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한·자격 규정 법조항 없어 ‘미완’
배우자 외도 조사 의뢰만 80% 육박
수사·재판 중 사건 정보수집 땐 불법

※다음 중 ‘탐정’ 업무로 기대되지만 위법소지가 있는 사항은 무엇일까요?
① 부동산 등기부등본을 열람하고 단순 요약하는 행위
② 채용 대상자의 동의를 전제로 이력서 기재 사실의 진위를 확인하는 행위
③ 은닉된 자산의 소재를 확인하는 행위
④ 가출한 청소년의 소재를 확인하는 행위
⑤ 이혼소송에서 배우자의 부정행위를 입증할 자료를 수집하는 행위
지난달만 해도 이 문제는 성립 자체가 안 됐다. 1977년 제정된 신용 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신용정보법)에 따라 그동안 탐정업과 탐정 명칭 사용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2월 국회가 신용정보법을 개정, 이달 5일부터 전격 시행되면서 이제는 탐정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데 제약이 사라졌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민간조사원’으로 불리던 이들이 탐정이란 명칭을 명함에 새길 수 있게 됐고, ‘탐정사무소’ 개업도 가능해졌다. 위 문제의 보기 가운데 ⑤번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탐정이 합법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업무 범주에 든다.
◆소설에서 현실이 된 탐정… 그들의 세상은
국어사전을 보면 탐정(探偵)은 ‘드러나지 않은 사정을 몰래 살펴 알아냄. 또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을 뜻한다. 흔히 셜록 홈즈나 명탐정 코난 등 경찰도 어려워하는 사건을 파헤치고 범인을 잡아내는 탐정을 떠올리지만 아직 우리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얘기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탐정은 사실관계 확인과 증거 수집이 주요 업무로 교통사고·보험사기·의료사고 등 조사, 산업스파이 적발, 해외 도피자 추적까지 영역이 다양하다.

하지만 일반인들이 탐정 업무로 오해할 수 있는 수사·재판 중인 사건에 관한 증거 수집 활동이나 도피한 불법행위자 내지 가출 성인의 소재 확보 등은 여전히 제한된다.
가령 교통사고 사건에서 인근 폐쇄회로(CC)TV 확인 등 사고 원인을 규명할 자료의 수집이나 잠적한 채무자 또는 범죄가해자의 은신처를 파악하는 행위는 현행법상 변호사법이나 개인정보보호법을 위반할 가능성이 크다.
관련 업계에 가장 많이 들어오는 의뢰는 배우자의 외도 조사다. 법 개정 전이나 후나 배우자의 외도를 조사해 달라는 의뢰가 전체 업무의 70~80%에 육박한다고 한다. 하지만 수사·재판 중인 사건에 대한 정보 수집은 변호사법 위반이기 때문에 만약 이혼소송이나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진행 중이라면 불법이 된다.
가출한 배우자를 찾아 달라는 의뢰도 불법이 될 수 있다. 경찰청은 탐정이라는 명칭으로 영리활동을 하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탐정 업체에 의한 개인정보 무단수집·유출 내지 사생활 침해를 막기 위해 관련 업체에 대한 지도점검 및 특별단속을 실시하고 있다.

탐정업의 합법화로 새로운 고용 창출 효과가 기대된다는 시각도 있다. 특히 탐정사무소 개업이 가능해지면서 퇴직을 했거나 앞두고 있는 경찰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일부 고위직 경찰들은 퇴직 후 로펌이나 대기업 고문 등으로 자리를 옮기는 경우가 있지만 일선 경찰들은 퇴직 이후 경비업체 등을 빼면 갈 자리가 마땅치 않았던 터다.
탐정 명칭을 사용할 수 있게 된 후 대한민국 1호 탐정사무소를 개설한 김두현(62) 명탐정사무소 대표는 “전직 경찰공무원들의 경험과 노하우를 사장시키는 건 국가적으로도 안타까운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를테면 소액 사기를 당한 경우에는 피해자가 스스로 증거를 수집해 가야 수사가 되는데 일반인은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경찰 업무를 해본 입장에서는 너무나 쉽게 알 수 있는 것들인데, 이런 점에서 경험과 노하우를 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미완의 제도… “공인탐정법 법제화 시급”
현재 대다수 선진국에서 탐정은 합법적인 직업으로 인정받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5개국 중 지금까지 탐정제도를 운영하지 않은 나라는 한국뿐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탐정제도를 법제화하려는 노력은 계속 있어 왔다. 15대 국회였던 1998년부터 19대 국회인 2015년까지 10차례나 탐정과 관련한 법안·개정안 발의가 있었지만 모두 폐기된 바 있다. 20대 국회에서는 ‘탐정 명칭 사용 금지’ 조항이 신용정보법에서 삭제되면서 탐정업의 첫발을 뗐지만, 탐정 업무의 범위와 권한·자격 등을 규정한 법조항이 아직 없어 후속 입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탐정의 역할과 업무 범위 등에 대한 법적 근거가 명확히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탐정사무소만 난립해 각종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다.


현재는 아무런 자격이 없어도 누구든 탐정사무소 개업이 가능해 마음만 먹으면 기존의 흥신소나 심부름센터도 탐정사무소로 간판을 바꿔 달 수 있다.
업계에선 이런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공인탐정법의 법제화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정부도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음성적인 사실조사 활동에 따른 폐해를 없애기 위해 사회적 논의와 부처 간 협의를 통해 빠른 시일 내에 ‘공인탐정 제도’ 도입을 위한 법안이 제정될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이와 관련해 임준태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탐정은 일반적 직업과 분명히 다른 점이 있다. 일반인의 사생활에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직업이기 때문”이라며 “사생활 침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명확한 법적 규제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탐정 합법화를 계기로 정식 직업으로서 기준과 자격을 만들면 관리가 더 수월해질 것”이라며 “직업으로 탐정이 자리를 잡으려면 어떤 일은 허용되고 어떤 일은 금지되는지 등을 규정하는 공인탐정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탐정업 관련 ‘팩트 체크’ 해보니
지난 5일부터 국내에서도 ‘탐정’이란 명칭 사용이 가능해졌다. 이전까지는 탐정이라는 이름으로는 영리활동을 할 수 없어 ‘민간조사원’이라는 이름을 썼고, 탐정사무소 대신 흥신소나 심부름센터 간판을 달면서 탐정에 대한 오해와 불신도 적잖았다. 탐정업 합법화와 관련해 일반인들이 궁금할 만한 대표적 질문 몇 가지를 팩트 체크해 봤다.
◆탐정은 수사과정에서 사생활침해 등 불법행위를 일삼을 것이다? → 절반의 사실
원칙적으로 개인정보보호법, 위치정보법, 신용정보법 등 탐정의 불법행위를 규제할 방법은 무수히 많다. 굳이 법을 어겨야만 탐정수사가 가능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법망 밖에서 미행 등 불법행위를 일삼아왔던 기존의 흥신소나 심부름업체의 일대변화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탐정 호칭 사용만 합법화된 현재로서는 이들이 탐정사무소로 간판만 바꿔 달고 불법행위를 지속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공인탐정제도나 탐정관리법 등 구체적인 제도 정립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기존 불법업체들이 탐정 이름으로 활동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어 제도 손질이 필요한 상황이다.
◆수사 의뢰비용, 부르는 게 값이다? → 사실 아님
정부 수사기관이 아닌 탐정사무소를 찾는 의뢰인들은 절박한 경우가 많다. 실종자 수사가 대표적이다. 실제로 지난해 민간조사협회에 접수된 상담 중 21.4%가 실종자 소재 파악이었다. 일각에선 의뢰인의 절박한 심정을 이용해 탐정이 거액을 요구하는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근거 없는 주장은 아니다. 실제로 과거 불법 민간조사업체에서는 의뢰인의 약점을 잡아 고액을 요구하거나 의뢰비만 받고 잠적하는 사례도 잦았다.
전문가들은 탐정업계가 양성화된 이상 의뢰비용이 ‘부르는 게 값’이긴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민간조사학술연구소 김종식 소장은 “과거에는 불법 민간조사를 의뢰하는 사람도 공범으로 취급돼 함께 처벌을 받았기 때문에 업체에서 부당한 요구를 해도 항의할 수 없었다”며 “앞으로는 탐정업체들도 공개적으로 시장경쟁을 하려면 적정선에서 가격을 맞출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탐정 자격증만 따면 바로 연봉 6000만원? → 대체로 사실 아님
탐정은 주로 고소득 직종으로 소개된다. 미국 노동통계국 자료가 가장 많이 인용되는데, 이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미국 사설탐정 평균 연봉은 5만4350달러(약 6400만원)다. 현재 한국에서는 별도의 자격시험 없이도 탐정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숫자다.
그러나 이는 지나친 과장이라는 게 국내 관련 종사자들의 주장이다.
명탐정사무소 김두현 대표는 “의뢰비용 중 적지 않은 부분이 탐정업무 과정에서 지출돼 순수익은 그리 높지 않다”며 “탐정으로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소질과 역량이 뒷받침돼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 소장은 “연구소 자체 조사에 따르면 국내 탐정들은 평균적으로 한 달에 300만~500만원 정도의 매출을 올리는 것으로 추산된다”며 “아직은 탐정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저조한 편이라 수익에 대한 지나친 환상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김선영 기자, 박혜원 인턴기자 007@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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