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 땐 어려운 특수분장 많아”
“압박감 커…실패 용납 안 됐죠”

1980년대엔 특수분장이란 말 자체가 없었다. 특수분장 불모지였던 한국에서 홍기천(62) 특수분장감독은 영화 ‘혹성탈출’(1968)과 ‘프레데터’(1987)를 보며 독학으로 특수분장을 시작했다. 영화감독을 꿈꿨다.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그가 1987년 MBC에 분장사로 입사한 건 두 장의 사진 덕분이었다. 그 전엔 아크릴 가공업체에서 일했다.
“(한국 나이로) 서른 살에 늦깎이로 운 좋게 입사했어요. 영화를 좋아해 스태프를 해 보자 싶었죠. 배우 최진실 매니저였던 배병수와 어릴 때부터 친구였습니다. 같이 영화를 보러 다녔죠. ‘혹성탈출’을 많이 봤거든요. 하도 신기해 조각 연습도 하고 가면을 만들어 쓰고 사진 두 장을 제출했습니다.”

하나는 ‘혹성탈출’ 원숭이, 다른 하나는 좀비를 연상케 하는 분장을 한 모습이었다. 그는 원숭이 가면에 대해 “점토로 조각하고 석고로 떠 만들었다”며 “아크릴 물감으로 칠하고 머리엔 빗자루와 누나가 잘라 버린 머리카락을 붙였다”고 설명했다.
MBC 입사 뒤 처음 한 특수분장은 어린이 프로그램 ‘모여라 꿈동산’의 외계인 분장이었다.
“선배들이 할 줄 모르니 날 시키는 거예요. 결혼한 지 몇 달 안 된 때였는데 회사에서 먹고 자며 밤새 연구했어요. 라텍스로 만들어 성공했죠.”

전성기는 얼마 안 돼 찾아왔다. 드라마 ‘동의보감’(1991)에서 실리콘 더미(인체 모형)를 최초로 개발해 사용한 것. 실리콘 더미는 업계에서 갓난아기, 시체 등 장면에 널리 쓰인다. 그는 “‘동의보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특수분장을 제대로 한 게 ‘동의보감’이었거든요. 참수 장면이 있어 두상이 필요했어요. 어떻게 하란 건가, 대본을 보고 놀랐죠. 연구하느라 세월을 많이 보냈는데 가장 먼저 창틀 실리콘이 떠올랐어요. 창틀 실리콘이 반투명한 걸 알았거든. 화장품을 녹이니 색이 나오더라고요. 그걸로 실리콘 더미를 최초로 만들었죠.”

쥐와 관련한 일화도 잊을 수 없다.
“흰쥐 30마리가 온 거예요. 쥐가 시체를 파 먹는 장면이 있었거든요. 근데 흰쥐는 안 된다는 거야. 쥐를 잡아 일일이 꺼멓게 칠하고 드라이어로 말렸죠. 역겹더라고요. 쥐에게도 몇 번 물리고, 그땐 너무 잔인했어요.”

그는 ‘동의보감’과 함께 1990년대 대표작으로 ‘납량특집 M’(1994)을 꼽는다.
“‘M’ 때 굉장히 어려운 특수분장이 많았어요. 의도한 대로, 실패 없이 됐어요. (드라마) 국장 하고 많이 싸웠죠. 너무 무섭다고요. 심은하 배에서 아기가 발광하는 게 있는데 결국 삭제됐어요. 그 아기도 직접 만들어 심은하 배에 붙인 거고요.”
그는 “못 만드는 게 없는 것 같다”는 말에 “그땐 ‘이걸 안 하면 큰일 난다’, ‘프로그램 망쳐 버리면 인생 끝이다’는 압박감이 컸다. 결과만 따지고 실패가 용납되지 않았다”고 돌아봤다.
박진영 기자 jy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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