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온 통일’이라고 추켜세워지던 탈북민들이 한편으로는 편견과 차별에 부딪혀 우리 사회의 ‘경계인’으로 겉돌고 있다. 이들을 한국 사회의 자원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소통의 노력을 더욱 기울이고 지역사회에 정착하도록 힘을 쏟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탈북민 3만명시대 접어들었지만
10일 통일부 산하 남북하나재단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 입국한 탈북민 1047명(잠정)을 포함해 지난해까지 모두 3만3523명의 탈북민이 입국했다.

국내 입국 탈북민은 1990년대 중반 북한의 식량사정이 악화하면서 꾸준히 증가하기 시작해 2009년 한 해에만 2914명으로 정점을 찍었다. 이후 입국 인원은 감소 추세이지만 여전히 한 해 1000명 넘는 인원이 남한땅을 밟고 있다.
탈북민은 하나원에서 12주 동안의 사회적응교육을 마친 뒤 주거 알선과 정착금·장려금 지원을 받아 5년 동안의 거주지 보호를 받는다. 이 기간에 고용지원금, 무료 직업훈련 등의 취업지원과 교육지원을 받는다.
하지만 수년간의 해외체류와 북송위험 등을 감수하면서 보다 나은 삶을 찾아 남한으로 온 탈북민 상당수는 냉정한 현실의 벽에 부딪힌다. 경제적 기반이 취약한 데다 사회에서 유무형의 차별을 겪으며 배제되기 쉽기 때문이다.
탈북민 정착지원활동을 하는 신효선 북한인권정보센터 본부장은 “정착 초기 탈북민들은 한국 사회 내에서 차상위 계층이나 기초생활수급권자 등 저소득층으로 한국사회 정착을 시작한다”며 “사회의 편견과 선입견도 있어, 남북관계가 경색되거나 북한의 도발상황이 발생할 경우 일반 국민이 탈북민을 바라보는 시선이 싸늘해지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발주한 북한인권정보센터의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국민인식 및 차별실태조사’(2014년) 연구용역 보고서를 보면 탈북민들은 일자리를 구할 때와 학교·직장생활을 하면서 주로 차별을 겪었다고 느꼈다.

탈북민 B씨(30대)는 “세무사 사무실에 면접을 보러 갔는데 처음에는 나오라고 했다가 면접 보는 사람한테 내가 북한에서 왔다고 했더니 다시 연락 주겠다고 하더니 연락이 없었다”며 “세무일은 정해진 틀이 있어서 한국 실정을 몰라도 할 수 있는 일인데 여기 실정을 몰라서 안 된다고 거절하는 것을 보면 아마 내가 북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러는 것 같다”고 말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차별의 이유로는 ‘언어’가 주로 꼽혔다. 탈북민 C씨(40대)는 “(직장에서) 외래어를 사용하는 것이 많은데 못 알아듣겠더라”며 “‘잘못 들어요?’ 이렇게 묻더니 나중에는 머리가 나쁘고 귀가 안 들리는 사람이라고 상대도 안 하고 무시했다”고 말했다.
한국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떠나는 탈북민도 드물지 않다. 더불어민주당 이석현 의원이 통일부에서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7월 말 기준 국내로 들어온 후 다시 해외로 출국한 탈북민은 749명이다. 이들은 26개국에 흩어져 사는 것으로 파악됐다.
◆남한 사회도 냉정… 교류 기회 늘려야
흔히 탈북민을 ‘먼저 온 통일’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남한 사회에서 탈북민을 바라보는 속내는 그리 따뜻하지 않다. 여러 조사에서 일반 국민은 탈북민에 관심이 거의 없거나 경계심을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인식은 탈북민 지원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진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의 ‘2018 통일의식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에 들어오기 원하는 탈북민을 모두 받아들여야 한다고 응답한 사람은 29.7%로, 조사를 시작한 2007년 이후 처음으로 30% 아래로 떨어졌다. 통일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비율이 59.8%로 2007년 이후 최고수준을 나타낼 만큼 통일 인식이 높아진 것과는 반대의 결과다.

또한 탈북민 지원과 관련해서도 ‘이질화 해소’, ‘정부지원 증대’ 등의 긍정적 견해는 감소한 반면 ‘취업난 야기’, ‘동등한 경쟁’ 등의 부정적 견해는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한국이 겪고 있는 경기불황과 사회·경제적 양극화, 높은 실업률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탈북자에 대한 태도에 투사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먹고사는 문제에 있어 시민들의 삶이 어려워짐에 따라 한정된 재화를 놓고 경쟁하는 외집단에 대한 태도가 부정적으로 변하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탈북민은 북한사회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제공하고 통일한국을 그려볼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다. 이런 탈북민을 일방적인 시혜나 보호의 대상으로 여기기보다는 사회에 필요한 일원으로 동등하게 받아들이는 인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편견 없이 서로를 알 수 있는 소통과 접촉의 기회를 늘리는 것이 필요하다. 실제로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국민인식 및 차별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학교, 직장, 가정, 지역사회에서 탈북민을 접한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일반국민에 비해 탈북민에게 우호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취업을 통한 경제적 자립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현재의 탈북민 정착지원제도에 심리적 안정과 지역사회 정착을 돕기 위한 지원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신 본부장은 “탈북민들은 북한생활이나 탈북과정에서 다양한 위험상황에 노출돼 심리적 외상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으며, 한국이라는 새로운 문화권에서 적응해야 하는 과정에서 오는 문화적응 스트레스는 불안을 가중시킨다”며 “현재 마련되어 있는 탈북민 상담 시스템을 보다 활발히 작동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탈북민들이 의지하고 소통할 수 있는 사회적 지지체계를 마련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석향 이화여대 교수(통일학연구원장)는 “탈북민의 정착과정에서 성별로 욕구가 다르고, 개인과 가족 단위의 계획이 다른데 개개인이 폭넓은 인생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맞춤형 상담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며 “기본적인 지원 이후에는 지역사회의 이웃들이 탈북민을 포용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백소용 기자 swini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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