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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장 병원의 임금체불… 法 “병원장 아닌 사무장 책임”

입력 : 2020-05-20 15:11:58 수정 : 2020-05-20 15: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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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장 병원 폐원 후 임금 떼일 위기 놓인 종업원들 / "임금 달라" 요구에 사무장은 "모든 책임은 병원장" / 법률구조공단 도움으로 "사무장이 책임져라" 판결

‘사무장 병원’이란 말이 있다. 의사가 아닌 사람이 의사 명의를 빌려 개설한 병원을 뜻한다. 변호사 자격증이 없는 사무장이 변호사들을 고용해 사실상 법무법인(로펌) 대표 노릇을 하는 ‘사무장 로펌’과 일맥상통하는 개념이다.

 

경영난에 처한 사무장 병원이 문을 닫으면 병원 근로자들은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이기 쉽다. 체불 임금 등을 받아내야 하는데 대체 누구한테 요구를 해야 하는지 애매모호하기 때문이다. 사무장은 의사 면허가 있는 병원장에게 모든 책임을 떠밀고선 잠적하기 일쑤다. 반면 병원장은 “나는 이름만 빌려줬을 뿐 병원 운영에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면서 사무장에게 얘기하라고 한다.

사무장 병원의 폐원으로 직장을 잃고 체불 임금도 못 받을 처지에 놓인 근로자들이 대한법률구조공단 도움으로 법원에서 “사무장 병원’의 경우 사무장이 근로기준법상 사업주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받아내 구제를 받을 길이 열려 주목된다.

 

20일 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제약회사 근무 경험이 있던 A씨는 박근혜정부 시절인 2014년 충남 서천군의 한 건물을 아내 명의로 사들였다. 그리고 평소 알고 지내던 B씨 등 의사 2명을 고용해 B씨 명의로 병원을 열었다. 간호사 등 병원 직원들은 병원장 B씨와 근로계약을 맺고 채용됐다.

 

병원 사무장 A씨는 ‘총괄이사’라는 직함으로 병원장 B씨의 도장을 소지한 채 병원을 실질적으로 운영했다.

 

이 병원은 1년 여 만인 2015년 경영난으로 폐업하게 되었다. 병원 건물마저 경매에 넘어가 종업원들은 임금과 퇴직금을 떼일 처지에 놓였다. B씨는 “나는 명의상 병원장일 뿐”이라며 뒤로 물러섰고, A씨는 “사무장에 불과한 내게 그런 얘기 하지 말라”며 손사래를 쳤다.

 

결국 종업원 16명은 도합 5000여만원에 이르는 임금 등을 받아내기 위해 법률구조공단의 문을 두드렸다.

 

1·2심은 “체불 임금 지급 의무가 사무장 A씨가 아닌 병원장 B씨에게 있다”고 판단했다. “의료인이 아닌 이가 의사를 고용해 병원을 개설한 소위 ‘사무장 병원’은 의료법 위반”이란 이유를 들었다. A씨가 돈줄을 쥐고 있는 상태에서 종업원들은 체불 임금을 받을 길이 막막해졌다.

원고들을 대리한 법률구조공단 박왕규 변호사는 대법원에 상고하며 “유의미한 구제 조치가 취해지려면 병원 운영의 실질적 책임자인 사무장 A씨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작성해 제출했다.

 

박 변호사는 사무장 병원의 운영 약정이 의료법 위반으로 무효라고 하더라도 근로계약까지 무효라고 할 수는 없다는 점, 1·2심 판결은 사무장 병원 운영에 사실상 ‘면죄부’를 주는 것으로 오히려 사무장 병원을 조장할 수 있다는 점 등도 부각했다.

 

이에 대법원 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최근 원심을 깨고 사건을 하급법원으로 돌려보내 다시 심리토록 했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비록 병원장 명의로 근로계약이 체결되었지만, 사무장이 실질적으로 원고를 채용하고 업무지시를 내리고 급여를 직접 지급했다”며 “원고와 피고 사이에 실질적 근로관계라 성립되었다”고 판시했다.

 

승소 판결을 이끌어낸 박 변호사는 “그동안 사무장 병원이 폐쇄된 경우 사무장이 병원장에게 임금 지급 의무를 미루고 잠적하는 사례가 많았다”며 “이번 판결로 근로자들을 두텁게 보호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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