는 탁월한 감각과 자신만의 필살기로 무장한 스타 강사와 대박 유튜버 등 새로운 스타일의 권위자가 부와 명예를 누리고 있다는 점도 닮은꼴이다.
내게 익숙한 사교육 시장만 보더라도, 정부는 항상 사교육 유발 요인을 없애겠다는 명분을 앞세워 대입정책을 손보아 왔지만, 우리네 사교육 시장은 보란듯이 승승장구해 왔다. 정부가 내신과 학생부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바꾸는 순간 내신 및 학생부 관리를 위한 사교육 시장이 화려하게 번성해 갔으니, 공교육이 걸어가는 동안 사교육은 날아다녔다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 이어져온 셈이다. 와중에 수험생 학부모의 불안심리를 활용한 공포 마케팅도 기승을 부렸다. 이 상황에서 시종일관 애써 현실을 외면해온 교육부의 인내에 경의를 표하고 싶을 정도다. (내게 익숙지 않은 부동산 정책 또한 교육 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정부가 정책을 입안하면 국민이 대책을 마련하는 ‘웃픈’ 현실이 지속되는 배경에, 신뢰성과 타당성을 갖춘 객관적 자료의 부재가 자리하고 있음도 사교육과 부동산 시장의 닮은꼴이다. 실제로 모든 대학의 입시 관련 자료는 ‘대외비(對外秘)’로 분류된다. 각 학과의 커트라인, 추가 합격자 비율, 동시 합격 시 어느 대학을 선택하는지 등에 관한 정보는 대학이 공개하지 않는다. 불안한 학부모들은 거액의 상담료를 기꺼이 지불하고 내로라하는 ‘입시전문가’를 찾아 강의도 듣고 상담도 받지만, 입시전문가들이 보유한 정보가 얼마나 신뢰할 만한 것인지는 솔직히 의문이다.
부동산 시장에서 높은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스타들의 정보력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정말 중요하고도 핵심적인 부동산 관련 자료는 대외비로 관리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부동산계의 권위자들은 저마다 자신의 네트워크를 풀가동하여 정보를 수집하고 있을 것이요, 수집한 정보를 나름 훌륭한 상품으로 포장해서 판매함으로써 신뢰와 명성을 유지해 가고 있을 것이다.
진짜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고 폭넓게 공유되지 않는 상황에서 나타나는 전형적 현상은 믿거나 말거나 부류의 ‘괴담 및 성공담’이 주류 담론을 형성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대치동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엄마 네트워크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그 이전에 이사를 가야 한대” “친구 시누이네는 싱가포르 비자로 딸을 인터내셔널 스쿨에 보냈는데 사교육비가 한 달 평균 500만원 넘게 들었대. 그래도 올해 미국 명문대에 들어갔대” “우리 아파트 5층네는 최고의 과외선생님만 쓴 덕분에 딸은 S대에, 아들은 의대에 합격했대” 등 확인되지 않은 스토리들이 그럴듯하게 포장되어 왕성하게 떠다닌다.
부동산이라고 예외일까, “어린이집 친구 엄마는 5년 전 시댁에서 받은 유산으로 개포동에 전세 끼고 아파트를 샀는데 지금 그 아파트값이 5배나 올랐대” “내 친구네는 로또 분양에 당첨되어 한 달 만에 프리미엄만 1억 넘게 붙었대” “요즘은 상가도 짭짤한가봐. 우리 회사 부장은 성수동 예전 공장 부지의 상가를 3채 샀는데 완전 대박났대” 등 상대적 박탈감을 부추기는 성공담들이 밑도 끝도 없이 이어진다.
어쩌면 부동산과 사교육의 가장 닮은꼴은 시장이든 대학이든 각 제도에 내재한 자율성 및 자정능력을 불신한 채 정부가 공공의 선을 앞세워 일사분란한 통제력을 발휘한 결과 의도하지 않았던 부작용으로 인해 모두가 피해자가 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까 싶다.
함인희 이대 교수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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