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 치러지는 대학입시에서 서울 주요 대학의 정시모집 비율이 30% 이상으로 높아지고, 상당수 학교는 정시 비중을 40% 이상으로 늘린다.
각 대학이 일제히 정시 비중을 크게 늘리는 것은 '울며 겨자 먹기' 성격이 강하다. 교육부 권고에 따르지 않으면 재정지원 등에서 불이익을 피할 수 없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대학들은 성적을 기준으로 한 획일적인 줄 세우기라는 비판을 받아온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중심의 정시모집보다는 학습의욕과 적성, 발전 가능성 등을 종합해 평가하는 수시를 선호하지만, 입시정책과 재정지원 사업을 연계하는 교육부의 권고를 거부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게 현실이다.
정시 확대에 따라 내년 대입에서는 실질적인 정시 비중이 전체 모집인원의 절반에 육박하는 학교도 나올 것이라는 게 입시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수시모집에서 선발하지 못해 정시로 넘어가는 '이월 인원'이 상당수 있기 때문이다.
정시가 확대되면 수능에 강한 재수생이 유리해질 가능성이 크다. 재수 비율이 높은 서울 강남권을 비롯해 대입에 다시 도전하는 학생들이 더 늘어날 수도 있다.
수능 준비에 유리하다고 알려진 자율형사립고(자사고)와 외국어고 등 특수목적고, 일반고 가운데서도 이른바 '명문'으로 꼽히는 학교의 인기가 더 높아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자사고·외고를 일반고로 전환하는 법 개정이 추진 중인 현실에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공정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면서 수능 확대 방향은 당분간 유지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수능 중심의 정시가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을 비롯한 수시보다 공정하다는 의견이 대체로 많은 것으로 나타나는 게 사실이다.
다만 수능이 정말 객관적이고 바람직한 입시제도인지를 두고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한날한시에 시험을 치러 조금이라도 높은 점수를 받는 학생이 경쟁에서 승리한다는 점 때문에 '착시효과'가 빚어진다는 지적도 많다.
오히려 '암기식 문제풀이' 교육으로 창의력이나 잠재능력 계발을 방해할 뿐 아니라 사교육을 조장하고 부유층에 유리한 제도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이른바 '상위권 대학'으로 불리는 서울 소재 인기 대학들이 2022학년도 대입에서 정시모집 비율을 30∼40% 수준으로 늘리는 이유는 교육부의 '대입 공정성 강화' 조처 때문이다.
29일 교육계에 따르면 교육부는 지난해 11월 대입 공정성 강화 방안을 내놓으면서 "학생부종합전형(학종) 등 특정 전형 비율이 과도하게 높은 서울 소재 16개 대학의 정시 비율을 2023학년도까지 40% 이상으로 상향 조정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교육부는 이들 대학의 정시 확대가 2022학년도에 최대한 조기 달성되도록 유도하겠다고 예고했다.
대입 공정성 강화 방안 발표는 학종 등의 수시모집 전형이 불투명하고 불공정하다는 여론의 분노를 정부가 수용한 것으로 평가됐다.
◆대입 공정성 강화 방안 발표…학종 불공정 여론 분노 정부가 수용한 듯
건국대·경희대·고려대·광운대·동국대·서강대·서울대·서울시립대·서울여대·성균관대·숙명여대·숭실대·연세대·중앙대·한국외대·한양대 등 16개 대학이 정시 확대 대상이 됐다. 학종과 논술로 45% 이상을 뽑아 '전형 비율이 불균형하다'는 이유였다.
대학 입시 전형은 각 대학이 자율적으로 설계한다. 이 때문에 16개 대학이 교육부의 정시 확대 권고에 따르지 않을 우려도 있었다.
대학은 학종 등 수시모집을 선호한다. 한 학생이 특정 대학·학과에 얼마나 진학하고 싶은지를 지원 서류와 면접 등을 통해 면밀히 살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중심의 정시모집은 '성적 줄 세우기'라 비(非)교육적인 데다가 애교심도 덜해서 반수생·재수생이 많다는 게 대학들 주장이다. 한날한시에 같은 시험을 치르는 수능이 더 공정하다는 다수 여론과 반대되는 경향이다.
정시 확대 대상으로 지목된 16개 대학의 올해(2021학년도) 대입을 보면, 학종 비율이 평균 45.6%고 정시 비율이 평균 29.5%다.

그런데도 16곳 중 9곳이 교육부 권고에 따라 2022학년도에 정시 비율을 40% 이상으로 늘리기로 했다. 정시 30% 이상은 16곳 모두 달성했다.
정시 비율을 10∼20%포인트 이상 급격히 늘리기로 한 대학도 있다.
고려대의 경우 2021학년도 정시 비율이 18.4%인데 2022학년도에 40.1%로 늘리기로 했다. 1년 만에 정시를 두 배 이상으로 늘리는 것이다.
경희대(25.2%→37.0%), 동국대(31.2%→40.0%), 성균관대(31.0%→39.4%), 연세대(30.7%→40.1%), 한양대(29.6%→40.1%) 등도 정시를 1년 만에 10%포인트가량 늘리기로 했다.
대입에 큰 영향을 끼치는 서울대 역시 정시 40%를 조기 달성하지는 않았지만, 정시 비율을 올해 21.9%에서 내년 30.1%로 8.2%포인트 늘리기로 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16개 대학의 정시 상향 목표를 어느 정도 조기 달성했다고 보고 있으며, 2023학년도에 나머지 대학도 40%에 맞출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대학들 정말 자율적으로 정시 비율 늘렸을까?
다만 대학들이 정말 '자율적'으로 정시 비율을 늘렸다고 보기는 어렵다.
교육부가 대표적인 대학 재정지원사업으로 꼽히는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사업'으로 정시 확대를 유도했기 때문이다.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사업은 대입 전형을 합리적으로 운영해 고교 교육 발전에 기여한다고 평가되는 대학에 입학사정관 인건비, 대입 전형 연구비 등을 지원해주는 사업이다.
70여개교에 700억원 가까이 지원하는 큰 사업이기 때문에 주요 대학은 모두 참여하려고 노력한다.
교육부는 올해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사업 참여에 '정시 확대'를 필수 조건으로 걸었다. 사업에 지원하려면 2022학년도까지 수능 위주 전형을 30% 이상으로 늘릴 계획을 제출하도록 했다.
또 '정시 40%' 대상이 된 16개 대학은 정시를 2023학년도까지 40%로 늘리겠다는 확약서를 제출하도록 했다.

서울대를 포함해 16개 대학이 모두 확약서를 내고 올해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사업에 지원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때문에 대학가에서는 "대학 자율에 맡겨져야 할 대입이 언제까지 교육부 재정지원사업에 휘둘려야 하느냐"는 불만이 나온다.
◆사실상 2023학년도부터 ‘정시·수시 반반’ 시대 열릴 듯
입시 전문가들은 2023학년도에 주요 대학이 정시를 40%로 늘리면 수시에서 이월되는 인원 등을 고려했을 때 사실상 2023학년도부터 '정·수시 반반' 시대가 열린다고 예상한다.
교육부 관계자 역시 "4대6이나 5대5 등 특정 비율을 정부가 따로 권고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과거 학종 비율이 다소 높았는데, 전형 간 비율을 유사하게 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수능이 학종보다 더 공정한지에 대한 물음표는 여전히 남아있다.
상당수 교육학자는 "수능이 한날한시에 똑같은 시험을 치른다는 점에서 일견 더 공정해 보이지만, 획일적 일제고사는 부모 소득이 높고 사교육을 더 받을수록 유리하기 때문에 기회의 형평성으로 보면 더 불공정하다"는 견해를 제시한다.
전국진로진학상담교사협의회 등 교사단체들은 지난해 정시 확대가 발표되자 성명서를 내고 "전국 모든 초중고를 참담한 수능 배치표 체제로 되돌리는 명백한 오판"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수능, 학종보다 더 공정할까?
현재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이 내년에 치를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은 수험생이 자신의 계열을 떠나 선택과목을 고를 수 있는 '첫 문·이과 통합형 수능'이다.
그러나 입시전문가들은 대학이 계열별 선택과목을 크게 제한하면서 문·이과 통합의 의미가 퇴색됐다고 지적한다.
입시업체 유웨이의 이만기 교육평가연구소장은 30일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발표한 '2022학년도 대학입학전형기본계획'에 대해 "이른바 '상위권 주요 대학'들이 자연계열 학과에 진학하려면 수학영역에서 '미적분'이나 '기하'를 선택하고 과학탐구영역을 보도록 했다"면서 "성적이 중상위권 이상인 수험생들은 이에 맞춰 과목을 선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대학들이 대체로 자연계열 학과의 선택과목만 지정하고 인문계열 학과는 제한을 두지 않은 점을 들어 "자연계열 수험생은 인문계열 학과에 지원할 수 있는데 그 반대는 어렵다"면서 "수험생 사이 자연계열 선호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임 대표는 "수시모집에서 선발하지 못해 정시모집으로 뽑는 '이월 인원'을 고려하면 실질적인 정시모집 비중이 45% 이상 되는 학교가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면서 "수능에 강한 재수생이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학교 3학년생 사이에서 '수능 준비에 유리하다'고 알려진 자율형사립고(자사고)나 외국어고 등 특수목적고, 일반고 중 소위 '명문고'로 불리는 학교의 인기가 높아질 것으로도 예상했다.
이만기 소장은 "정시모집 비중이 늘어 자사고나 특목고 학생이 유리해진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수시모집 비중이 여전히 50%가 넘으므로 일반고 학생들은 수시모집에 필요한 학교생활기록부 관리에 최선을 다하되 기존보다는 수능을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소장은 '적성고사전형'이 폐지된 점도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적성고사전형은 학생부와 대학이 출제하는 적성고사 성적을 6대 4 정도의 비율로 반영하고 수능 최저학력기준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에 학생부나 수능이 다소 부족한 중위권 수험생에게 '마지막 보루'처럼 여겨져 왔다.
진학사 우연철 입시전략연구소장은 "서울대가 2022학년도부터 모집군을 가군에서 나군으로 변경하면서 고려대와 연세대가 나군에서 가군으로 이동하고 서강대가 가군에서 나군으로 옮겼다"면서 "이외 이화여대가 일부 모집단위만 가군에서 선발하고 대부분을 나군에서 선발하는 등 모집군 변화가 있으므로 이 역시 꼼꼼히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