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인정부 들어 기존에는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던 형사처벌 조문 하나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형법 제123조에 규정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가 그것이다. 보통 직권남용으로 줄여 부른다.
공무원에게만 적용되는 직권남용은 적용과 입증이 무척 까다로워 과거에는 사실상 ‘잠든 범죄’로 인식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박근혜정부 시절인 2016년 이른바 ‘비선실세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거치며 고위공직자들이 권한을 남용하고 직무상 공정성을 훼손하였다는 의혹이 연달아 불거졌다. 이른바 ‘적폐청산’을 외치는 목소리가 큰 가운데 검찰, 그리고 박영수 특별검사는 이런 공직자들을 직권남용 혐의로 구속하거나 재판에 넘겼다.
직권을 남용한 공직자는 물론 수사와 처벌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국정농단 사태와 그로 인한 현직 대통령의 탄핵·파면 같은 특수한 상황 속에서 직권남용이 ‘남용’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서울지방변호사회(회장 박종우)는 총선 이튿날인 16일 오후 2시 서울 서초구 변호사회관 5층 정의실에서 ‘직권남용죄의 적용 한계와 바람직한 적용 방안에 대안에 관한 심포지엄’을 개최한다고 13일 밝혔다.
대법원은 올해 초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이 연루된 검찰 인사보복 사건, 정권에 비판적인 문화예술계 인사들한테 불이익을 줬다는 ‘블랙리스트’ 사건, 반대로 정권을 지지하는 시민사회단체에 부당한 특혜를 줬다는 ‘화이트리스트’ 사건 등 직권남용 혐의가 주요 쟁점인 굵직한 판결들을 선고했다.
일부는 무죄로, 일부는 유죄로 판단되면서 직권남용죄의 적용 범위 및 판단 기준 등에 대해 상반되는 의견이 제시됐다. 이에 더해 현직 공직자에 대한 직권남용죄 관련 고발이 끊이지 않는 실정이다. 결국 법조계를 중심으로 “이번 기회를 계기로 직권남용죄의 적용 기준에 대한 논의를 본격화할 필요가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심포지엄은 서울변호사회 법제위원회 위원장 김득환 변호사(사법연수원 15기)가 좌장으로 논의를 이끌 예정이다. 주제발표자는 국내에서 직권남용죄 연구의 권위자로 평가받는 이완규 변호사(사법연수원 23기)와 오병두 홍익대 법과 교수가, 토론자로는 박지훈 변호사(사법연수원 35기) 등이 나선다. 진행은 서울변호사회 법제이사 김시목 변호사(사법연수원 33기)가 맡는다.
서울변호사회 관계자는 “심포지엄을 통해 직권남용죄에 대한 법원의 판단 기준을 살펴보고, 이러한 기준에 모호하고 자의적인 면은 없는지, 그리고 더 명확하고 바람직한 판단 기준 및 적용 방안이 제시될 수는 없는지 짚어보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를 계기로 직권남용죄의 보호 법익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적용 기준을 확립함으로써 공무원의 청렴성 및 직무상 공정성 확보를 위한 새로운 기준을 쌓아갈 수 있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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