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범 체포과정에서 수사기관이 임의제출받은 물건은 영장 없이 압수하는 것이 허용되며 사후에도 영장을 받을 필요 없다는 판례를 대법원이 재확인했다. 해당 경우에 물건의 증거능력이 있다는 의미다.
대법원 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로 기소된 박모(36)씨 상고심에서 일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6일 밝혔다.

박씨는 2018년 5월 경기 고양시의 한 지하철 출구 에스컬레이터에서 휴대폰으로 자신의 앞에 서 있던 A씨의 치마 속을 여러 차례 몰래 찍다가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경찰은 박씨로부터 휴대폰을 제출받아, 임의제출에 의한 휴대폰 압수를 진행했다. 경찰은 다음날 박씨를 석방했는데 휴대폰에 대한 사후 압수영장을 신청하지 않은 상태에서 휴대폰을 조사했다. 이후 경찰과 검찰은 추가 수사로 박씨가 A씨를 포함해 피해자 5명의 신체 일부를 몰래 찍은 혐의로 박씨를 재판에 넘겼다. 1심은 박씨에 대해 징역 1년2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성폭력 치료강의 40시간 수강을 명령했다.
하지만 2심에서는 경찰이 임의제출에 의한 휴대폰 압수 이후 조사를 할 때 사후영장을 신청하지 않은 점을 문제 삼았다. 2심은 ‘현행범 체포 시 임의제출한 물건을 영장 없이 압수할 수 있고, 사후영장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판시한 기존 대법원 판례를 비판했다. 2심 재판부는 “대법원이 체포현장에서 임의제출 형식에 의한 압수수색을 허용함으로써 일선 실무에서는 피의자 임의제출에 의한 압수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지만, 긴급압수수색절차 및 압수물에 대한 사후영장 절차는 거의 없는 것이 통례”라며 “체포된 피의자가 소지하던 긴급압수물에 대한 사후영장제도는 앞으로도 형해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이어 “자수현장과 같은 특별한 장소가 아니라 일반적인 현행범 체포현장에서 자신의 죄책을 증명하는 물건을 스스로 제출할 의사가 피의자에게 있다고 해석하는 것은 국민 관념에 어긋나 사법 신뢰를 잃기 쉽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2심은 수사기관이 사후영장을 제출하지 않은 상태에서 조사한 공소사실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은 2심 판결에 대해 수긍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현행범 체포현장이나 범죄 현장에서 임의제출 받은 물건은 영장 없이 압수하는 것이 허용되며, 이 경우 수사기관은 별도 사후영장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기존 판례를 재확인한 것이다. 대법원은 아울러 박씨와 그의 변호인 모두 휴대폰 제출 임의성 여부에 대해 법정에서 다투지 않았고, 1심판결에 항소하지 않았으며 2심이 직권으로 그 임의성을 부정하는 판단을 내린 것은 잘못이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2심은 휴대폰 제출의 임의성 여부를 직권으로 판단하기 전에 추가로 증거조사를 하거나 검사에게 증명을 촉구하는 등의 방법으로 더 심리한 후 판단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이도형 기자 scop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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