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경복궁의 동쪽 동궁 영역은 복원 사업이 추진 중이다. 지난 3월 문화재청이 일제강점기에 훼손된 계조당(繼照堂) 복원공사를 110년 만에 착수한다고 밝힌 것이 큰 계기였다. 계조당을 처음 건립한 왕은 세종으로, 당시 세자였던 문종을 위해 설치한 동궁(東宮) 건물에 포함된다. 세자는 떠오르는 태양이라 하여 그 거처를 동쪽에 두어, 일명 동궁이라 하였다. 사계절 중에는 봄을 상징한다고 하여 춘궁(春宮)이라 하였다. 세종은 차기 왕이 될 세자가 미리 정치와 학문 수업을 받을 수 있도록 따로 동궁 건물을 세웠다. 1427년(세종 9) 세자의 서연 장소로 자선당(資善堂)을 만들었고, 1442년에는 세자를 보좌하는 기관인 첨사원(詹事院)을 설치했다. 1443년에는 근정전처럼 세자가 신하들의 조회를 받을 수 있는 건물인 계조당을 완성했다. 1443년 5월 12일의 ‘세종실록’에는, “왕세자가 조회받을 집을 건춘문 안에다 짓고, 이름을 ‘계조당’이라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세종이 문종의 대리청정을 지시하면서 세웠다. 문종은 세자로 있을 때, 세종과 함께 많은 성과를 이루어냈다. 측우기의 발명도 문종의 손에서 이루어졌다. 효심도 지극하여 ‘세종실록’에는 문종이 궁궐에 직접 앵두나무를 심고 수확한 앵두를 세종에게 올린 기록이 보인다. 세종은 진상품으로 올라오는 앵두보다 세자가 직접 심은 앵두라서 더욱 맛있다며 화답해 주었다.
계조당은 문종의 유언으로 단종 때 철거되었다. 문종이 더 이상 세자가 신하들의 조회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역사 속에 사라졌던 계조당은 1868년 고종 때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부활하게 된다. 고종은 계조당을 재건하면서, 문종이 세종의 가르침을 준수한 전통이 고종에서 순종으로 이어지기 바란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1910년 국권이 침탈되면서, 계조당은 완전히 파괴되었고, 110년이 지난 오늘날 계조당의 복원 계획이 발표된 것이다. 계조당이 복원되면, 이미 복원된 자선당, 비현각과 더불어 문종이 세자 시절을 보낸 공간들의 완전체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신병주 건국대 교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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