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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켓몬’ 박쥐가 코로나19 옮긴다고? 학술지에 실린 황당 논문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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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11-05 17:56:08 수정 : 2020-11-05 17:5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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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켓몬스터’ 시리즈에 등장하는 주뱃

 

세계적인 인기 게임 ‘포켓몬스터’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과 연관이 있다는 논문이 나왔다. 이 황당한 논문은 저자들에게 금전적 대가를 받고 논문을 실어주는 가짜 학술지에 실렸다.

 

지난 3월 미국의 의학 저널 ‘American Journal of Biomedical Science’에는 ‘칼로스 지방의 코로나19 발병과 주뱃 섭취의 연관성’(Cyllage City COVID-19 Outbreak Linked to Zubat)이라는 제목의 논문이 게재됐다.

 

칼로스 지방의 ‘삼채시티’라는 도시에서 코로나19가 발생했으며, 이 지역에 서식하는 ‘주뱃’이라는 박쥐를 식용으로 섭취하는 것이 감염과 연관이 있다는 게 해당 논문의 내용이다.

 

문제는 이 논문의 내용이 허구일 뿐만 아니라, ‘포켓몬스터’의 배경과 캐릭터를 대놓고 가져왔다는 사실이다. 칼로스와 삼채시티는 닌텐도가 2013년 출시한 게임 ‘포켓몬스터 X·Y’에 등장하는 가상의 지명이며, 주뱃 역시 흡혈박쥐를 모티브로 한 포켓몬 캐릭터 중 하나다.

 

게다가 이 논문의 저자는 고담 종합병원에서 감염병을 연구를 하고 있으며, 해당 논문을 위해 ‘간호순’(영문명 Nurse Joy)이라는 인물의 자료를 인용했다고 기재돼 있다. 고담 종합병원은 DC코믹스의 ‘배트맨’에서 배경이 되는 가상의 도시이며, ‘간호순’은 포켓몬스터 시리즈에 등장하는 수의사 캐릭터의 이름이다.

 

이 기이한 논문은 대만 국립대학교의 곤충학 조교수 마탄 슬로미가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슬로미는 지난 3일(한국시간) 과학 매거진 ‘더 사이언티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돈을 받고 검증 없이 논문을 실어주는 가짜 학술지에 대해 비판하기 위해 만든 의도적인 패러디”라고 밝혔다.

 

학술지에 실린 마탄 슬로미의 가짜 논문

 

슬로미는 가짜 논문이 허구로 가득한데도 불구하고, 제출한지 4일 만에 편집자로부터 긍정적인 답변과 함께 출판 승인을 받았다고 폭로했다. 해당 학술지는 1000달러에서 1500달러(약 110~170만원) 안팎의 금액을 지불하면 논문을 실어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슬로미는 논문에 ‘이 학술지는 동료 심사를 거치지 않기 때문에 가짜 학술지일 가능성이 다분하다’(It highly likely that a journal publishing this paper does not practice peer review and must therefore be predatory)는 문구를 노골적으로 집어넣었음에도 고스란히 게재됐다.

 

이에 슬로미는 “많은 약탈적(predatory)인 저널이 저자들에게 돈을 받고 검증 없이 논문을 실어준다”며 “이는 값비싼 블로그에 불과한 것이지만, 누군가는 이를 신뢰하고 심지어 과학자가 자신의 논문에 인용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슬로미는 “과학에는 지름길이 없다”며 “이런 가짜 저널들은 위험하다.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이라고 해서 무비판적으로 믿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최승우 온라인 뉴스 기자 loonytuna@segye.com

사진=American Journal of Biomedical Science·포켓몬스터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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