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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개상 ‘나까마’ 공장서 金 제품 떼다 금은방 돌며 뒷거래 [‘金의 배신’]

, ‘金의 배신’

입력 : 2020-10-19 06:00:00 수정 : 2020-10-18 21:5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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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뒷금’의 세계
불법·탈세의 온상 ‘뒷금’
통상 업계 종사하는 지인 소개로 시작
수수료·제품 판매 차익으로 수익 남겨
“월 평균 10일 일해 최소 300만원 벌어”
대기업 연봉 넘는 소득에도 세금 안 내
지난 14일 금을 매매하러 온 소비자와 상인들이 서울 종로구 귀금속 골목을 지나고 있다. 이제원 기자

서울 종로 귀금속 거리는 우리나라 금 거래 시장 메카인 동시에 이른바 ‘뒷금’ 거래의 온상이다. 뒷금이란 제조공장과 도·소매점, 소비자 사이에 마땅히 납부해야 하는 세금을 회피하기 위해 음성적으로 거래되는 금을 말한다. 뒷금 시장의 규모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업계에서는 국내 금 시장에 유통되는 전체 금의 약 60∼70%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이 같은 음성적 금 시장에 기생하는 독특한 직군이 있다. ‘나까마’라고 불리는 중상인이다. 이들은 제조공장에서 금 제품을 떼다가 전국 금은방을 돌며 판매하는 일부터 금은방에서 사들인 ‘고금’을 공장에 전달하고 수수료를 받는 단순 심부름까지 다양한 일을 맡고 있다. 이들이 낀 어떤 유통과정에서도 세금은 부과되지 않는다. ‘나까마’는 음성적 금 시장이 수십년째 작동되는 데 ‘윤활유’ 역할을 해온 셈이다. 취재팀은 잠입취재를 통해 활동 내용과 범위, 선발 과정 등 모든 것이 베일에 싸여있는 ‘나까마’의 실체를 파헤쳤다.

 

◆“도대체 어떻게 알고 왔나”

 

기자는 지난 15일 “일을 배워보고 싶다”고 여러 차례 부탁한 끝에 서울 종로 모처에서 이 일을 10년 이상 해온 중상인 A씨를 만날 수 있었다. A씨는 자기소개 대신 “어떻게 알고 왔느냐”는 질문부터 했다. 보통 업계에 종사하는 가족, 친척들한테 알음알음 소개를 받고 오는데 그런 경우가 아니라 신기하다는 반응이었다. 그는 “어떻게 이야기를 들었는지 모르겠다”며 “예전엔 정말 노다지였지만, 지금은 코로나19 타격으로 쉽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함께 만난 또 다른 중상인 B씨의 말은 달랐다. 주로 ‘영업’을 맡고 있다는 그는 “지금도 이 계통으로 오려는 사람이 굉장히 많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종의 개인 사업이다. 자기 능력으로 버는 게 가장 큰 메리트”라고도 했다. B씨는 이날 경기 지역 금은방 4곳을 돌아다니며 ‘영업’을 했다. 기자는 ‘실습생’ 신분으로 B씨와 동행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B씨는 제조공장에서 물건을 떼 금은방에 가서 보여주고 주문을 받는 일종의 ‘영업 중상인’이다. 가방에 제품 50∼60개씩 담고 금은방을 돌아다니기 때문에 속칭 ‘가방’으로 통한다.

 

B씨는 이 일을 한 지가 10년이 넘었다고 한다. 그는 “전철역을 중심으로 분포돼 있는 금은방들의 목록을 정리하고 나만의 코스를 만들어 이동거리를 최소화함으로써 영업 효율을 높이면 일하기가 수월하다”고 했다. 특히 “여러 금은방과 인간관계를 잘 맺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새로 시작하는 경우 안정적으로 자리 잡는 데 얼마나 걸리냐고 묻자 그는 “1년이면 된다”며 “(월 수익은) 최소 300만원에서 500만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기가 좋을 때는 월 1000만원도 찍어봤다”고 했다. B씨가 한 달 평균 10일 정도 일하는 것을 고려하면, 대기업 연봉보다 많은 돈이다. 게다가 그는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다.

 

이날 B씨는 첫 번째 금은방에서 제품에 대해 20분 남짓 이야기를 나눈 뒤 35만원을 벌었다. 해당 금은방에서 일부 제품의 색상을 바꾸고 팔찌의 연결고리를 키워주는 조건으로 반지와 팔찌 등을 B씨에게 주문한 덕분이다.

그는 어떤 식으로 자기 몫이 손에 들어오는지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다만 “공장에서 우리 같은 영업직한테 주는 제품이 따로 있다”, “저녁에 금은방 몇 곳 돌면서 수금할 것”이라고 한 점으로 미루어볼 때 금은방들로부터 받는 수수료와 제품 판매에 따른 시세 차익 상당 부분이 그의 수중에 들어가는 것으로 추측된다. 그는 “자세한 건 일을 시작하면 관리직 A씨를 통해 알 수 있다”고 했다. 불법과 탈세를 통한 수익이라는 의미다.

 

B씨는 “이게 자리 잡기가 힘들지만 ‘눈먼 돈’들이다.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그는 “물량도 추린 것이다. 두껍고 투박한 건 다 뺐다”라면서 “기분이 얼마나 좋은가. 앉아서 농담 따먹기 하다가 한 곳에서 35만원 벌었다. 이게 메리트다. 아무도 이걸 모른다”고 했다.

 

B씨는 이날 금은방 총 4곳을 돌아다니며 56만원을 벌었다. 이런 식으로 그가 벌어들이는 수익에 대한 세금은 0원이다. 그는 평소 영업을 뛸 때 적게는 5000만원에서 많게는 1억원에 달하는 제품을 가방에 넣고 다닌다. 이 제품을 사고파는 어떤 과정에도 세금이 매겨지지 않는다.

 

그는 “지금부터 3년간 천천히 배우면 된다”라며 “다만, 너무 큰 욕심을 부리면 자기 자본으로 뗀 금을 금은방에 일정 기간 전시해두는 동안 발생하는 ‘미수 비용’이 커지기 때문에 감당할 수 없으니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 이날 영업은 오후 4시쯤 끝났다.

◆“나도 모르게 범법자 되고 있어”

 

B씨는 공식적으로는 실업자다. 하지만 하루 일당은 수십만원에 달한다. 그는 동업자와의 수익 분배 구조에 대해선 공개하지 않았지만, 적잖은 돈이 수중에 들어온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공장에서 금을 떼오기 위해 필요한 초기 자본이 없는 경우는 동업 관계를 맺고 도와줄 수도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초기 자본이 없는 ‘신참 가방’을 위한 일종의 품앗이 제도가 그들 사이 암암리에 운영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B씨와 같은 중상인이 활발하게 활동할수록 음성적인 뒷금 거래는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 금 거래업자 C씨는 “중상인이 유통시키는 뒷금 역시 거래기록에서 누락돼 과세 대상이 되지 않는다”라고 했다. 극단적으로는 제조공장 또는 ‘도매상→중상인→금은방’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과세가 전혀 이뤄질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C씨는 “최대한 자료를 갖춰 판매하려고 하지만, 나도 모르게 음성 거래를 하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며 “이 시장이 이렇게 돌아가다 보니 전부 범법자 아닌 범법자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뉴스1

현금으로 사들인 금은 녹여버리면 유통과정을 추적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뒷금 거래량이 늘어날수록 금 거래시장은 더욱 탈세의 온상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부당 이득이 발생하더라도 정상적인 과세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결국 조세 정의 또한 무너질 수밖에 없다.

 

금 거래업자 D씨는 “금은방에서 제품 살 때 현금으로 결제하면 깎아주겠다고 하는 경우가 있지 않느냐. 그게 곧 뒷금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뒷금 거래를 줄이기 위해선 일반 소비자들의 역할도 중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금 시장 관계자는 “제품을 구입할 때 현금을 지불하고 할인받는 행위는 결국 뒷금 거래를 활성화하는 데 소비자가 기여하는 결과를 낳는다”면서 “제품을 구입할 때 영수증 발행을 요구하거나 카드 결제를 하면 부가가치세 10%가 붙겠지만, 이렇게 해야 금 시장이 조금씩 깨끗해질 수 있기 때문에 소비자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특별기획취재팀=안용성·윤지로·배민영 기자 goodpoin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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