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헌정사상 두 차례뿐인 대통령 탄핵소추를 모두 주도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정작 자신을 상대로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발의되자 웃음을 지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국회에 180석 가까운 압도적 다수를 확보하고 있어 탄핵소추 가결 가능성이 전무한데도 추 장관은 ‘핍박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며 짐짓 비장한 태도를 보였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추 장관은 현직에서 왕성히 활동 중인 유력 정치인으로는 드물게 2004년과 2016년 국회의 두 차례 대통령 탄핵소추에 모두 관여했다.
먼저 노무현정부 시절인 2004년 추 장관은 당시 야당인 민주당 의원으로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를 주도했다. 추 장관은 2002년 대선 당시만 해도 노무현 후보를 적극 지지했으며, 노 후보 당선 후에는 정동영 당시 의원과 더불어 노 대통령의 ‘후계자’가 될 것이란 전망까지 나돌았다.
하지만 이후 민주당이 노 대통령을 적극 지지하는 ‘친노(친노무현)’ 중심의 열린우리당과 호남에 기반을 둔 민주당으로 갈라지는 과정에서 추 장관은 민주당을 택했고 결국 2004년 3월 한나라당(현 미래통합당)이 앞장선 노 대통령 탄핵소추에도 적극 동참했다.
노 대통령은 국회에선 탄핵소추안이 가결됐으나 헌법재판소가 이를 기각함으로써 탄핵 및 파면을 면했다.

12년이 흘러 추 장관은 민주당 대표 시절인 2016년 12월 박근혜 당시 대통령 탄핵소추를 주도했다.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 의한 박근혜정부 국정농단 의혹이 불거져 주말 오후마다 광화문 등 서울 도심 일대에서 박 대통령 하야를 촉구하는 대규모 촛불시위가 벌어지던 때였다. 탄핵소추안은 압도적 표차로 국회를 통과했다.
이듬해 3월 헌재는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박 대통령 탄핵소추를 인용, 그를 대통령직에서 파면했다.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후 대선에서 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승리하며 추 장관은 제1야당 대표에서 집권 여당 대표로 ‘신분’이 확 바뀌었다.
이번 추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안 발의에는 미래통합당과 국민의당, 그리고 무소속까지 110명의 국회의원이 참여했다. 장관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화하려면 재적 국회의원(300명)의 과반인 151명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다. 여당인 민주당 의석만 176석이란 점을 감안하면 탄핵소추안은 표결까지 갈 것도 없이 불발에 그칠 게 뻔하다.
그래선지 추 장관은 자신에 대한 탄핵소추안 발의 소식을 들으며 웃음을 지는 여유롤 보였다. 그러면서도 “핍박의 주인공으로 저를 지목하며 오늘 탄핵소추가 발의됐다”고 말했다. 거대 여당의 엄호를 받고 있으면서 ‘핍박의 주인공’을 자처한 것이다. 야권의 한 관계자는 “한편으로는 자신감이 넘치는 듯하면서 또 한편으론 ‘엄살’까지 부린다”며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정치인”이라고 평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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