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한반도의 전쟁을 다룬 영화, 드라마 등에서 ‘개마무사’(갑옷을 입힌 말을 탄 병사)는 단골 소재다. 고구려를 배경으로 한다면 더욱 그렇다. 철갑을 두른 말을 타고, 갑옷으로 단단히 무장해 전장을 누비는 ‘무적의 개마무사’(중장기병)는 고대를 향한 대표적인 판타지 중 하나이기도 하다.
고대 중장기병의 실제를 볼 수 있는 전시회가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국립경주박물관 공동주최로 경주박물관에서 8월 23일까지 열린다. 2009년 경주 쪽샘지구 C10호분에서 완형에 가깝게 출토된 마갑(말갑옷)의 보존처리가 얼마전 완료된 것을 기념해 고대국가의 마갑을 중심으로 전시회를 꾸렸다. 고대 삼국의 마갑 18점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처음이다.
◆120㎝로 크지 않았던 고대의 말
신라의 마갑은 경주를 중심으로 출토되고 있다. 지금까지 7개 유적에서 마주(말의 얼굴을 보호한 갑옷) 3점, 마갑 6건이 나왔다. 단연 돋보이는 것은 2009년 쪽샘지구 C10호분에서 나온 마갑으로 길이가 약 290㎝, 너비는 약 90㎝, 무게는 약 36㎏에 달한다.

경주문화재연구소는 10년간 보존처리 작업을 끝내고 지난 4월 보고서까지 냈다. 이 과정에서 마갑을 복원하는 한편 고대 국가들이 활용한 말의 모습을 추정한 것이 흥미롭다.

고대의 말은 지금 우리가 흔히 보는 훤칠한 모습은 아니다. 당시의 모습을 추정하는 근거가 되는 것은 저습지, 패총 등에서 출토되는 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고대의 말은 체고가 120∼136㎝ 정도로 지금 흔히 보는 말보다 작다. 전신 골격이 온전하게 출토하지 않아 신체의 비율을 알 수는 없지만 토우와 벽화에서 몸통이 크고 사람의 발이 땅에 닿을 정도로 작게 묘사되고 있다는 점도 이런 추정을 뒷받침한다.
연구소와 박물관은 천연기념물로 보호되고 있는 제주마가 고대의 말과 닮았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흔히 조랑말이라고 불리는 제주마는 키가 암컷 117㎝, 수컷 115㎝ 정도로 작다.
◆옷칠을 한 삼국시대 최초의 마갑
마갑 출토는 영남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그 중에서 마갑이 나온 30여 곳의 고분 중 20곳이 가야 지역에 분포되어 있어 수적으로 가장 많다.
반면 백제 지역에서는 출토 사례가 많지 않다. 화원천리유적 집터에서 마갑편 4점이 발견되었고, 전북 고부 구읍성 안의 저수지에서는 중장기병의 모습이 새겨진 기와편 1점이 확인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공주 공산성의 것은 특이한 사례가 주목을 받는다.

머리를 보호하는 마주와 몸을 보호하는 가죽에 4회 이상 옻칠을 한 마갑으로 구분된다. 함께 출토된 옷칠 갑옷에 중국 당나라의 연호를 사용한 ‘정관19년’(645)이란 명문이 있어 갑옷의 제작지 등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마갑이 많이 출토된 신라, 가야 지역에서는 6세기 중엽이 되면 마갑을 무덤에 부장하는 풍습이 사라진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도 의미가 남다르다.
무왕 27년(626), 의자왕 5년(645) 등 수차례에 걸쳐 백제가 갑옷을 만들어 당나라에 보내고, 당 태종이 철갑에 백제의 황칠을 청한 기록이 백제의 갑옷 제작기술이 뛰어났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벽화고분이 전하는 고구려의 다양한 중장기병
고구려의 경우는 마갑 출토품보다는 중장기병의 모습을 묘사한 벽화고분이 중국 집안에 3기, 황해남도와 평안남도, 평양 등지에 10기가 확인돼 다양한 분석을 낳고 있다.

평양의 개마총은 먹으로 ‘총주착개마지상(塚主着鎧馬之像·무덤 주인의 갑옷 입힌 말의 모습)이라고 적은 글씨가 있다. 개마총에는 사람이 올라타지 않은 갑옷 차림의 말이 있어 주목된다. 이 말은 말투구의 털장식, 말 갑옷에 부착된 화려한 깃발장식 등에서 앞선 시기의 것들과는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인다. 또 서로 다른 기법으로 다른 형태의 마갑을 갖춘 2기의 중장기병이 있어 같은 시기에 2가지 형태의 중장기병이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자료일 수 있다.
고구려의 마갑은 주로 4세기 무렵부터 확인된다. 이는 3세기 말~4세기 초 중국 각지에서 다수의 국가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했던 당대의 상황과 연관된 것으로 이해된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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