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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람 목숨 빼앗는 사형제는 또다른 살인”

입력 : 2020-07-28 20:56:30 수정 : 2020-07-28 22: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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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수의 아버지’ 문장식 목사 인터뷰
문장식 목사는 “사형은 사실상 살인행위나 다름없다”며 법률상 사형제 폐지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재문 기자

1986년 출간된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끔찍한 살인의 현장을 본 사람들은 사형 존치론자가 되고 처연한 사형집행을 목격한 사람들은 사형 폐지론자가 된다고 한다…’ 사형제의 잔인성을 에둘러 말하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 존재가 남김없이 말살당하는 장면을 목격한다는 건 어찌 됐든 간에 비극일 수밖에 없다.

 

“고무신 한 짝을 일부러 던져요. 꾸물꾸물 가져와 느릿느릿 신어요. 물 한 모금만 달라고 해요. 한 모금 마시면 이번엔 따뜻한 물을 달라고 해요. 안 피우던 담배도 한 대 피우게 해달라고 해요. 필터가 탈 때까지 태워요. 갑자기 시신을 기증하겠다고도 하고 찬송가를 더 부르고 싶다고도 하죠. 그러면서 한마디 두마디 군소리를 더해요. 1초라도 더 살아보겠다는 거예요.”

 

60여 차례 집행장에 입회하여 사형수들의 마지막 순간을 모두 지켜본 문장식(85) 목사의 말이다. 지난 10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가 떠올린 집행의 순간은 이랬다. 숨겨지지 않는 떨림을 숨기려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숨 한 모금 더 쉬어보겠다고 악착같이 바둥대는 이도 있었다. “내가 가난해서 그렇다”“나는 아니다”고 울부짖는 이들도 있었으며, 그중 일부는 수십년 뒤 억울함을 인정받기도 했다.

 

“어떤 때는 오전 9시쯤부터 해 떨어질 때까지 사형을 집행했어요. 중간에 다들 밥은 먹어야 하니까… 잠시 집행을 멈추고 설렁탕을 먹어요. 그 맛이 어떨까요? 쑥을 맨입에 씹어먹는 느낌이었죠.”

 

사형은 사형수만의 일이 아니다. 사형집행에는 검사와 검찰청 서기관, 교도소장, 교도관, 의사, 종교인 등 40여명이 직간접적으로 참여한다. “몸이 아파서”, “결혼을 앞두고 있어서”, “아내가 임신해서” 등 온갖 핑계를 대며 집행을 피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집행에 나선 이들은 ‘일’이 끝나도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날 받은 몇푼 수당을 탈탈 털어 곯아떨어질 때까지 술을 마셨다.

 

1998년 12월 이후 사형집행이 멈춘 우리 사회에 이런 이야기들은 이제 낡고 녹슨 이야기에 불과한 걸까. 지난달 국회에 사형 확정 6개월 이내 집행을 의무화하도록 한 법안이 발의되면서 존치·집행 여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여기에 미국 연방정부의 17년 만의 사형집행 소식이 기름을 부었다. 우리나라 사형수는 60명. 누군가에겐 실존의 문제인 셈이다.

“사형제의 본질은 제도살인입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죽이는 거예요. 사람들은 ‘나쁜 짓을 했으니 벌을 받아야지’라고만 생각하지 이게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일인지 잘 모르죠.”

 

1983년 교정사목을 시작한 이래 수많은 사형수들을 지켜본 문 목사는 우리나라가 완전한 사형폐지국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데에 짙은 아쉬움을 드러냈다.

 

28일 국제앰네스티에 따르면 법적으로 사형을 폐지한 국가는 106개국, 우리처럼 사형제가 있지만 집행을 않는 실질적 사형폐지국은 36개국, 사형제 유지국은 60개국 안팎이다. 1948년 사형제 전면폐지국이 7개국이었단 점을 감안하면 지난 반세기 동안 세상이 확 달라진 셈이다.

 

그만큼 천부인권과 생명의 가치가 전세계적으로 확산됐기 때문이란 게 문 목사의 설명이다. “예전에 박정희 정권 때 황산덕씨가 법무장관에 오르고 사형 집행이 수년 동안 한 건도 없었어요.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그분이 보기에 사형 집행은 결국 다른 사람을 죽이는, 살인을 저지르는 일이라고 본 것이죠.”

 

사형제는 폐지될 수 있을까. 어느 국가든 여론은 언제나 존치론 쪽에 기운다. 최근 설문조사만 봐도 거의가 7대 3, 혹은 8대 2다. 더구나 장장 20년 동안 사형 집행이 없었던 터. 긴 세월을 건너오며 사형제의 잔인함은 희석되고 범죄피해의 공포만 농축된 것이 지금 상황이다.

 

그래서 문 목사는 “어쩌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인권변호사 출신인 문재인 대통령과 법무부의 달라진 분위기, 인권 문제에 관심이 커진 국회 등을 두루 감안했을 때 이번 정부 때 충분히 폐지가 가능하단 것이다. 1996년 7대 2로 사형제 합헌 결정을 내린 헌법재판소도 세월이 흘러 2010년 합헌이긴 하나 5대 4로 변화한 기류를 보여줬다. 그로부터 10년이 더 지난 지금, 결과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요즘 문 목사는 수십년 전 함께 사형폐지운동을 벌였던 이들을 만나고 있다. 다시 한 번, 어쩌면 마지막일 수 있는 운동에 나선 것이다. 그는 결과와 무관하게 시간이 허락하는 한 끝까지 노력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는다.

 

“삼선개헌 반대투쟁 때 함석헌 선생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어요. 제가 ‘선생님, 삼선개헌 막을 수 있겠습니까’ 물으니 이렇게 답하시더군요. ‘문 목사, 되고 안 되는 것은 우리가 알 바 아니라오. 정의라고 생각하면 일단 하는 것, 그러면 되는 것이오’ 나도 그렇습니다. 사람이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사형제를 없애는 것, 이것이 나의 임무요 정의입니다.”

 

이창수 기자 wintero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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