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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규의 책읽기 세상읽기] (54) ‘오래된 미래’ - 이웃·자연과의 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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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11-15 17:00:00 수정 : 2020-11-15 16:2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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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상은 끊임없이 위기로 비틀거리는 걸까? 언제나 이런 모습이었던가? 예전이 더 나빴던가? 아니면 더 좋았던가?”

 

스웨덴 출신 환경운동가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1992년 펴낸 책 ‘오래된 미래’의 첫 구절이다. 그는 이어 “티베트 고원과 고대문화의 고장 라다크에서 보낸 16년이라는 시간은 위의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을 극적으로 바꾸어버렸다. 나는 그동안 알고 있던 산업문화의 모습을 전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고 했다. 책에는 ‘라다크로부터 배우다’라는 부제가 달렸다.

 

노르베리 호지는 몇십년만에 처음 라다크를 찾은 외국인이었다. 그는 “당시의 라다크는 서구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은 상태였다”며 “그곳에서 나는 현대화된 외부세계가 그들의 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상황들을 목격했다”고 했다.

 

라다크는 인도 잠무카슈미르주의 히말라야산맥 인근 지역이다. 겨울이 8개월 이상 지속되는 척박한 땅이다. 라다크 사람들은 고원 이곳저곳의 소규모 정착지에 사는 자영농들이다. 1년 중 작물이 자랄 수 있는 기간이 4개월에 불과해 재배할 수 있는 작물이 보리 등으로 한정돼 있다.

 

노르베리 호지는 그들의 삶에서 검약에 대해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것은 풍요의 기본이 된다. 한정된 자원을 조심스럽게 아껴 쓴다는 것은 인색함과는 관계가 없는 것이다. 아주 적은 것에서 더 많은 것을 얻는다는 것. 바로 그것이 ‘검약’의 본래 의미라 할 수 있다.”

 

그들은 어떤 것도 그냥 버리지 않고 재활용한다. “그렇게 열악한 자원만을 가지고 라다크의 농부들은 거의 완벽한 자립을 이룰 수 있었다.”

 

라다크 사람들이 일하는 모습은 우리와 다르다.

 

“가지고 있는 연장이 단순한 것들뿐이어서 라다크 사람들이 일하는 데 소요하는 시간은 긴 편이다. … 그런데도 라다크 사람들은 시간에 대해 무척이나 여유로운 모습이다. 그들은 정말 느긋한 속도로 일을 하고 놀라울 정도로 많은 여가시간을 즐긴다. … 일을 서둘지 않고 자신들의 여유로운 속도에 따라 웃음과 노래를 섞어가며 즐겁게 한다. 일과 놀이 사이에 분명한 구분이 있는 것 같지 않다.”

 

이런 라다크 사람들에게 최우선이 되는 문제는 ‘공존’이다. 이웃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중시한다.

 

“상대의 마음을 상하게 하거나 화를 내서는 안 된다는 배려는 라다크 사회에 깊게 뿌리 내리고 있다. 사람들은 마찰이나 갈등이 생길 만한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

라다크는 소규모의 마을들로 이뤄져 모든 주민들의 직접 접촉과 상호의존도가 높기에 가능한 일이다.

 

“주민들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구조와 조직의 성격에 대해 잘 이해할 수 있고 총괄적으로 조망할 수 있다. 또한 자신의 행동이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그것이 다른 사람의 눈에 얼마나 잘 띌지를 알고 있기 때문에 보다 더 책임 있는 행동을 하게 된다.”

 

이들은 농기구나 가축을 공동으로 활용하며 수확기에는 함께 작업을 한다. 이처럼 긴밀하게 짜여진 공동체의 한 부분이 된다는 것은 깊은 안정감을 준다. 노르베리 호지는 이를 ‘상호발전과 통합의 사회’라고 규정한다.

 

“라다크 사람들은 자신들의 땅에 속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친밀한 일상의 접촉관계를 통해 그리고 계절의 변화, 필요한 것들, 한정된 것들 등 환경에 관한 이해를 통해 자신이 살고 있는 곳과 연결되어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속해 있는 생활의 흐름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인도 정부가 라다크를 관광지역으로 개방하면서 라다크 중심지에서 개발이 시작됐다. “개발은 사람들에게 인위적인 결핍감을 느끼게 했고 그 결과 구성원 사이의 경쟁의식은 더욱 커졌다.” 돈이 필요없던 곳에서 화폐경제가 활성화되고 외부세계의 영향력에 의존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그 결과 “라다크 사람들은 서로와 땅으로부터 분리될 수밖에 없었고 세계경제의 사다리 제일 아래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라다크 사람들은 관광 온 외국인들을 보면서 갑자기 자신들이 가난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미디어의 영향으로 서구문화가 갑작스럽게 유입됨에 따라 자신들의 고유문화에 대한 열등의식에 사로잡히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내가 라다크에 처음 왔을 때는 처음 보는 어린아이가 달려와 내 손에 살구를 꼭 쥐어주는 일이 많았는데 … 외국인들과 마주치면 빈손을 내밀며 ‘한 푼만 주세요, 한 푼만 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들에게 입버릇이 되어 버렸다.”

 

노르베리 호지는 전세계적인 서구화 현상, 다시말해 서구문화의 경험을 일반화하려는 경향에 대해 비판한다.

 

“서구문화가 다른 문화와 확연히 구분되는 점 가운데 하나는 너무나 널리 그리고 너무나 강력하게 전파되고 있어서 스스로를 돌아볼 객관적인 시각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 그것은 또 모든 사람들이 자신과 같거나 자신처럼 되고 싶어한다고 전제한다.” 

 

그는 “강요된 서구의 이미지를 추구한다는 것은 자신의 고유문화와 뿌리를 부정하는 것이며 결과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부인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에 따른 소외 현상은 적개심과 분노를 초래할 뿐만 아니라 오늘날 세계 전역에서 나타나고 있는 폭력 사태와 근본주의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어찌 해야 하는가. 그는 이런 해법을 제시한다.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세계가 너무 한쪽으로 치닫지 않고 균형을 유지하도록 그 방향을 전환해야 하는 것이다. 도시와 지방, 남성과 여성 그리고 문화와 자연 사이의 균형을 복원해야 한다. 라다크의 사례처럼 우리는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해주는 상호연계의 의미를 이해함으로써 향후 나아갈 방향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노르베리 호지는 개발이 반드시 파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면서 “보다 작은 규모의 정치와 경제 단위를 지향함으로써 상호연관성에 기반을 둔 더욱 폭넓은 세계관을 개발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그는 에필로그에서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생명의 상호연관성에 대한 자각이 자라나고 있다”며 “이러한 추세에는 흔히 ‘새로운’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지만 라다크 사회가 증명해 보인 것처럼 그것들은 아주 오래된 것들”이라고 강조한다.

 

“실제 그것들은 자연의 질서 속에서 우리의 위치를 인지하고 우리와 우리의 이웃 그리고 우리와 자연 사이의 분리될 수 없는 연관성을 인식하게 하는 숭고한 가치를 재발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학자 김호기는 ‘세상을 뒤흔든 사상’에서 노르베리 호지의 생태학과 관련해 “지구의 지속가능성은 물론 행복한 삶을 위한 조건에 대해 하나의 주목할 답변을 제시한다”고 했다. 지구 환경과 같은 미래 세대의 자산을 어떻게 보호하느냐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이웃·자연과 조화를 이루던 과거의 삶을 돌아보는 데서 출발할 수  있다. 라다크 사람들이 살던 방식은 우리 선조들의 방식과 다르지 않다.

 

박완규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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