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총통’은 무기의 개발 혹은 개량에 주력한 세종의 업적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길이 14㎝, 구경 0.9㎝인 이 소형무기는 어린이와 여자도 쉽게 사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임진왜란이 한창이던 1594년 2월 국정최고기구인 비변사는 임금에게 “오늘날의 급선무”라며 “조총과 승자총통을 거두어 군사에게 나누어 가르치는 것”을 제시했다. 전쟁 중인 조선의 군대에서 승자총통의 중요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조총이 도입되기 전 조선 병사의 개인화기는 세총통, 승자총통과 같은 소형총통이었다. 건국 이후 200여년간 변화, 발전을 거듭하다 임진왜란 이후 조총이 도입될 때까지 조선의 무기체계에서 큰 위상을 가졌다.
‘임진왜란 전문 박물관’인 국립진주박물관이 최근 공개한 ‘조선무기 조사연구 보고서Ⅰ:소형화약무기’는 이런 소형총통을 분석한 결과물이다. 지난 2년간 800여점의 소형화기를 조사했다. 특히 소형총통의 안과 밖을 특징짓는 주요 요소들에 대한 설명이 주목된다. 기존 학설과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한편 알려지지 않았던 내용이 포함돼 있다.

◆가장 발달한 소형총통에서 사라진 ‘죽절’
소형총통의 외형에서 두드러지는 건 ‘죽절’(竹節)이다. 총신에 일정한 간격으로 새겨 놓아 대나무 마디처럼 생겨서 붙은 이름이다. 박물관의 이번 조사에서는 기존 학설과는 다른 사실들이 확인돼 흥미롭다.
우선 같은 종류의 소형총통에는 같은 수의 죽절을 새기는 게 엄격하게 지켜졌다. 기존에는 별승자총통은 7개 또는 8개로 두 가지 유형이 있다는 주장이 있었지만 이번 조사에서 별승자총통은 7개며, 8개인 것은 별양자총통인 것으로 확인됐다. 신제총통은 3개, 차승자총통은 6개였다.
죽절의 역할에 대해서도 기존과 다른 견해를 제시했다. 소형총통이든, 대형화포든 죽절은 공기와 접촉하는 겉면적을 넓혀 냉각속도를 높이고 강도를 보강하는 역할을 한다는 게 기존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박물관이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승자총통을 3D 스캔으로 측정한 결과 죽절이 있을 때 겉면적은 652.08㎠, 죽절이 없다고 가정하고 측정한 경우에는 633.44㎠로 차이는 18.64㎠(2.86%)에 불과했다. “이 정도의 차이가 냉각속도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어렵고, 더구나 소형총통은 현대의 소총처럼 연발식이 아니라서 죽절의 유무가 냉각속도에 주는 영향은 더욱 미미했을 것”이란 게 박물관의 판단이다.

허일권 학예연구사는 “죽절 개수를 지키는 것이 제작 당시의 필수 규격이었을 것이고, 죽절의 역할에 대한 어떤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며 “하지만 (기능에 대한 정확한 인식 없이) 관성적으로 새겼던 것으로 보이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필요 없다는 것을 깨달아 소형총통의 가장 발전된 형태인 소승자총통의 단계에 이르면 없어진다”고 설명했다.
◆모조품 판단의 새로운 기준, ‘아연과 채플릿’
소형총통의 내부를 분석한 결과에서는 진위를 판별하는 기준이 될 수 있는 두 가지 사실을 새롭게 제시해 흥미롭다. 무기류 유물은 출처가 불명확한 전래품이 많아 종종 진위 논란에 휩싸인다.
첫째, 구성 성분이다. 청동제 소형총통은 구리, 주석, 납의 합금으로 만들었다. 주목되는 것은 5∼10% 정도로 비교적 균일한 무게 비율을 유지한 주석이다. 다른 청동제 유물의 주석 비율이 들쭉날쭉한 것을 감안하면 제작에 꽤 신경을 썼음을 알 수 있다. 이 정도의 주석 비율은 재질이 늘어나 쉽게 깨지지 않게 하는 성질을 가지도록 했다. 박물관은 “충격값이 낮아지는 기점인 13%보다 적은 주석의 무게 비율은 총통이 깨지기보다는 차라리 휘어지게 하는 데 방점을 두고 제작되었음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진위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있는 건 소수의 소형총통에서 확인되는 아연 성분이다. 소형총통은 14∼16세기 활용된 무기다. 반면 아연이 합금 성분으로 본격적으로 활용된 때는 17세기. 아연은 “시기상 어울리지 않는 성분”이다. 아연이 포함된 소형총통은 부식 양상도 일반적인 것과 달랐다. 이순신의 거북선에 활용된 무기라며 등장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으나 1996년 모조품임이 밝혀져 국보에서 지정해제된 별황자총통에서 8%가량의 아연이 확인된 바 있다.

둘째, 총신을 제작할 때 모양을 제대로 잡기 위해 넣었던 ‘채플릿’이라는 받침쇠의 존재다. 채플릿은 총신이 길어지는 조선 중기 이후의 소형총통에 주로 쓰인 것으로 확인됐다. 컴퓨터 단층촬영(CT) 결과 채플릿은 폭이 3㎜ 정도의 철제 금속선으로 W, M, L자 형태를 띠었다. 박물관은 “위작으로 의심되는 소수의 소형총통에서는 채플릿이 발견되지 않았다”며 “소형총통의 진위 판별에 결정적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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