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인으로도 활동 중인 웹툰 작가 기안84(본명 김희민·36)의 여성 혐오 논란과 관련해 ‘연재중단 요구’는 지나치다는 주장이 이어지고 있다. 동명의 인기 드라마로도 제작된 ‘풀하우스’의 원작 만화가인 원수연씨는 “가장 나쁜 검열”이라고 비판했고, 기상캐스터인 박하윤씨도 “보기 불편하다면 안 보면 된다”라는 생각을 밝혔다.
◇ 원수연 “작가와 작품의 검열과 내부로 향한 총질을 당장 거두시라”
원 작가는 지난 1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장문을 올려 “작가들이 같은 작가의 작품을 검열하고 연재중단 시위를 벌이는 초유의 사태가 만화계 일각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꼬집은 뒤 “검열 중에서도 가장 잔인하고 나쁜 검열은 문화든 이념이든 바로 그 안에서 벌어지는 내부 총질”이라고 주장했다.
기본소득당 젠더정치특별위원회·만화계성폭력대책위원회·유니브페미 등은 이날 ‘여혐왕 기안84 네이버 웹툰은 혐오 장사 중단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네이버웹툰 본사 앞에서 기안84 연재중단 운동을 진행했다. 이 단체들은 네이버 유저 1167명의 아이디(ID)가 담긴 서명 요구안을 네이버웹툰 측에 제출하기도 했다.
이에 원 작가는 “현재 여성단체들과 결을 같이하고 있는 이들의 연재중단 운동은 만화 탄압의 역사, 즉 50년이 넘도록 심의에 시달려 온 선배님들과 동료작가들이 범죄자로 몰리면서까지 투쟁해서 쟁취한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거꾸로 돌리는 행위이며 만화계 역사의 치욕스런 암흑기를 다시 오게 하려는 패륜적 행위”라고 맹비난했다.
이어 “만화계성폭력대책위 ‘여만협(한국여성만화가협회)’ 성수현 회장과 이태경 부회장은 작가의 검열 행위를 당장 중단하기 바란다”면서 “스스로 공적 지위라 이름 붙이고 객관적 판단 없이 종횡무진 여기저기 애정 없는 비난 질로 동료 만화가들의 작품을 맥락도 없이 장면만 떼어 내 트집 잡으며 낄낄거리는 행위를 중단하시라. 예전 심의실보다 더 질이 낮은 비판과 조롱은 이미 도를 넘어 섰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원 작가는 “작가와 작품의 검열과 내부로 향한 총질을 당장 거두시라”고 거듭 요청하면서 “캐릭터를 규정하고 창작범위를 스스로 좁히는 당신들의 주장은 같은 창작인들로서 자격상실”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전체의 문화는 배려하지 않고 오직 젠더 문제만 파고드는 당신들이 진정한 창작자가 맞는지 되돌아보시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 박하윤 “맥락 끊고 성관계 장면을 여성 비하라고 한다면, 이 세상 문화콘텐츠 어디에서도 다 잡아낼 수 있다”
박하윤 캐스터의 발언도 화제가 됐다.
박 캐스터는 최근 업로드된 ‘팟빵 매불쇼 오피셜’(이하 매불쇼)에서 “가상세계의 웹툰을 가지고 (방송) 하차를 요구하거나, (웹툰) 연재를 중단하라고 하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사실 (방송에서) 기안84를 보고 굉장히 멋있다고 생각했다. 잘생긴 것도 아닌데, TV를 보면 항상 자존감도 있어 보이고 자신에게 있어 어떠한 행동을 해도 당당해 보였고, 그 모습이 만화에도 나타난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당당하게 표현해서 전달한 것을 국민청원까지 (제기해) 이슈화 시키는 건 너무한 게 아닌가”라며 “제가 욕을 조금 먹을 순 있겠지만 국민청원까지는 너무 한 것 같다. 내용이 불편하신 분들은 안 보시면 될 것 같다”고 했다.
박 캐스터는 “(문제의 웹툰에서) 20~30대의 힘든 취업상황을 그림을 그린 것이고, 그 과정에 한 부분이 성적 암시를 하는 부분들이 들어있었던 것 같다”면서 “맥락을 끊고 성관계 장면을 여성 비하로 표현한다면, 이 세상 문화콘텐츠 어디에서도 저는 다 잡아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박 캐스터는 또 “한 부분을 잘라놓고 판단을 하고 맥락을 끊고 이야기하면 평가가 정확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라고 일침을 놓았다.
기안84는 지난 11일 공개한 웹툰 ‘복학왕’ 304화에서 무능력한 인턴사원이었던 여주인공 ‘봉지은’이 인턴 마지막 날 회식 자리에서 ‘조개’를 깨부수는 설정으로 대기업 입사에 성공한 내용을 담아 ‘여성혐오’ 논란에 휩싸였다.

조개를 깨부순다는 설정은 20대 초반 여성이 40대 노총각 팀장과의 성관계를 통해 입사에 성공했다는 것을 암시한 것으로, 논란이 일자 해당 회차의 ‘조개’가 ‘게’로 바뀌는 등 수정됐지만 논란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기안84의 웹툰 연재를 중단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왔는가 하면, 그가 출연 중인 MBC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 게시판에는 하차를 요구하는 글이 쇄도했다.
기안84는 이번 논란 이전에도 ‘복학왕’에서 30대 여성을 두고 “누나는 늙어서 맛없다”라고 표현해 여성혐오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청각장애인·외국인 노동자 비하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이번 논란에 기안84는 지난 13일 ‘복학왕’ 하단 이미지에 사과문을 올리고“작품에서의 부적절한 묘사로 다시금 심려를 끼쳐드려 정말 죄송하다”라고 고개를 숙였다.
한편, ‘복학왕’ 연재중단 요구와 관련해 네이버웹툰 측은 20일 가이드라인 수정을 논의 중에 있다고 밝혔다.
네이버웹툰은 “회사 내부에서 사회의 더 다양한 시각을 담는 방향으로 웹툰 편집 가이드라인 강화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면서 “자칫 작가들의 창작 부분에 관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현 가이드라인을 강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사내 청소년보호 담당 부서 등 논의를 지속하겠다는 방침을 전했다.
현화영 기자 hhy@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