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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개월 ‘추·윤 갈등’…文 침묵의 종착지는 '직무배제'

입력 : 2020-11-25 06:00:00 수정 : 2020-11-25 08:2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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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정사 처음… 秋·尹 갈등 파국
“윤석열 비위 혐의 다수 확인돼”
언론사 사주 접촉 등 6개 사유
尹 “秋 명령은 위법… 법적 대응”
文대통령은 보고 받고도 침묵

현직 검찰총장이 헌정사상 처음으로 법무부장관으로부터 직무배제를 당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24일 윤석열 검찰총장의 직무를 배제하는 동시에 징계를 청구했다.

 

추 장관은 이날 오후 6시5분쯤 서울고등검찰청 기자실을 찾아 “그동안 법무부는 검찰총장의 여러 비위 혐의에 관해 직접 감찰을 진행했고 그 결과 심각하고 중대한 비위 혐의를 다수 확인했다”고 밝혔다. 윤 총장은 즉각 “추 장관의 직무배제 명령이 위법하고 부당하다”며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응수했다.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법정에서 공방을 벌이는 초유의 상황도 피할 수 없게 됐다.

 

추 장관은 직무배제 첫번째 사유로 언론사 사주와의 부적절한 접촉을 들었다. 윤 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재직하던 2018년 11월 서울 종로구 소재 주점에서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을 만난 것을 문제삼았다. 추 장관은 “공정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는 부적절한 교류를 하여 검사윤리강령을 위반했다”고 언급했다. 이외에 △조국 전 장관 사건 등 주요 사건 재판부 불법 사찰 △채널A 사건·한명숙 전 총리 사건 관련 감찰·수사 방해 △채널A 사건 감찰 관련 정보 외부 유출 △정치적 중립에 관한 총장 신망 손상 △총장 대면조사 과정에서 감찰 방해 등 총 6개 사안을 직무배제 이유로 꼽았다. 그간 추 장관과 여권이 윤 총장과 대립해온 사안들을 망라했다.

 

추 장관 발표 직후 윤 총장은 언론에 배포한 입장문에서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지키기 위해 그간 한 점 부끄럼없이 검찰총장의 소임을 다해왔다”면서 “위법·부당한 처분에 끝까지 법적으로 대응하겠다”고 강력 반발했다.

24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 나무 사이로 바람에 펄럭이는 검찰 깃발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대검은 추 장관이 제기한 문제 모두에 대한 입장을 설명했다. 대검은 홍 회장과의 만남 등에 대해 “윤리강령상 저촉되는 것이 아니고 만남 직후 문무일 당시 검찰총장에게 보고를 한 사안”이라며 문제될 것이 없다고 반박했다. 다른 사안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추 장관의 발표 직전에 관련 보고를 받았지만 관련 사안에 대해 별도의 언급을 하지 않았다고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이 밝혔다.

 

조 전 장관 후임인 추 장관은 지난 1월 부임 후 인사권 갈등을 시작으로 1년 가까이 윤 총장과 갈등을 이어왔다.

직접 브리핑하는 추미애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 기자실에서 감찰 관련 브리핑을 열고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청구 및 직무배제 조치 등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추 장관은 채널A 사건을 시작으로 윤 총장의 가족·측근 수사에 대해 윤 총장의 지휘를 배제하는 수사지휘권을 발동하며 윤 총장을 압박했다. 윤 총장은 지난달 22일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며 추 장관과 대립각을 세웠고, 그동안 불거진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피력했다. 또 “사회와 국민을 위해 어떻게 봉사할지 퇴임하고 나서 천천히 생각해 보겠다”고 발언했다. 정치권 안팎에선 윤 총장의 정계 진출 가능성이 흘러나왔고 추 장관은 이를 직무배제 이유로 댔다.

 

추 장관은 “이번 징계 청구 혐의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다른 비위 혐의들도 엄정히 진상을 확인할 것”이라며 “검찰총장의 비위를 예방하지 못하고 신속히 조치하지 못해 국민께 심려 끼쳐 매우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윤 총장 가족·측근 관련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은 이날 ‘요양병원 부정수급’ 의혹과 관련해 윤 총장 장모인 최모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국민 피로감에도 끝까지 입 다문 文

 

문재인 대통령은 24일 윤석열 검찰총장의 직무를 배제하는 사상 초유의 조치와 관련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보고를 받고도 ‘별도의 언급’을 하지 않았다. 지난 10개월간 ‘추·윤 갈등’으로 국민 피로감이 쌓일 대로 쌓였는데도 끝까지 침묵으로 일관한 것이다. 일단 추 장관 결정을 ‘묵시적’으로 승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면서도 사안의 민감성을 감안해 ‘거리 두기’ 모양새를 취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내부에서는 이날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추 장관이 결국 윤 총장에 대한 징계청구와 직무배제 카드를 꺼내 들 것이란 예상이 최근 정치권에서 나돌았기 때문이다. 한 관계자는 “조금 시끄러운 모양새기는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추 장관이 판정승하는 국면에 진입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 의중에 촉각을 곤두세운 정치권에선 ‘침묵=승인’이라는 해석이 유력하다. 추 장관의 행동은 자칫 인사권자의 인사권에 정면으로 반기를 드는 식으로 비칠 수도 있지만 그에 대해 질책 등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또 추 장관이 직무배제를 향해 상황을 몰아가려는 조짐이 수차례 노출됐지만 청와대가 중간에서 이를 저지하려 들지도 않았다. 한 여권 관계자는 “추 장관이 청와대 핵심의 의중을 모르고 일을 벌였을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고 지적했다.

정치권에선 윤 총장이 직무정지에 대한 법정 투쟁을 통해 사태가 장기화할 수도 있지만, 이럴 경우 문 대통령이 윤 총장 해임 카드를 꺼내 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법무부의 감찰결과를 근거로 윤 총장 해임을 건의하는 형식을 취하면 문 대통령이 져야 할 정치적 책임을 상당히 덜 수 있다는 분석에서다.

 

청와대 참모들은 “이번 일은 어쩔 수 없다”는 인식이 강하다. 추 장관의 방식이 거칠고 국민적인 피로감을 안겨주고 있지만, 그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청와대에선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추 장관 임명 과정에서 윤 총장과 검찰이 수사라는 편법을 이용해 사실상 대통령의 인사권에 도전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추 장관을 엄호했다. 이낙연 대표는 페이스북에서 “법무부가 발표한 윤 총장의 혐의에 충격과 실망을 누르기 어렵다”며 “윤 총장은 공직자답게 거취를 결정하시기를 권고한다”고 밝혔다. 최인호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감찰결과가 사실이라면 징계 청구 혐의 요지 중 어느 하나 위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며 “윤 총장은 감찰결과에 대해 스스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野 “명백한 정치적 탄압… 秋의 무법전횡”

 

야권은 24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 직무를 배제한 데 대해 “명백한 정치적 탄압이자 보복”이라고 규탄했다. 그러면서 “추 장관의 무법전횡이 대통령의 뜻인지 입장을 밝히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검찰총장의 권력 부정비리 수사를 법무부 장관이 직권남용과 월권, 무법적 행위로 가로막는 것이 정녕 대통령의 뜻인지 확실히 밝혀주시길 바란다”고 밝혔다. 같은당 권성동 의원은 “대통령의 묵인 없이는 이런 일이 있을 수 없다”며 “대통령은 뒤에 숨고 장관이 홍위병처럼 날뛰듯이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비판했다. 김도읍 의원도 “독직폭행 혐의로 기소된 정진웅 검사도 직무배제를 안 하면서 사실관계가 확인이 안 됐고 기소도 안 된 검찰총장을 직무배제 시키는 것은 비례성이나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국민의당 홍경희 수석부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에서 “억지와 궤변으로 일관해온 추 장관의 주문제작식 감찰 결과를 신뢰할 수 없고, 이번 조치는 명백히 정치적 탄압과 보복의 성격을 띠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금태섭 전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이런 식이라면 댓글 수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엉뚱한 이유를 들어 채동욱 검찰총장을 사퇴하게 만든 박근혜정부와 뭐가 다른가”라며 “정말 경악스러운 일”이라고 비판했다. 정의당 정호진 수석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에서 “일련의 과정은 검찰총장 해임을 대통령에게 요구하는 것으로 해석된다”며 “청와대가 이 문제에 대해 방관할 것이 아니라 책임 있게 입장 표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도형·박현준·이현미 기자 scop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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