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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갑질’ 시달리는 아파트 노동자들…“불안정한 고용구조부터 해결 나서야” [김기자의 “이건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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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5-15 23:00:00 수정 : 2020-05-15 17: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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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주민 폭언·폭행 시달리던 경비원 극단 선택 / 서울 아파트 경비원 5명 중 1명 부당대우 경험 / 잘못 없어도… 입주민 불만, 고용불안으로 돌아와 / 입주민과 실질적 근로계약 맺지 않아 법적 보호 불가 /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같은 조항 요구 목소리
[편집자주] 세상을 살다 보면, 참 별난 일이 많습니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을 겪고도, 속앓이만 하는 경우도 적지 않고요. 그래서 독자 여러분이 ‘하소연’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특히 소외된 곳에서 누구에게 말해도 도움을 받지 못하는 분들의 말씀에 귀기울이겠습니다. 사연이 있으신 분들은 이메일(007@segye.com)로 제보 부탁드립니다.

 

◆‘주민 갑질’ 시달리는 아파트 노동자들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에서 경비원으로 근무하던 고(故) 최희석씨는 입주민의 폭언·폭행에 시달리다 지난 10일 ‘억울하다’는 취지의 유서를 남기고 자신의 집 주변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최씨는 주차 문제로 아파트 주민과 다툰 뒤 지속해서 폭행과 폭언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안타까운 사연이 알려지면서 갑질에 취약한 아파트 노동자의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나며 사회적 관심도 커졌다.

 

15일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아파트 경비원이나 미화원 등 아파트 노동자에게 입주민이 폭언을 일삼거나 폭행을 하는 등 부당한 대우를 하는 경우는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지난 14일 오전 서울 강북구 우이동 한 아파트 경비실 앞에서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다 주민 괴롭힘에 최근 극단적 선택을 한 최희석 경비원의 유족들이 노제를 지내고 있다. 연합뉴스

이 단체에 따르면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 A씨는 아파트 입주자 대표 회장의 ‘갑질’에 시달리다 결국 해고됐다. A씨는 “아파트 입주자 대표 회장이 관리사무실에 책상까지 갖다 놓고 아침 직원회의 때마다 직원들에게 ‘내가 왕이다. 내가 나가라고 하면 언제든지 내쫓을 수 있다’고 말했다”며 “입사일과 4대 보험 취득 신고일이 달라 문제를 제기하니 ‘고소할 테면 하고 나가라’며 직원들 앞에서 소리쳤다”고 증언했다.

 

또한 어머니가 아파트에서 미화원으로 일하고 있다는 B씨는 “아파트 주민이 (어머니께) ‘당장 그만두라’며 소리를 지르고, 일부러 음식물 쓰레기를 아파트에 뿌리기도 했다”며 “갑질로 일을 그만둘 경우 보상을 받을 수 없나”라며 이 단체에 도움을 청하기도 했다.

 

아파트 경비원에게 모욕적인 언행을 하고,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차량 운전자가 벌금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지난 13일 서울동부지법 형사9단독 조국인 판사는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C씨에게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C씨는 지난해 5월20일 서울 송파구의 한 아파트단지 진입로에서 경비원 D씨로부터 주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진입을 거부당하자 화를 내며 시비를 건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C씨는 D씨에게 “네가 얼마나 잘나서 이런 아파트에서 근무하냐”, “급여도 쥐꼬리만큼 받으면서 이렇게까지 일을 해야 하냐”는 등의 막말을 하고, 때릴 듯이 달려들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와 관련해 조 판사는 “그 죄책이 결코 가볍지 않고 피해자로부터 용서받지도 못했다”며 “그럼에도 법정에서까지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으로 일관하는 등 잘못을 반성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이건 아니잖아요”

 

아파트 경비원 등 노동자들이 입주민의 갑질에 취약한 건 ‘불안정한 고용구조’에 기인하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서울의 아파트 경비원 5명 중 1명이 입주민의 부당 대우를 경험한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습니다.

 

서울노동권익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6월 서울 강서구 등 4개 자치구 아파트에 근무하는 아파트 경비원 49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19.1%는 입주민으로부터 ‘부당 대우’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센터가 부당 대우 경험자들을 대상으로 그 횟수를 조사한 결과 월평균 8.4회의 부당 대우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는데, 이 조사에서 경비원들은 ‘주차단속 시비’, ‘술에 취한 상태에서의 막말’ 등 주민들의 다양한 비인격적 대우에 시달리지만, 이에 제대로 대응하기 힘들다고 토로했습니다. 센터는 “입주민이 관리사무소로 불만을 얘기하면, 경비원에게 잘못이 없더라도 결국 경비원의 고용불안으로 돌아오게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지난 13일 서울 시내의 한 아파트 화단에서 경비원이 잡초를 뽑고 있다. 하상윤 기자

이 때문에 입주민들의 갑질로부터 아파트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근로기준법의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의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입주민이 경비원 등의 노동력을 이용하는 사용자 위치에 있음에도, 이들과의 실질적 근로계약관계는 맺지 않는 탓에 경비원들이 입주민의 갑질로부터 법으로 보호받기 어렵다는 한계점을 개선하자는 것입니다.

 

직장갑질119도 이같은 입주자의 부당 행위를 막기 위해선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가 ‘사용자’로서 책임을 지도록 하고, 공동주택관리법을 개정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과 같은 조항을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현행 공동주택관리법 65조 6항에는 ‘입주자대표회의 및 관리 주체 등은 경비원 등 근로자에게 적정한 보수를 지급하고 처우개선과 인권존중을 위해 노력해야 하며, 업무 이외에 부당한 지시를 하거나 명령을 하면 안 된다’고 나오지만 처벌 조항은 없는 실정입니다.

 

지난 10일 서울 강북구 우이동 한 아파트에서 주민에게 지속적인 괴롭힘과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경비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11일 고인이 생전에 근무하던 경비 초소에 마련된 분향소에 추모의 메시지를 담은 메모지가 붙어 있다. 하상윤 기자

고 최희석 경비원의 안타까운 사건을 계기로 주민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 일하는 아파트 노동자들이 더 이상 수난을 당하는 일이 없어져야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우선 실질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는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가 사용자로 책임을 지도록 공동주택관리법에 명시하는 방안이 조속히 마련되길 바라봅니다.

 

김선영 기자 007@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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