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언과 폭력 등 ‘주민 갑질’에 시달리다 결국 세상을 등진 서울 강북구 아파트 경비원 사건에 대해 관련 단체가 고인의 산업재해 신청을 추진하고 있다.

‘고(故) 최희석 경비노동자 추모모임’은 최씨의 사망이 아파트 경비업무 수행 과정에서 발생한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보고 산재 신청을 추진하고 있다고 18일 밝혔다. 추모모임에 따르면 2018년 8월부터 강북구 우이동의 한 아파트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던 최씨는 지난달 21일 주차 문제로 주민 A(49)씨와 다툰 뒤 이후 그로부터 지속해서 폭언과 협박, 폭력 피해를 받았다. 최씨는 괴롭힘이 계속되자 A씨를 지난달 경찰에 고소하기도 했지만, 결국 이달 10일 자신의 주거지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최씨의 산재 신청을 추진하는 이오표 성북구노동권익센터장은 “주차 단속 등 감시단속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주민으로부터 폭언과 폭력을 당했다”며 “이후 최씨의 극단적 선택은 업무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센터장은 “유족 동의를 받아 이르면 이번 주 중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 유족 보상을 신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37조에 따르면 근로자의 고의나 자해로 발생한 사망은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지 않는다. 하지만 ‘업무상의 사유’로 발생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자살도 업무상 재해로 인정될 수 있다. 이를 근거로 최씨의 극단적 선택 역시 경비원 업무를 수행하며 발생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행해진 업무상 재해로 보고 산재로 인정을 받겠다는 뜻이다.
아파트 경비원이 ‘주민 갑질’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하고, 이후 산재를 인정받은 사례는 2014년 서울 강남구에서도 있었다.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던 이모(당시 53세)씨는 주민으로부터 비인격적 대우가 이어지자 2014년 10월7일 아파트 주차장에서 분신했다. 당시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이씨의 업무상 질병 판정서에서 “업무 중 입주민과의 심한 갈등과 스트레스로 기존의 우울 상태가 악화해 정상적 인식능력을 감소시켜 자해성 분신을 시도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업무적으로 누적된 스트레스가 극단적 형태로 발현돼 발생한 것으로 보이는 바, 업무 관련성이 있다고 사료된다”고 밝히고 ‘업무상 사망’으로 인정했다.

한편 최씨가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을 수사중인 경찰은 전날 A씨를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이날 경찰에 따르면 전날 오후 1시쯤 강북경찰서에 출석한 A씨는 상해와 폭행 등 혐의로 조사를 받고 이날 자정쯤 귀가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피해 경비원을 지속해서 폭행했다거나 협박했다는 의혹에 대해 대체로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언론을 통해서도 “폭행 사실이 없고, 주민들이 허위나 과장된 주장을 하고 있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 사안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진술 내용을 확인해줄 수 없다”며 “조사 결과를 토대로 재소환이나 구속영장 신청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김선영 기자 007@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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