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이 속도 빨라 백신 나와도 종식 어려워… 남미 등서 2,3차 유행하며 인류 계속 위협
국경 봉쇄로 글로벌 공급망 가동 중단… WHO 포함 국제기구 아무런 역할 못 해
산업혁명 버금가는 변혁 시작
신흥국 국가채무·외환 위기 확산 할수도… 경제 쇼크 줄이기 위해 ‘강한 정부’ 대두
세계경찰 포기 美 불간섭주의 전환 가능성… 금융·기술 패권 싸고 美·中 첨예 대립 전망

매일 오후 2시면 질병관리본부 브리핑에 온 국민이 귀를 기울인다. 21일 45명, 22일 63명, 23일 59명…. 밤 사이 신규 확진자 수가 늘어나면 “이를 어쩌나” 하고 한숨 쉬고, 줄어들면 안도하는 나날이 이어진다. 글로벌 규모의 봉쇄·방역이 장기화하면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인류 문명사 변화가 시작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도래다. 이에 대한 전망이 분분한 가운데 롯데그룹은 각계 전문가집단 인터뷰와 다각적 분석을 통해 ‘코로나19, 전과 후’라는 보고서를 작성해 관심을 끌었다. 그룹사 대표와 기획담당 임원을 대상으로 한 이 경영지침서는 ‘진정한 팬데믹은 코로나19 종식 후에 시작될 것’이란 경고로 시작한다.
◆종식 없는 코로나, 시작된 대변화
이번 코로나19는 역대 어느 전염병보다 질기다. 중국 이후 우리나라, 미국, 유럽 등이 고통을 겪고 있는데 이들 국가에서 증가세가 줄어들더라도 지금은 관심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남미나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2, 3차 대유행을 일으키며 계속 인류를 위협할 것이라는 게 뼈아픈 현실이다.
백신 개발도 선진 각국이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난망하다는 게 냉정한 평가다. 인간을 괴롭혀 온 여러 질병 중 70여년에 걸쳐 이제 겨우 독감 예방 백신을 만든 게 현재 의학 수준이다. 이마저 품질 문제가 끊이지 않고 매년 다시 맞아야 한다. 이 때문에 메르스(2015)와 사스(2003) 백신 개발 역시 진척이 없는 상태여서 코로나19 백신 개발 가능성에 전문가들은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설령 백신이 나온들 항체 생성 기간은 짧을 거란 우려가 크다. 게다가 코로나19는 변이가 빠른 RNA 바이러스다. 이 때문에 그나마 이미 개발된 바이러스 질환 치료제를 기반으로 한 치료제 개발에 기대를 걸 만하다. 빠르면 1년 이내 어느 정도 약효가 보장된 제품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국가 간 마스크 갈취 사태까지 벌어진 마당에 이를 어떻게 세계에 고루 공급할 수 있을지는 또 다른 난제다.
이 때문에 사라지지 않는 코로나바이러스는 결국 근대 산업혁명 정도의 충격을 인류 문명에 가져올 것으로 추정된다. 인류 역사에 나타난 변화를 그 규모에 따라 각종 선거 등에 따른 ‘사건사적 변화’, 산업화·정보화 등 ‘국면사적 변화’, 자본주의의 대두 등 ‘구조사적 변화’로 구분한다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국면사적 변화에 해당한다는 설명이다.

◆세계화의 후퇴, 국가주의의 강화
포스트 코로나 시대 첫 현상은 ‘세계화의 후퇴, 국가주의의 강화’로 나타날 전망이다. 코로나 국면에서 세계보건기구를 포함한 국제기구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세계화와 글로벌 거버넌스에 대해 세계 시민이 가졌던 막연한 믿음에 큰 타격을 준 것이다. 국경봉쇄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의 가동 중단 역시 세계화 미래에 물음표를 던졌다. 극심한 경제적 고통은 2차 대전을 일으킨 독일 내 나치주의 발흥처럼 민족주의 고양에 엄청난 자양분이 되고 이는 국가 간 무역·이민장벽 강화로 이어진다.

감염병 위기가 경제위기를 일으켜 신흥국 국가채무위기·외환위기로 확산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이미 4월 기준 세계 83개국이 구제금융을 신청한 상태인데 이는 IMF 창설 이래 최고 기록이다.
위기의 시대에 강한 정부가 대두하는 것은 필연이다. 경제 쇼크를 줄이기 위한 중앙정부의 적극적 재정정책은 ‘브레이크 없는 전차’처럼 각국에서 무제한 규모로 펼쳐지고 있다. 그로 인한 탈세계화, 그리고 케인스주의로 회귀 흐름이 강화되고 있다. 롯데그룹의 포스트 코로나 보고서는 “더 큰 정부(케인스주의)로의 대대적 전환은 이미 결정된 사실”이라고 단언한다. “위기 극복 과정에서 주요 정부는 매사에 개입하는 ‘전능한 존재’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 양극화가 심해질 경우 힘이 세진 정부는 승자의 초과 이익을 나눠 빈부 격차를 완화하는 구조를 어떻게 만들까 고민을 시작하게 된다.”
특히 정치 분야에선 강한 중앙집권 필요성이 대두하면서 사회적인 합의 절차나 절차적 공정성보다 과감함과 추진력을 중시하는 권위주의의 득세 가능성이 커졌다. 이미 중국이 그 전례를 보여줬고 상당수 국가에서 절차적 민주주의가 후퇴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우리나라는 ‘투명한 방역’을 강조하며 민주주의 가치를 방역에서 지켜낸 모범사례로 언급됐다. 그러나 한편에선 확진자 동선 공개 등으로 서구사회에서 사생활 침해 논란을 일으켰다. 그런데도 국제사회에선 코로나19 문제 해결을 위한 방편으로 전체주의 대 민주주의 양극화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우려된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물결에 밀려났던 케인스주의는 이처럼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정부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하다’는 사회 공감에 힘입어 다시 득세하고 있다.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에 이어 그동안 학자들 책상에 놓여 있던 국민소득 지급 논의가 본격화될 가능성이 크다. 보고서는 “당연히 시장에 대한 정부 개입도 강해질 수밖에 없다. 아마 한국의 경우는 더할 것이다. 재난소득을 반대하던 보수 야당도 예상외로 ‘소득 구분 없이 전 국민에게 다 주자’는 제안까지 내놨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면 큰 정부로의 이동은 기정사실일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미국의 행보는?
코로나19는 지구촌을 지배하던 신자유주의에 결정적 타격을 줬다. 특히 포스트 코로나 시대 국제질서에선 미국의 방향 선회 여부가 주목된다.
원래 미국 외교의 본질은 건국 후 ‘대외 불간섭주의’로 일관했다는 시각이 존재한다. 다만 소련과 냉전을 벌이면서 다른 나라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게 오늘날 미국 주도 국제지형도를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미 냉전은 종식됐고 미국에서 풍부한 셰일오일이 개발되면서 더는 골치 아픈 중동 문제에 미국이 개입할 필요도 상당 부분 사라진 상황이다.

여기에 코로나19 사태가 벌어지면서 미국이 다시 불간섭주의로 돌아설 가능성이 더욱 커진 셈이다. 미국의 세계경찰 역할을 포기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행보를 보다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대목이다.
최대 관심사는 미·중 대결이다. 중국은 패권, 적어도 아시아 내 주도권을 잡겠다는 뜻을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다. 특히 코로나19를 일찌감치 통제한 후 각국에 공공재를 제공하고 의료물품과 인력을 지원하면서 리더국가로서 면모를 과시하려 한다. 불간섭주의로 미국이 전환한다 해도 세계 시장에서 우위를 유지하기 위한 금융·기술 패권을 놓고 미국과 중국은 첨예한 대립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중 간 극한 대립은 21세기를 관통하는 전쟁”이라는 게 보고서 예측이다.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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