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에서 아버지가 잠든 14살 딸을 살해하고 자수하는 ‘명예 살인’이 발생하자 이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 딸을 살해하고 자수한 아버지는 이란 현행법에 따르면 징역 3∼10년, 이슬람 율법에 따르면 무죄다. 명예 살인과 같은 가정 폭력에 대한 형량을 높이는 법안이 그간 여러 차례 이란 의회에 상정됐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27일(현지시간) 내각회의에서 이번 사건으로 희생된 소녀에 애도를 표하면서 명예 살인과 같은 가정 폭력 범죄에 대해 형량을 높이는 법률 개정을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란 여성 부통령인 마수메 엡테카르도 “가정 내에서 벌어지는 폭력 범죄는 지금보다 더 엄하게 처벌받아야 하고 법이 개정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형법 전문 변호사 페이만 하즈 마무드는 IRNA통신에 “이슬람 율법을 원리적으로 적용한다면 명예 살인은 죄가 아니지만 예언자 무함마드 시절과 달리 요즘엔 이런 행위가 많아져 엄격히 다뤄야 한다”라며 “가족이라도 법절차 없이 개인이 다른 이를 임의로 처벌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사회적인 분위기도 바뀌고 있다. 이란 내 소셜미디어에서는 아버지가 자녀를 소유물로 여기는 가부장적 관습을 비판하거나 성범죄의 피해를 본 여성에게 오히려 도덕적 책임을 묻는 명예 살인을 엄벌해야 한다는 글이 늘고 있다.
이번 사건은 이란 북부 길란주 탈레시 지역에서 일어났다. 14세 소녀 로마니아 아슈라피(사진)는 연인 관계인 30세 남성과 결혼하려 했지만 아버지가 반대하자 이 남성과 동반 가출했다. 이 소녀는 아버지의 신고로 닷새 만에 붙잡혔고, 지난 21일 집에서 잠자던 중 아버지에 의해 살해됐다. 아버지는 범행 뒤 경찰에 자수해 현재 구금 중이다.
이란 형법에 따르면 비속 살해 혐의를 받는 피고인에게는 징역 3∼10년이 선고된다. 최고 사형이 선고되는 이는 다른 고의 살인죄보다 형량이 매우 낮다. 보호자인 아버지가 자녀를 숨지게 하면 이슬람법(샤리아)의 기본 원칙인 ‘인과응보’(키사스)를 적용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이슬람 율법을 보수적으로 해석하는 시각에서는 아버지는 미성년 자녀의 보호자로서 자녀가 성범죄 등을 당하면 불명예를 씻는다는 이유로 살해하거나 자녀의 소유물을 빼앗아도 된다고 본다. 이런 영향으로 이슬람권 일부 국가에서는 아버지가 보호자로서 아내와 미성년 자녀에 대한 훈육할 권리를 인정하고, 가정 폭력을 용인하는 관습이 존재한다.
앞서 파키스탄에서도 16세 소녀와 18세 소녀가 남성으로부터 키스 받는 동영상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퍼졌다는 이유로 사촌의 총에 맞아 숨졌지만, 가족과 마을 주민들이 ‘명예 살인’ 전통이라 주장하며 경찰에 신고도 하지 않은 일이 논란이 됐다.
파키스탄에서는 해마다 1000여명이 부모의 허락 없이 결혼하거나 외도, 부적절한 의상 착용 등 가족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명예 살인’을 당하고 있으며 희생자의 대부분이 여성인 것으로 알려졌다. 파키스탄 의회는 2016년 명예 살인 처벌 강화법을 통과시켜 명예 살인을 25년 이상 징역형으로 처벌하도록 했지만, 상황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조성민 기자 josungmin@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