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최악의 형벌 ‘십자가형’ 부활의 상징이 된 까닭은

입력 : 2020-09-19 03:00:00 수정 : 2020-09-18 18:50:52

인쇄 메일 url 공유 - +

고대 로마서 가장 경멸스럽던 처형… ‘해골의장소’ 골고다에서 수난 당한 예수
그에 관한 기록이 전해지며 의미 반전
카이사르처럼 강렬한 구세주 대신 가난한 약자 예수가 주류가 되면서
기독교의 가르침에 강자들의 발목 잡혀
역사저술가 톰 홀랜드는 ‘도미니언’에서 서구의 종교관은 물론 서양적 세계관과 연관되는 과학적, 합리적, 휴머니즘적는 사고는 2000여 년 동안 도도히 흘러온 기독교의 저변 위에서 생겨나고 발전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서구사회와 서양인들의 근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인문교양서다. 기독교가 서구사회와 서양인의 정신을 지배하게 되는 과정과 그 결과에 따른 세계의 변화상을 다룬다. 세계적인 역사저술가인 저자 톰 홀랜드는 이 책에서 서구의 종교관은 물론 서양적 세계관과 연관되는 과학적, 합리적, 휴머니즘적 사고조차 2000여 년 동안 도도히 흘러온 기독교의 저변 위에서 생겨나고 발전한 것이라고 본다.

저자는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가 되는’(마태오 복음서) 가르침에 담긴 ‘모순’과 ‘역설’이 기독교 세계의 역사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이자 서양의 정신을 지배하는 세계관이 됐다고 설명한다. 이에 따라 책을 믿음·자선·욕망·혁명·종교개혁·계몽·과학·사랑 등 21개 장으로 나누어 장마다 3건씩 총 60건의 주요 사건에 담아 보여준다.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그리스도가 탄생하기 전 고대 로마에서는 십자가형보다 더 고통스럽고 더 경멸스러운 처형은 없었다. 그것은 알몸 상태로 십자가에 매달려 어깨와 가슴에 생긴 보기 흉한 상처가 부풀어 오른 상태로 오랫동안 고통을 당하고 소란스러운 새들이 날아와 맨살로 쪼아 먹어도 무기력하게 일방적으로 당해야만 하는 형벌이었다. 십자가형은 당시 지식인들도 국가 질서를 해칠지 모른 자들에게 당연하고 유익한 처사로 여겼다.

수많은 이들이 십자가형을 당했으나 십자가형에 대한 당시의 혐오 때문에 후대에 전해지는 기록이 거의 없다. 그런데 어떤 이가 십자가형을 선고받고 그 징벌을 당한 소상한 과정을 다룬 기록이 고대로부터 전해지고 있다. ‘해골의 장소’란 뜻을 지닌 골고다에서 십자가형을 당한 유대인 예수에 관한 기록이다. 그에 관한 것이 4대 복음서(마태오·마르코·루가·요한) 기록이다. 이 기록이 들어간 이야기를 가리켜 그리스어로는 ‘유앙겔리아’(euangelia·좋은 소식), 영어로 ‘가스펠’(gospel·복음)로 알려지게 된다.

당시 이스라엘인에게 구세주는 위대한 카이사르 같은 사람이어야 했다. 그러기에 초라한 구유에서 태어나 치욕스러운 십자가형을 받은 이가 구세주일 수 없었다. 그러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는 부활 후 하늘로 올라갔고,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인간이면서 동시에 하느님으로 칭송받게 됐다.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고통스러운 운명을 감내함으로써 그는 죽음 자체를 극복했다. 예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반전이 일어난 셈이다.

예수의 죽음으로부터 수백년이 흐른 후 로마의 황제들도 예수를 그리스도로 인정했고, 예수의 처형을 담은 장면이 화가들의 그림 소재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기원후 400년에 이르러서는 더는 십자가가 수치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최초의 기독교 황제인 콘스탄티누스에 의해 수십년 전에 폐지된 십자가형은 로마 세계 사람들에게 죄악과 죽음에 대한 승리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심지어 상아를 가지고 처형 장면을 조각한 예술가는 가벼운 허리 천을 두른 예수의 모습을 어떤 고대 신들 못지않게 근육질로 형상화하는 등 예수를 구세주로 받아들이고 나아가 이를 이방 세계에도 전파하기에 이른다.

기독교의 핵심에는 “하느님이 강자보다 약자에게 더 가깝고, 부자보다는 가난한 자를 더 아낀다”,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가 될 것”이라는 모순과 역설의 획기적인 사고가 자리 잡고 있다. 이런 가르침의 기독교는 유럽인에게 보편적인 신앙으로 확산했다. 예수를 믿는 이들은 다른 대륙을 정복해 ‘약속의 땅’으로 축성하고 이방인들을 개종하는 전도의 사명을 다했다. 중세 이후에는 지배적 세력으로 영역을 확장한다. 과거 고대사회에서는 박해받는 소수세력으로 혁신적이고 진보적인 영향을 미쳤지만, 그들이 지배세력이 된 셈이다.

그러나 이후에는 아이로니컬하게도 그들은 주류가 되면서 기독교의 가르침에 발목을 잡는 형국과 마주친다. 중세 이후 서양의 갈등은 가르침과 모순되는 행위에 대한 당사자 자신의 고뇌이자, 예수의 가르침을 온전히 실천하려는 자들과 그 가르침을 자신들의 필요에 맞게 달리 받아들인 자들 사이의 일종의 교리 해석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톰 홀랜드/이종인/책과함께/4만3000원

이제는 25억 인류가 믿는 최대 종교로서 기독교는 계몽주의, 인권, 민주주의, 마르크스주의 같은 근대의 진보적인 개념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반기독교 운동이나 무신론에서조차 그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10대 소년 시절을 거치면서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희미해졌다는 저자는 그런데도 고대 로마나 스파르타 사람들의 행태에 관해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이 로마나 스파르타가 아니라 지난 2000년 동안 기독교 세계였던 곳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이라고 털어놓는다.

책을 읽다 보면 “당신이 옳다고 믿는 것은 그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어린 시절부터 옳다고 지목된 것을 당신이 맹목적으로 받아들인 다음에 그것에 대하여 생각해보지 않은 데 있다”는 프리드리히 니체의 얘기를 세삼 떠올리게 한다. 책은 기독교가 2000여 년 동안 지금의 서구사회에 미쳐온 영향력을 통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고, 이를 토대로 서양의 세계관에 대한 이해를 갖게 한다.

 

박태해 선임기자 pth1228@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전지현 '눈부신 등장'
  • 전지현 '눈부신 등장'
  • 츄 '상큼 하트'
  • 강지영 '우아한 미소'
  • 이나영 ‘수줍은 볼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