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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투사 창설 70주년… 유엔사 “같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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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초반인 1950년 8월 맥아더 원수 명령으로 탄생
대한민국카투사연합회 휘장. ‘영예로운 군복무(HONORABLE SERVICE)’라고 적혀 있다. 유엔사 트위터 캡처

주한미군 부대에 배속된 한국군 병력(KATUSA·Korean Augmentation to the United States Army)을 뜻하는 ‘카투사’ 창설 70주년을 맞아 유엔군사령부가 축하의 뜻과 함께 ‘앞으로도 영원히 함께하자’는 결의를 밝혔다.

 

유엔사는 16일 SNS에 게재한 글에서 “카투사 프로그램은 1950년 8월 당시 유엔군사령관이던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의 명령으로 창설됐다”며 “맥아더 원수는 한국에서 싸우는 미 육군 제8군 소속 각 중대와 포대마다 100명씩의 한국인을 증강해 배치토록 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오늘날 유엔사 장병도 여전히 증원된 카투사 병력과 함께 일하고 있다”며 “같이 갑시다!”를 외쳤다.

 

유엔사의 설명대로 카투사의 유래는 6·25전쟁 초반인 1950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한국군과 미군을 주축으로 한 유엔군은 낙동강 방어선 안에 고립된 채 방어선을 뚫고 남진하려는 북한군과 맞서고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인 일본 점령 임무를 수행하다가 급하게 한국으로 보내진 미군은 한국에 관한 지식이 전혀 없었다.한국의 언어와 문화는 물론 지리도 모르는 미군이 작전에 어려움을 겪은 것은 당연했다.

 

무엇보다 한국군과의 연락 및 협조가 시급했다. 포로로 붙잡은 북한군을 심문하는 데에도 한국인의 도움이 절대 필요했다.

 

결국 미군의 중대 및 포대 단위 부대마다 일정한 숫자의 한국인을 배속시켜 통역 등을 지원하도록 한 것이 카투사의 원조가 되었다.

6·25전쟁 당시 미군과 함께한 한국인 카투사 병사들. 유엔사 트위터 캡처

유엔사는 글과 함께 6·25전쟁 당시 미군 장병과 카투사 병사가 나란히 찍은 사진, 그리고 영어로 ‘영예로운 군복무(HONORABLE SERVICE)’라고 적힌 대한민국카투사연합회의 휘장 등도 게재했다.

 

한편 6·25전쟁 당시 미국 다음으로 많은 병력을 보낸 영국 군대를 돕기 위한 조직도 있었다. 영연방군에 배속된 한국군 병력(KATCOM·Korean Augmentation to Commonwealth)이란 뜻에서 ‘카트콤’으로 불렸다. 이들은 영국군, 호주군, 캐나다군, 뉴질랜드군, 벨기에군, 그리고 네덜란드군으로 구성된의 제1영연방사단(1st Commonwealth Division)을 지원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미군 주둔 장기화에 따라 계속 존재하게 된 카투사와 달리 카트콤은 정전협정 체결 1년 후인 1954년 7월 영연방군이 한국에서 모두 철수하며 해체됐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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