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삼수만에 최고령 美대통령…'흙수저' 바이든, 꿈 이루다

관련이슈 디지털기획 , 미국 대선

입력 : 2020-11-08 07:00:00 수정 : 2020-11-08 10:09:51

인쇄 메일 url 공유 - +

조 바이든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가 지난 4일(현지시간) 새벽 자택이 있는 델라웨어주 윌밍턴의 체이스 센터에서 입장 발표에 나서며 주먹을 들어 보이고 있다. 윌밍턴 AFP=연합뉴스

미국 역사상 6번째로 어린 상원의원에서 최고령 대통령으로….

 

세 번째 도전 만에 미 대권을 움켜쥔 조 바이든은 78년 삶의 3분의 2가량을 정계에서 보냈다. 민주당 지역 모임에서 활동하다 1970년 델라웨어주 뉴캐슬카운티 의회에 입성한 것이 정치 인생의 시작이었다. 

 

2년 뒤에는 “우리는 서로의 의견 차이가 심화하는 것을 그냥 내버려두곤 했다”며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 공화당 거물 현역 의원을 꺾고 당선됐다. 며칠 뒤 만 30세 생일이 지나서야 상원의원 취임 선서를 할 수 있는 자격을 갖췄을 정도로 젊은 나이였다.

 

1942년 아일랜드 혈통의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10살 때 고향인 펜실베이니아주 스크랜턴을 떠났다. 부친이 델라웨어주 윌밍턴에서 자동차 세일즈맨 자리를 얻으면서였다. 유년 시절 말더듬증이 심했지만 가족과 교사(수녀)들의 도움으로 극복했다. 어려서부터 대통령을 꿈꿨던 그는 흙수저 출신이 정치인이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처럼 보였던 변호사로 진로를 정했다.

 

화려하게 정계에 진출했지만, 그의 인생은 굴곡이 심했다. 상원의원 당선 6주 만에 사고로 부인 닐리아와 13개월 된 딸 나오미를 잃었다. 생존한 두 아들 보와 헌터도 뼈가 부러지고 머리를 다칠 정도의 큰 사고였다.

 

바이든은 의원직을 포기하려 했다. 마이클 맨스필드 당시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가 “딱 6개월만 해 보자”며 그를 설득했다. 아들 둘이 입원한 병원에서 눈물의 취임 선서를 한 그는 워싱턴까지 왕복 4시간 거리를 기차로 통근했다. 엄마를 잃은 보, 헌터와 최대한 함께하기 위해서였다. 업무에 파묻히며 비극을 떨쳐냈고 1977년 교사이던 질 제이컵스와 재혼해 딸 애슐리를 낳았다.

바이든은 이후 내리 7선을 하면서 36년간 상원의원으로 일했다. 8년간 법사위원장, 4년간 외교위원장을 지내며 독일 통일, 코소보 사태, 9·11 테러, 이라크 전쟁 등을 경험했다.

 

이념적으로는 당내 중도파로 분류된다. 흑백 통합 교육을 위해 추진된 강제 버스 통학 정책에 반대한 게 대표적 예다. 교실 내 고른 인종 분포를 위해 아이들이 집에서 먼 학교를 배정받고, 결과적으로 백인 아이들이 공립학교를 떠나게 되는 것은 비생산적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이 때문에 1950년대 인종 분리주의 정책으로 되돌리려는 처사라는 공격을 받기도 했다. 1991년 걸프전에는 반대했지만, 2001년 9·11 테러 뒤 이라크 침공은 지지했다.

 

대선에 처음 도전한 1988년 무렵 그는 소수자·하층민에게 ‘딛고 설 수 있는 발판’을 정치가 제공해줘야 한다는 영국 노동당 닐 키넉 대표의 광고에 매료됐다. “왜 조 바이든은 가족 중 처음으로 대학에 갔을까”라고 연설을 시작하며 광고 내용을 유세장에서 인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출처를 밝히지 않는 바람에 표절 시비가 불거졌다.

 

시러큐스대 로스쿨 시절 작성한 논문까지 문제 되며 표절 논란이 확산하자 그는 민주당 대선 경선 레이스에서 하차해 법사위원장으로서 보수파 연방대법관 후보 로버트 보크 인사청문회를 주재하는 데 집중했다. 보크를 낙마시키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얼마 뒤 뇌동맥류로 쓰러져 사경을 헤매는 위기를 겪었다.

2008년 두 번째 대선 도전은 혜성처럼 등장한 젊은 흑인 정치인 버락 오바마에 가로막혔다. 하지만 그의 경험과 연륜을 높이 산 오바마의 러닝메이트로 지명돼 8년간 부통령을 역임했다. 그는 7870억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총괄하고 러시아와의 군축 협정, 이라크·아프가니스탄 문제 등을 다뤘다.

 

그는 델라웨어주 법무장관을 지낸 큰아들 보를 자신의 정치적 후계자이자 분신처럼 여겼으나, 보는 2015년 뇌종양으로 세상을 등졌다. 바이든은 이때 받은 충격으로 2016년 대선 출마를 포기했다.

 

바이든은 올해 인지도와 안정감, 국정 경험, 중도 확장력 등을 무기로 대선 도전 삼수 만에 후보 자리를 꿰찼다. 그는 지난 8월 후보 수락연설에서 코로나19 대유행과 경제 위기, 인종 불평등, 기후 변화를 미국의 4대 ‘퍼펙트 스톰’으로 지목하며 “암흑의 시절을 극복하겠다”고 다짐했다. 대통령으로서 첫 번째 할 일이 “너무 많은 사람의 삶을 망가뜨린 바이러스를 통제하는 것”이라고 했던 그는 선거운동 내내 철저히 마스크를 쓰고 화상 전당대회, 드라이브인 유세 등 방식을 통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차별화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왼쪽)이 31일(현지시간) 미시간주 플린트에서 진행된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 공동 유세에서 바이든후보와 팔꿈치 인사를 하고 있다. AP뉴시스

바이든의 대선 가도에서는 고령인 점과 성추행 꼬리표 등이 걸림돌로 꼽혀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가 말실수를 할 때마다 ‘치매설’을 부추기면서 ‘졸린 조’(sleepy Joe)라고 놀렸다. 2015년 애슈턴 카터 국방장관의 부인 스테파니 뒤에 바짝 붙어서서 어깨를 잡은 채 귓가에 뭔가를 속삭이는 모습 등으로 ‘소름 끼치는 조’(Creepy Joe)라는 오명이 붙기도 했다.

 

상원의원 시절 의원실 직원 성추행 의혹도 받았다. 경선 TV토론에서 “좀 더 나은 학교에 가려 버스를 타던 소녀가 바로 나”라며 바이든의 강제 버스 통학 정책 반대 전력을 신랄하게 공격했던 ‘젊은 유색인종 여성’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한 데에는 이런 약점을 보완하려는 의도도 있었다는 평가다.

 

유태영 기자 anarchyn@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있지 유나 '반가운 손인사'
  • 있지 유나 '반가운 손인사'
  • 에스파 카리나 '민낮도 아름다워'
  • 한소희 '완벽한 비율'
  • 최예나 '눈부신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