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통령 추천한 인사 부적절하면 거부할 것”

공석인 감사원 감사위원(차관급) 인선을 둘러싸고 문재인 대통령과 최재형 감사원장이 벌이는 줄다리기의 배경엔 헌법상 ‘제청(提請)’의 개념이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 현행 헌법 98조 3항은 ‘감사위원은 감사원장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돼 있다.
◆헌법상 대법원장·국무총리·감사원장만 지닌 ‘제청권’
청와대는 ‘대통령의 임명권이 우선’이란 견해이고 감사원은 ‘아무튼 감사원장에 의한 제청 절차가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인데 둘 사이에 뭔가 원활한 조율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게 작금의 모양새다.
30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헌법과 법률의 제청은 ‘어떤 안건을 제시하며 결정할 것을 청구한다’라는 의미다. 이 해석대로라면 감사원장이 먼저 감사위원 후보를 골라 대통령에게 ‘이 사람을 임명해주십시오’ 하고 요구하는 것이 맞는다.
하지만 현실에선 그렇지 않다는 게 정설로 통한다. 대통령이 먼저 감사위원 후보자를 골라 감사원장에게 ‘이 사람을 제청해주십시오’ 해왔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청와대에서 친문(친문재인) 성향으로 알려진 김오수 전 법무부 차관을 ‘낙점’해 최 감사원장에게 제청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최 감사원장이 이에 순순히 응하지 않음에 따라 ‘탈’이 난 것으로 보인다.

최 감사원장은 법원에서 사법연수원장(고등법원장급)까지 지낸 정통 법관 출신이다. 이 때문에 소신이 강한 그가 헌법상 제청의 의미를 곧이곧대로 해석해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려는 것 아닌가 하는 관측이 제기된다.
우리 헌법상 제청권을 가진 이는 감사원장뿐만이 아니다. 먼저 헌법 87조 1항에 따라 국무위원, 즉 장관은 국무총리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게 돼 있다. 또 헌법 104조 2항에 따라 대법관은 대법원장 제청으로 국회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게 돼 있다.
◆김명수 “대통령 추천한 인사 부적절하면 거부할 것”
이와 관련, 총리와 대법원장이 제청을 대하는 태도에서 나타난 차이점이 눈길을 끈다. 이낙연 전 총리는 후보자 시절인 2017년 5월24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대통령을 상대로 총리의 장관 임명제청권을 확실히 행사하겠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이 전 총리는 “제청권은 애매한 부분이 있다”며 “총리가 하라는 대로 (대통령이) 하는 것이 제청권이라면 헌법 근거가 무너진다”고 답해 대통령과의 관계에서 총리의 제청권을 굉장히 소극적으로 해석했다.
김명수 현 대법원장도 2017년 9월13일 청문회장에서 똑같은 질문을 받았다. 김 대법원장은 단호한 어조로 “내 의지를 관철하겠다”며 “대통령이 추천하거나 원하는 인사가 적절하지 않으면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답해 대통령과의 관계에서 대법원장의 제청권을 굉장히 적극적으로 해석했다.

전직 감사원장들 시절에는 별 ‘잡음’이 없었던 감사위원 후보자 제청을 두고 이토록 시끄러운 건 최 감사원장이 정통 법관이었다는 점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정치인 출신인 이 전 총리처럼 제청권을 소극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같은 판사 출신인 김 대법원장처럼 제청권을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뜻이다.
노무현정부 시절 청와대 홍보수석으로 당시 민정수석이던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일한 조기숙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최 감사원장을 두둔하고 나섰다. 조 교수는 SNS에 올린 글에서 “인사의 교착상태는 헌법 정신에 입각해 순리대로 풀어야 한다”며 ‘감사위원은 감사원장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돼 있는 현행 헌법 조항에 충실할 것을 당부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