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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굽부츠에 인생 건 철부지의 ‘홀로서기’

입력 : 2020-10-05 03:05:00 수정 : 2020-10-04 22: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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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킹키부츠’
영국 노샘프턴 한 구두 공장 실제 이야기를 뮤지컬 무대에 옮긴 ‘킹키부츠’. 폐업 위기에 처한 구두 공장을 물려받은 젊은 사장 찰리는 남성을 위한 화려하면서 튼튼한 부츠 신제품 개발에 나선다. CJ ENM제공

꿈을 찾아 고향을 떠나려던 젊은이 찰리는 부친 사망으로 3대째 이어 온 신사화 공장 ‘프라이스 앤 선’을 갑작스럽게 물려받는다. 영국 노샘프턴의 전통 있는 구두 공장은 수입품 저가 공세에 문 닫기 직전이다. 공장을 어떻게든 살리려 애쓰는 찰리는 밤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롤라에게서 신제품 개발 아이디어를 얻는다. 여장가수로 무대에서 노래 부르는 롤라에게서 자신처럼 덩치 큰 남자를 위한 화려하면서 튼튼한 하이힐이 아쉽다는 얘기를 듣고 굽에 철심을 박은 신제품 ‘킹키부츠’ 개발에 승부를 건다.

 

뮤지컬 ‘킹키부츠’는 80년대 디스코장에 들어선 듯 강렬한 비트가 경쾌한 작품이다. 주인공 찰리는 객석을 향해 “그저 신발에 관한 이야기”라고 너스레를 떤다. 하지만 신나는 음악이 흐르는 무대에선 아버지 그늘에서 벗어나려는 아들의 홀로서기가 펼쳐진다. 경상도 사내 같은 공장 직원들과 롤라가 벌이는 힘겨루기에선 ‘상대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라’는 삶의 지혜가 전해진다.

 

2013년 뮤지컬 1번지인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이 작품은 우리나라가 프로듀싱에 참여한 글로벌 뮤지컬이다. 미국 토니상과 영국 올리비에상 등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CJ ENM이 글로벌 프로듀서로 참여한 만큼 세계 초연 1년 반 만에 우리나라에서 첫 라이선스 공연 무대가 열렸고, 다시 올해 네 번째 시즌이 한창 진행 중이다.

 

흥행작으로서 ‘킹키부츠’가 가진 가장 큰 매력은 한 번만 들어도 흥얼거리게 되는 노래들이다. 열여섯 곡 모두 빼놓기 아까운 매력을 지니고 있다. 80년대 마돈나와 쌍벽을 이뤘던 팝의 여왕 신디 로퍼가 60대에 접어들어 뮤지컬 작곡가로서 내놓은 첫 작품들이다. 한 시대를 풍미한 신디 로퍼 대표작 ‘걸스 저스트 원트 투 해브 펀’, ‘쉬밥’처럼 비트가 넘치는 ‘랜드 오브 룰라’, ‘섹스 이즈 인 더 힐’, ‘함께 외쳐봐 YEAH’같은 흥겨운 노래와 명곡 ‘트루 컬러스’를 떠올리게 하는 ‘솔 오브 어 맨’, ‘못난 아들’, ‘그대 맘속에 나를 새겨줘’ 등 중독성 높은 노래가 이어진다. 신디 로퍼는 프로그램북을 통해 “뮤지컬 ‘킹키부츠’ 음악이 즐겁고 ‘신디 로퍼스럽다’고 생각하면 좋겠다. 저를 위한 게 아닌 다양한 캐릭터들을 위해 다양한 스타일과 목소리들로 곡을 썼다”고 밝혔다.

 

극 전개는 철부지에서 뚝심 있는 경영자로 변모하는 주인공 찰리를 중심으로 펼쳐지나 무대 중심은 ‘왕언니’같은 여장가수 롤라 몫이다. 매력적인 캐릭터로서 누가 맡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이 들게 된다. 이번 공연에선 롤라 역에 처음 도전하는 뮤지컬 스타 박은태와 이전 시즌 경험이 있는 최재림, 강홍석이 3인3색의 매력을 보여준다. 지난달 30일 공연에선 이미 2014년, 2016년 공연에서 ‘타고난 롤라’라는 평을 받았던 강홍석이 힘 있는 연기와 노래로 객석을 사로잡았다.

뮤지컬 ‘킹키부츠’ 김성규(찰리역), 김환희(로렌역).

‘킹키부츠’의 또 다른 매력은 롤라와 함께 무대를 누비는 여섯 명의 무용수 ‘엔젤(전호준·이종찬·주민우·한준용·한선천·김강진)’들이다. 매시즌마다 화려한 무용으로 인기를 끄는데 이번 시즌 역시 그들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보여주는 춤에서 시선을 떼기 힘들다.

 

찰리의 꿈을 응원하는 로렌 역을 김지우와 함께 맡은 김환희의 연기와 노래도 눈여겨볼 만하다. 2018년 ‘베르나르다 알바’로 신인상을 받은 후 ‘빅피쉬’, ‘브로드웨이 42번가’ 등에 출연하며 영역을 넓히고 있는 차세대 스타다.

 

신나는 춤과 노래가 끊이지 않는 1부와 달리 ‘킹키부츠’의 2부는 묵직하다. 여장 가수로서 정체성을 찾기까지 힘겨운 삶을 살아온 롤라는 진정한 남자가 되는 법에 대해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라고 설파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아 절연했던 부친이 쓸쓸히 죽어가는 양로원 공연에선 “그대 맘속에 새겨줘 나를. 이해해줘요. 이 모습 그대로”라고 노래하며 부친을 용서한다. 자신을 향한 아버지의 큰 기대에 중압감을 느껴왔던 찰리 역시 선친이 만들어놨던 공장 부지 개발 계획을 뒤엎고 ‘킹키부츠’를 밀라노 패션쇼에 출품하며 진정한 자아를 찾아간다. 신디 로퍼는 “롤라는 자신 그 자체로 받아들여지길 노력하는 아웃사이더예요. 저는 이 점이 모든 사람이 인생 어느 한 시점에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찰리와 롤라 모두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데 굉장히 보편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롤라가 여장가수라는 사실은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그가 남들과는 조금 다르고 자기 자신 그대로 사랑받길 원한다는 점이 중요하죠”라고 강조했다. 서울 이태원 블루스퀘어에서 11월 1일까지.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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