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년 9월8일 시작된 레닌그라드 공방전은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말과 어울리지 않는다.
고작 한 도시를 두고 20세기의 현대무기가 총동원되다시피 한 공방전이 2년 반이나 이어졌다는 말이 믿어지지 않아서다.
1453년에도 당시 세계에서 가장 견고하다는 동로마 수도 콘스탄티노플 성이 오스만튀르크 군의 유치한 대포에 두 달을 버티지 못했다.
그 무대가 레닌그라드라는 점도 공교롭다.
703년 표트르1세는 서양문화를 받아들이려 서쪽 끝의 늪지대인 그곳에 ‘페테르스부르크’라는 이름의 수도를 세웠던 것이다.
그러다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 서방 국가들이 혁명을 좌절시키려 하자 페테르스부르크가 위험해졌다. 이에 러시아는 모스크바로 재천도 했고 1924년 레닌이 죽자 도시 이름도 레닌그라드로 바꾸었던 것이다.
따라서 1차 대전 시기에 화를 당할 뻔했던 이 도시가 2차 대전에 화를 당한 것이다.
혁명 당시 걱정했던 대로 이 도시는 공격에 너무 취약한 지형이었다. 도시의 서쪽과 동쪽은 바다와 호수가 있고 북쪽은 육지지만 당시 적국이었던 핀란드와의 접경이었다. 그곳을 남쪽에서 밀고 간 독일군은 도시 점령이 일주일도 걸리지 않을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아돌프 히틀러는 축하연을 준비하고 ‘아돌프스부르크(Adolfsburg)’라는 새 도시 이름까지 준비해 두었다. 그러나 레닌그라드는 400만의 사상자를 내면서, 그리고 주민들은 인육까지 먹어가면서 버티었다.
그래서 결국 포위를 푼 독일군은 우선 레닌그라드 공방전에서, 나아가서는 대소 전쟁에서, 그리고 2차 대전에서 졌다. 소련은 지옥도 같이 돼버린 이 도시에서 “트로이도 로마도 함락됐지만 레닌그라드는 함락되지 않았다”며 해골의 미소를 지었다.
양평(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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