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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년간 소외이웃과 함께한 ‘전진상 공동체’의 고군분투기

입력 : 2020-05-23 03:00:00 수정 : 2020-05-22 19: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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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오르골/2만원

전진상에는 유쾌한 언니들이 산다/김지연/오르골/2만원

 

‘전진상’을 아십니까. 다소 생소한 이 이름은 1975년 서울 금천구 시흥동에 문을 연 이래 지금까지 묵묵히 이웃사랑을 실천해온 ‘전진상 공동체’를 말한다. 전진상 의원, 복지관, 약국, 호스피스 완화의료센터, 지역아동센터 등 독립된 다섯 기관의 연합체다. 당시는 우리 사회는 산업화가 급격히 이루어지면서 농촌 인구가 서울로 모여들었고, 특히 전진상 의원·복지관이 문을 연 1975년은 지방에서 서울로 전입한 인구수가 가장 많은 해였다. 그런 혼란기에 전진상 식구들은 시흥동 판자촌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며 이상적인 ‘의료 사회복지 통합 모델’을 선보였다. 특히 제복을 입은 성직자나 수도자도 아닌 일반 신자(평신도)였기에 더욱 의미가 크다.

이 공동체는 “가난한 이들 속으로 들어가라”는 고(故) 김수환 추기경의 요청에 호응해 벨기에 출신 마리 헬렌(한국명 배현정) 등 국제가톨릭형제회(AFI) 회원 세 명이 시흥동 판자촌에 약국을 열면서 시작됐다. ‘전진상’이라는 이름은 ‘온전한 자아봉헌(全), 참다운 사랑(眞), 끊임없는 기쁨(常)’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 책은 45년 동안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과 함께 살아온 전진상 공동체의 고군분투기라 할 수 있다.

간호사·약사·사회복지사인 이들 세 명은 의료보험을 비롯한 사회보장제도가 전무하던 시기에 산동네의 가가호호를 방문하며 의료 사회복지의 역사를 개척하고 가정 호스피스의 싹을 틔웠다. 자동차도 다니지 않는 산동네 환자들을 업고 달리는 일은 다반사였다.

한 사례다. 여자아이는 폐가 고름으로 가득 차 엑스레이 사진이 하얗게 나오는 통에 의사가 혼비백산할 정도였으나 다행히도 의료진의 정성 어린 치료 끝에 건강을 되찾았다. 그 아이는 지금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살 뿐만 아니라 친자 이외에 다른 아이까지 입양해 키움으로써 자신이 받은 사랑을 되돌려주고 있다.

이들은 초창기부터 가정방문(방문 간호와 왕진) 및 ‘가계도’ 형식의 특별한 차트를 통해 환자와 그 가족의 치유뿐 아니라 지역 사회의 근본 문제까지 해결하고자 노력했다. 어려운 가정을 위해 해외 및 국내 후원자를 연결해 주었다. 그러면서도 도움받는 이들이 위축되지 않도록, 생활보조금을 ‘장학금’이라 부르는 등 세심하게 배려했다. 이제는 평균 나이 71세의 유쾌한 언니들은 한 가족을 이뤄 이웃들에게 아름다운 시간을 선물하는 봉사의 삶을 살고 있다. 책을 통해 처음 공개되는 1970년대 시흥동 풍경 등 배현정 원장의 개인 소장 사진들은 그 자체로 역사적 가치가 있다.

 

박태해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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