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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미국 뉴욕의 할렘 지역에 살던 흑인 부부가 아들 이름을 위너(Winner·승자)로 지었다. 3년 후 아들이 또 태어나자 이번엔 루저(Loser·패배자)로 작명했다. 자식 잘못되라고 나쁜 이름을 지어주는 부모는 없을 터이다. 그저 장난기가 발동해 대구를 맞춘 듯싶다. 두 아들의 삶은 어떠했을까. 루저는 부모 소원대로 경찰관이 된 반면 위너는 30여 건의 범죄를 저지른 전과자가 됐다. ‘프리코노믹스’(괴짜경제학)란 책에 나오는 사례다. 루저는 외모가 볼품없고 능력·재력도 부족해 대접받지 못하는 사람을 뜻하는 비속어다. 남에게 상처를 주기에 함부로 써선 안 될 말이다. 놀림감이 되었을 루저의 성공이 그래서 더 대단하다. ‘이름대로 됐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 고군분투했으리라.

2009년 국내에서 여대생 방송출연자가 “키 180㎝가 안 되는 남자들은 루저”라고 말해 전국을 들끓게 했다. “졸지에 루저가 됐다”는 남자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이른바 ‘루저들의 난’이다. 프로그램이 폐지된 뒤에도 수많은 패러디가 등장했다. 키가 170㎝인 톰 크루즈는 ‘톰 크 루저’, 168㎝인 나폴레옹은 ‘루저 레옹’으로 통했다. 골드 루저(178∼179㎝), 실버 루저(174∼177㎝), 브론즈 루저(170∼173㎝), 루저(170㎝ 미만)로 등급도 세분화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11월 프랑스를 방문했을 때 1차대전 미군 전몰자 묘지 참배 일정을 보고받고 “전장에서 죽는 건 쪼다들(suckers)이다. 내가 왜 패배자(loser)로 가득찬 묘지에 가야 하냐”며 참배를 거부했다는 언론 보도가 최근 나왔다. 대선을 앞둔 트럼프에게 대형 악재가 아닐 수 없다. 정치인의 말은 인품은 물론 국격을 가늠하는 척도다. 중국 역사가 사마천은 “말 한 마디가 가마솥 아홉 개 무게보다 더 무거워야 한다”고 했다.

트럼프는 1960년대 베트남전 징집통지서를 받고 발뒤꿈치가 아프다는 허위 진단서를 내 병역을 기피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전쟁터에 끌려가지 않고 살아남았으니 그의 잣대로 보면 위너일 것이다. 트럼프의 낮은 언품이 이번 대선에서 그를 루저로 만들지 두고 볼 일이다.

김환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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