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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처럼 예쁜 술, 떠먹는 막걸리 이화주 [명욱의 술 인문학]

입력 : 2020-04-04 09:00:00 수정 : 2020-04-04 03:4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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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에 자주 나오는 고려시대의 유명한 애주가가 있다. 청주(淸酒)를 주인공으로 ‘국선생전’이라는 가전체 소설까지 쓴 이규보다. 그는 계절과 연관되는 시도 자주 썼는데, 대표적으로 꽃샘추위를 소개한 ‘꽃샘바람’이다. 주요 구절로는 ‘꽃 필 땐 광풍도 바람도 많으니 이것을 꽃샘바람이라 한다(花時多顚風 人道是妬花·화시다전풍 인도시투화)’, ‘꽃이 떨어져도 열매가 생기며 꽃을 대신한다(有實必代華·유실필대화)’ 등이다. 사람들의 시기와 질투로 꽃잎이 떨어지더라도, 그 떨어진 꽃잎 자리에서 열매가 생긴다는 의미있는 내용이다. 마지막에는 애주가답게 ‘술잔을 잡고 노래를 부르자(把杯且高歌·파배차고가)’라고 마무리를 한다. 그는 무슨 술을 마셨을까 궁금해진다. 그 시대에도 봄날에 즐길 수 있는 술이 있었을까?

최초의 경기체가인 한림별곡(翰林別曲)에 그 힌트가 나온다. 한림별곡은 한림의 유생들이 지은 노래인데, 당시 유명한 술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이 중 가장 지금의 계절과 가장 가까운 술이 있는데, 바로 봄에 피는 꽃 이름을 딴 이화주(梨花酒)다. 배 이(梨), 꽃 화(꽃)를 쓰지만 이 술은 배꽃을 넣는 술은 아니다. 새봄에 새하얀 배꽃이 필 무렵 빚어서 마시는 술이라고 알려져 있다. 또 빚어진 술이 배꽃처럼 새하얗기에 이화주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이화주. 술샘 제공

이화주의 구체적인 레시피는 조선 건국 이후에 등장한다. 최초의 기록은 1459년 어의였던 전순의가 지은 산가요록(山家要錄)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조리서인 이 책은 2001년 청계천8가 고서점 폐지 더미 속에서 발견이 된다. 그 전까지만 해도 최고(最古) 조리서는 수운잡방(需雲雜方)으로 알려졌으나, 우연한 발견으로 역전이 된 것이다.

이화주는 귀여운 모양을 하고 있지만, 만드는 과정은 무척 고단하다. 일단 이화주를 만들기 위해서는 구멍 떡이라는 도넛 모양의 떡을 삶아야 하며, 이후 이화곡이라는 달걀 모양의 귀여운 쌀누룩을 손으로 꾹꾹 눌러서 만든다. 이후 서로 삶아진 구멍떡과 이화곡을 섞어 놓고 2주 전후로 발효하면 이화주는 풍부한 과실 향을 머금으며 요구르트와 같이 떠먹는 스타일의 술이 된다.

부드러운 식감을 가졌던 만큼 이화주는 나이 드신 노인 분과 당시에는 어린아이도 먹던 간식 같은 존재이기도 했다. 여기에 딸이 시집가면 시댁과 같이 먹으라는 이바지 음식으로도 사용된 귀한 술이기도 했다. 최근에는 문화가 달라져 크래커에 발라 먹거나 딸기 등을 찍어 먹기도 한다. 이규보는 자신의 서사시 문집인 동국 이상국집에서 이화주를 동지에서 105일 지난 한식일, 양력으로 따지면 4월5일 식목일에 먹자고 한다. 즉 뼛속까지 봄의 술인 것이 지금의 이화주다.

 

명욱 주류문화칼럼니스트&교수

 

● 명욱 주류문화 칼럼니스트는…

 

숙명여대 미식문화최고위 과정, 세종사이버대학교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객원교수. SBS팟캐스트 ‘말술남녀’, KBS 1라디오 ‘김성완의 시사夜’의 ‘불금의 교양학’에 출연 중.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 ‘말술남녀’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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