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자본시장의 ‘지연된 정의’를 방치하면 안 됩니다.”

법무부에서 금융위원회 자본시장조사단(자조단)으로 파견 중인 조재빈 기획관의 목소리에는 힘이 있었다. 2013년 창설된 금융위 자조단은 라임자산운용, 신라젠, 코오롱 인보사 등 최근 검찰이 중점 수사하는 증권범죄를 조사해 검찰에 고발하거나 수사의뢰하는 조직이다. 자조단은 그동안 한미약품 미공개정보 이용 사건, 라임자산운용, 상상인 저축은행 등의 사건을 검찰에 고발하거나 통보한 바 있다. 자본시장 불공정거래를 근절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온 조 기획관을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만났다.
조 기획관이 불공정거래 수사와 연을 맺은 것은 2011년 서울서부지검 근무 때다. 그는 “당시 루보 주가조작 일당이 쌍방울트라이 주식에 대해서도 시세조종을 한다는 제보를 받고 한국거래소, 금융감독원과 공조수사를 실시했다”며 “이후 삼성그룹 비자금, 롯데그룹 경영비리, 삼성물산 건설부문 뇌물 비리, 현대모비스 영업비밀 탈취 등 많은 기업수사에 참여한 경험이 자조단 불공정거래 조사업무를 지휘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자본시장은 지난해 기준 1조4848억달러 규모, 세계 17위 수준으로 성장했다”고 운을 뗀 조 기획관은 “기업들이 자본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비중이 1998년 32.5%에서 2018년에는 52.5%로 크게 증가한 만큼 자본시장 불공정거래행위는 국민 경제성장에 더욱 심각한 타격을 입힌다”고 우려를 표했다. “증권범죄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처벌 수위와 범죄적발률을 높이되 신속한 처리가 가능한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조 기획관은 증권범죄 처벌 수위를 높이기 위해 우선 가중처벌 기준으로 돼 있는 부당이득 산정 기준을 신속히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부당이득액이 정확히 산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징역형과 벌금형·추징금을 모두 피해가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자본시장법이 서둘러 개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와 비슷한 문제가 횡령, 배임”이라며 “금액에 따라 가중처벌하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역시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과거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을 기소해 778억원의 배임죄 부분이 유죄선고 되도록 했지만 법원은 배임 금액이 특정되지 않았다며 집행유예만 선고했다”며 “778억원이라는 액수가 정확하지 않다 하더라도 신 회장이 이득액 50억원 이상의 배임을 저지른 것은 객관적으로 명백한데 금액 불특정을 이유로 재벌을 선처했다”고 아쉬워했다. 이어 “특경가법 역시 이득액 기준 가중처벌규정이 실효성 있게 적용될 수 있도록 입법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조 기획관은 범죄적발률을 제고하기 위한 대책으로 한국거래소의 감시시스템 고도화, 자조단 인원 증원, 자조단과 금감원의 권한 강화 등을 꼽았다. 또 증권범죄의 가담자들이 금융당국에 제보할 경우 형벌을 감면하는 등 제보를 활성화해 조직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의 내부 분열을 일으킬 필요가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실제로 그는 2008년 ‘MB 특검’에 파견돼 다스 수사를 하며 범죄 가담자들의 내부 균열이 결과적으로 사태 해결에 미치는 영향을 경험한 바 있다. 지난 2월 2심 선고가 이뤄진 뒤 대법원의 최종 판결을 앞두고 있는 다스 실소유주 관련 수사 소회를 물었다. 조 기획관은 “결과적으로 여직원의 것으로 확인됐지만 2008년 법원이 압수수색 영장을 두 차례 기각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MB의 비자금을 추적해 120억원까지 밝힌 것이 의미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당시 특검 수사로 인해 다스 대표와 전무 등이 해고됐고, 다스로부터 내쳐진 이들은 10년이 지난 2018년 검찰이 재수사에 착수하자 더 이상 ‘살아있는 권력’이 아닌 다스 실소유주에 대한 별도의 비자금, 다스 설립경위 등을 털어놨다. 애초 ‘특검이 다스 등 이명박 전 대통령 관련 수사를 덮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앞선 특검의 수사가 오히려 다스의 실소유주를 밝히는데 기여한 것이다.
조 기획관은 자본시장 범죄 근절 방안으로 자본시장 조사·수사를 담당하는 ‘4개의 수레바퀴’ 공조 활성화를 내세웠다. 검찰, 금융위, 금감원, 거래소 등 4개 기관이 서로의 입장을 내세워 견제하기보다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보다 효율적인 증권범죄 처리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 합동수사단이 폐지된 만큼 남부지검의 금융조사부 2개로는 날로 증가하는 범죄 실태를 해결할 수 없다”며 “남부지검에 금융조사부를 3개 정도 더 증설할 필요가 있다”고도 제안했다.
이우중 기자 lo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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