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19의 등장과 하늘이 숨쉬는 시간
‘코로나19의 역설’이라고 했다. 감염병이 오래되며 가져온 긍정적 변화들 말이다. 사람의 죽음을 마주하는 슬픔 속에도 좋은 일은 생겨났다. 좋은 일이라고 부를 법한 변화 중 눈길을 끄는 것은 푸르러진 지구의 모습이다. 각국의 봉쇄 조치로 공장 가동을 멈추고 자동차 이동이 줄어들자 하늘이 맑아졌다. 미 항공우주국(NASA)에 따르면 주요 공업국가의 이산화질소 농도는 30% 이상 낮아졌다. 인도 펀자브주 잘란다르에서는 30년 만에 히말라야 봉우리가 제 모습을 드러냈다고 한다. 언젠가부터 회색의 불투명으로 느껴진 하늘이 파랗고 투명한 존재였다는 것을 오랜만에 느낀다.
사실 멀리 인도까지 가지 않아도 이 변화는 눈앞에서 보인다. 미세먼지에 보이지 않던 뒷산이 가진 봄날의 알록달록함을 이제 알겠다. 막연히 초록색일 것으로 생각했는데 벚꽃과 진달래가 나름 강렬하게 제 모습을 어필한다. 그 귀여운 모습을 아침마다 보고 있노라면 떠오르는 작가가 있다. 스웨덴 북부 시네쿨레산에 머물며 자연의 면면을 작품에 반영하는 안드레아스 에릭슨(Andreas Eriksson·1975)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작품은 대자연에서 발견한 보편적 진리라고 할 수 있다.
# 북유럽의 숲속에 사는 작가, 안드레아스 에릭슨
안드레아스 에릭슨은 스웨덴 비외르세터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어머니를 따라 오슬로 뭉크 박물관을 방문한 이후 미술에 관심을 두게 됐다. 1998년에 스웨덴 왕립예술원 스톡홀름 미술대학교를 졸업했다. 졸업 이후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위해 신진 작가들이 모이는 베를린에 건너갔다. 하지만 2000년대 초에 전자파에 통증을 느끼는 병을 얻었다. 컴퓨터 기술자에게도 어느 순간 발현하는 현대의 병이다. 고향인 스웨덴으로 돌아와 시네쿨라산 숲속에서 거처를 마련해 현재까지 사는 이유다.
숲으로 거처를 옮긴 것이 미술계와 멀어진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에릭슨은 숲에 머물며 자기 작업 세계를 명확히 구축하기 시작했다. 주변을 둘러싼 자연 세계를 기반 삼아 그 안에서 마주하는 소소한 사건과 현상에 주목했다. 이를 표현하기 위해 회화에 기초하여 조각, 판화, 직조 등 다양한 작업 방식을 적용시켰다. 그렇게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절묘한 미감을 끌어내기에 이르렀다.
2001년 스톡홀름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보니어스 콘스트할(스톡홀름), 레이캬비크 아트 뮤지엄(레이캬비크), 루트비히 재단 현대미술관(mumok)(빈), 트론헤임 쿤스트뮤지엄(트론헤임, 노르웨이), 파리 시립 근대 미술관(파리), 스톡홀름 현대미술관(스톡홀름), 오슬로 국립미술관(오슬로) 등에서 전시에 참여했다. 그러던 중 2007년 아트 바젤, 발로아즈 예술상을 받으며 전 세계 미술인의 이목을 모았다. 주요 미술관 큐레이터로 구성한 심사위원단이 주는 올해의 신인 작가상과 같은 상이다.
# 매체를 오가며 예술이 된 풍경
안드레아스 에릭슨은 다양한 매체를 사용해 작업한다. 물감, 실, 청동 등을 이용해 그림, 직조, 조각 등을 만든다. 그렇게 그 안에 담아내는 것은 눈앞의 자연과 삶이라는 풍경이다. 작가는 자연을 중립의 세계로 인식한다. 매우 정확한 동시에 우연성을 포용하는 세계다. 그래서 그의 화면에는 빛과 어둠, 가벼움과 무거움, 실재와 환영의 양면성이 존재한다. 이것은 음양의 조화를 강조하는 동양 철학과 맞닿는 데가 있다. 스칸디나비아 문화에 뿌리를 둔 작업이지만 정제된 정적인 분위기가 전해진다. 작업이 시적 서사를 내포하고 그것의 숨은 의미가 지속적인 여운을 선사한다.
에릭슨은 지난해 서울의 한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이 전시에서 그는 ‘세마포어 지리산’(2019), ‘세마포어 한라산’(2019), ‘세마포어 가리왕산’(2019) 등 한국의 강산 이름을 붙인 연작을 선보였다. 실제로 지리산, 한라산, 가리왕산 등을 방문하고 제작한 작품들은 아니다. 대신 숲속의 작업실에서 한국산을 찾아보고 그렸다. 각 회화가 서로를 참조하고, 긴밀한 관계를 이루며 더 큰 풍경을 만들어낸다.
이 작품들은 하늘에서 내려다본 풍경과 같은 화면을 보는 이에게 선사한다. 유연한 곡선의 움직임이 지도의 등고선을 연상시킨다. 그 안에는 산과 물 그리고 너른 들판까지도 곡선으로 유려하게 펼쳐진다. 이러한 형태는 북유럽 특유의 아름다운 색감으로 화면 위에서 발현한다. 가까이 다가가서 바라보면 작가의 붓질이 진밀하게 만들어낸 층위가 보인다. 비가 오고, 해가 비치고, 바람이 비쳐도 항상 자기 자리를 지키는 땅과 같다. 이렇게 그의 회화는 강렬하기보다 단단하게 존재한다.
‘바이젠시 no6’(2019) 세마포어 연작과 유사하게 생겼다. 그렇지만 다른 이야기를 전해주는 태피스트리 작업이다. 에릭슨은 스웨덴의 여러 지방에서 가업을 이어오는 장인들로부터 실을 수집한다. 이렇게 수집한 실들로 수직 틀을 오가며 그림을 짜 넣은 직물, 태피스트리를 완성한다. 다양한 실로 하나의 화면을 구성하는 일은 여러 갈래의 여정을 ‘지도화’하는 일과 같다.
에릭슨은 염색이나 보존처리가 되지 않은 리넨 섬유를 재료로 삼는다. 장소와 시기에 따라 다양한 색의 모습을 품고 있는 이유다. 섬세하고도 노동집약적인 과정 끝에 만드는 화면이 아름답다. 여기서의 아름다움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대신 수수하지만, 깊이가 있는 인상을 준다. 이렇게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는 아름다움에는 단 한 번도 질린 적이 없다. 사라 워커는 이러한 에릭슨의 작품에 관한 글에 ‘예술이 된 풍경’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 작가의 작업과 두더지의 작업이 공존하는 여기
요즘 파올로 조르다노의 새 책을 읽고 있다. 과학자이자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국민 소설가다. 그는 코로나19의 전 세계적 확산 속에서 이 책을 썼다. 2020년 2월29일부터 3월28일까지 한 달간 감염병과 관련한 기록과 생각을 담았다. 인간이 환경에 폭력을 가하고 동물들이 죽어가며 그들 몸에 서식하던 병원체가 우리에게 왔다는 부분에서 씁쓸함을 느낀다. 환경 문제에 무관심한 채 인생 대부분을 살아왔지만 최근 몇 년 사이의 사건들은 나조차 각성하게 만든다.
작가는 인터뷰에서 마당에서 두더지들이 밤새 땅을 파놓은 흔적을 마주했던 기억을 이야기한 적 있다. 그 모습을 보자 본인이 작업하는 시간에 그림을 그리듯, 자연 역시 제시간에 맞춰 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이렇게 각자의 삶에 충실하며 조화롭게 살아가는 일만큼 중요한 것이 또 있을까 싶다. 모든 생명이 평화롭게 함께 지켜야 하는 질서를 지켜가는 일.
김한들 큐레이터, 국민대학교 미술관·박물관학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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